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혜경 Apr 23. 2024

아름다운 발리 청년

용감한  아들 와얀입니다.

"쓸라마 빠기"

빠글빠글 긴 머리의 청년이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

인도네시아 말은 부드럽게 들린다. 발음 때문인지 억양 때문인지 노랫소리 같다.

왜소한 형제의 얇은 티 셔츠에 삐죽이 내비치는 작은 뼈들에 그의 형체가 살아났다.

가늘게 뜬 눈 사이에 보이는 초점 잃은 눈동자에서 작은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큰 안경에 눌려 버린 콧날의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에 그 안경은 계속 줄줄 흘러내렸다.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그는 발을 계속 흔들었다.

앞에 서 있는 내게는 상당히 눈에 거슬릴 만큼 계속 흔들어 댔다.


왜 저렇게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이 저 형제를 불안하게 하는 것일까?


식사 시간에 앉아서 눈을 마주치려고 나는 노력을 했다.

그 청년은 계속 눈을 굴리며 나와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눈은 다른 곳을 향해 계속 굴러 다녔다.

며칠이 흘러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드디어 그 청년이 드디어 눈을 맞춘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리를 흔들거리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나는 첫째 아이로 태어났고 아래로 여동생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늘 우리 가족에서 가장 약한 아들입니다.

무엇을 해도 부모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늘 여동생과 비교를 당했어요.

그런데 사실 내가 봐도 여동생은 정말 다 잘해요.

나는 훌륭한 부모님과 멋진 여동생에 비하면 정말 너무 약한고 못난 사람입니다."


정말 마음이 착하고 청년이었다.

한 번쯤은 원망하고 차별대우 하는 부모님을 원망할 만하건만 오히려 자신이 부족하여 실망을 시켜 드려서 미안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여동생의 뒤편에 두고 상황을 용납하는 것 같았다.


가정 안에 자녀가 태어나고 양육하게 되면서 우리 부모들은 자신의 성격대로 혹은 경험대로 자녀들을 양육한다. 물론 사랑으로 양육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기쁨도 주지만 아픔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양육의 형태가 이 청년의 부모님의 양육 형태 같았다.


발리에는 첫째 아들은 와얀이라고 부르고 둘째 아들은 마데, 셋째 아들은 요만 그리고 막내아들은 끄뜻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인사를 하고 당신은 와얀이냐 아니면 마데 인가라고 물으면 신기하게 보면서 자신은 와얀이다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장남, 차남이라고 하듯이 발리에서는 그것이 이름처럼 모두가 다 아들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은 신기하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전통적인 삶의 형태를 보아도 아들을 존중하고 선호하는 발리의 문화를 엿볼 있었다.

그렇기에 더 아들에게 기대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더 많이 훈련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나이는 언제 즈음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강하게 훈련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들이 알 수 있을까?


이 청년의 부모님도 이 청년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동생을 다루는 법과 아들을 다루는 법이 달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자신이 믿고 있는 사랑의 방법으로 더 잘하라고 이 하나뿐인 아들을 여동생과 비교를 했고, 자꾸 기죽고 더 약하게 보이니까 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구타를 하게 된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버지 어머니가 조금은 교양이 있는 배운 분들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는 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고 한다. 아마도 이 청년이 나이가 들어 부모님의 진정한 마음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청년에게 부모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부족한 것이 문제니 까요.
멋진 아들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요. 내 마음 안에 자신이 없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면 조금 더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부모님도 제게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황혼이 지는 해변가에서 이제는 조금 편안한지 눈도 맞추고 다리도 조금은 덜 떨면서 청년은 이야기한다.

며칠 자주 만나서 나누다 보니 신뢰라는 것이 쌓인 것 같았다.

잠시 동안이지만 청년의 눈매도 미소도 그새 점점 당당해지는 같았다.


나는 가슴에 벅차오르는 눈물을 누르며 이야기해 주었다.


"아빠 엄마는 청년을 사랑할 겁니다. 정말 내가 엄마라 잘 알아요. 죽어도 잊지 못하는 게 자녀 이거든요. 그런데 청년은 첫째 아들 와얀 이잖아요.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성숙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분들의 부모에게서 그런 선한 영향을 받은 적이 없다면 더 그럴 겁니다. 이렇게 성장해서 부모를 이해하고 오히려 사랑하고 안아주는 큰 아들 와얀은 정말 멋진 아들이네요.


당신은 부족하거나 약하지 않아요 생각이 깊고 용감한 남자입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많은 부분에서 한국의 양육스타일과 많이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자녀 양육의 형태들은 온 세계가 똑같은 것 같다.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땅 발리의 한 청년의 마음을 격려하는 의미 깊은 여행이었다.















이전 06화 성이 다른 세 여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