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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Apr 30. 2024

가시 같은 불통

냉면집 신발장 앞에서...

한창 꽃잎이 흩날리는 날 큰 창문이 있는 대학교 앞의 커피숍에 앉아있으니 갑자기 젊어지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청바지를 입고 왔어야 했는데 몸배 비슷한 헐렁한 옷을 입고 그냥 털래털래 온 것이 후회가 된다.


그래서 청바지에 전공 원서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대학교 정원을 걸어야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날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나는 중년 냄새 풀풀 나는 아줌마가 되어 컴퓨터 하나 들고 이 젊은이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한때는 나도 저렇게 돌아다녔는데…


귓가에 흘러 들어오는 멜로디에 마음이 따라 흐른다.

그 멜로디 사이에 젊은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뭇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하였다.


큰 창문 너머 보이는 나무들이 꽃이 지고 난 후 연두 빛과 초록색 이파리들이 어울려 만들어낸 싱그러운 분위기가 너무 멋지다.

커피 향이 폴폴 나는 커피숍에서 그 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완전 힐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집중이 되어 열심히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 여성 네 분이 커피잔들쟁반 위에  들고 요란하게 계단을 올라왔다.

내가 앉은자리 보다 조금 떨어진 코너의 자리에 네 여성분들은 앉았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성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이제 우리 시원하게 이야기해 보자 오늘 이렇게 만나게 하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빨간색 티를 입고 바로 앞에 앉아있던 여성분이 대화를 받아


“그래 언니 말 대로 이제 두 사람 차근차근 말해봐요.”라고 거든다.


들어올 때부터 얼굴이 상당히 차갑고 나이가 좀 젊어 보이는 여성분이


“뭘 말해요 지난 2년 동안 나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2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어서 말해 주세요. 정작 본인은 모르잖아요”라고 빨간색 티를 입은 분이 보채듯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죄인처럼 조용히 고개 숙이고 앉아 있던 이 사건의 주인공인 듯한 한 여성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여성의 얼굴은 울상이었고 정말 순하고 착해 보였다.


“그래, 동생 이제 이야기해 줘, 2년 전에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분들은 커피숍의 코너에 앉으시기는 했지만 정말 그분들의 목소리는 음악의 데시벨을 뚫고 천장에 울려온 커피숍 매장 안퍼졌다.



소곤거리던 젊음의 소리들을 우렁찬 중년 아줌마들의 목청이 한꺼번에 잠들게 했는지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잠깐 동안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이야기의 줄거리가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가장 나이가 어린 분에게 가장 조용하고 어두운 얼굴의 주인공인 분이 뭔가를 실수하셨고 그래서 2년 동안 관계가 불편했기에 빨간 옷 입은 분과 가장 연장자 인 여성이 이들을 데리고 풀어주려고 만남을 주선하신 것 같았다.


커피숍 안에서 이미 이 분들의 소리가 상당히 컸기에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 만 아니라 주위의 대학생들이 다 안 듣는 척하면서 귀를 토끼처럼 쫑긋하게 하고 다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탐정은 아니지만 이분들의 이야기에 심취하여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뭔가 좀 정리를 해드리고 싶어 계속 집중해서 들었다.

2년 동안 힘들었다던 가장 막내 여성이 말을 했다.

“2년 전에 냉면집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언니는 나에게 그 말을 해 놓고 모른 척하고 지금까지 있잖아요. 긴 시간에 내내 그 이야기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섭섭하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자기는 착한 척 그리고 모르는 척하면 어떡해요. 그래도 언니를 나는 믿었어요. 그래서 더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정말 화가 났어요”


“정말 미안해 그런데 나는 냉면집 들어가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그날 나는 너 랑 그렇게 기분 나쁜 상황도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너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한 적도 없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무슨 말로 너를 그렇게 기분 나쁘게 했는지 정말 나는 생각은 안 나고 그래서 더 너에게 미안하고 그래. 그래서 내게 말 좀 해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언니들! 이것 보세요 나는 그 말 때 문에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본인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왜 나 보고 이 자리 오라고 했어요. 오늘 나는 또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네요. 참 기가 찹니다. 그럼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있는 것인가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저는 가야겠어요”


두 사람이 갑자기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기 시작하는 분위기를 잠잠케 하려고 제일 나이 많은 언니가 이야기를 한다.


“그렇네 본인은 상처를 받았는데, 상처 준 사람은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한 다니 더 힘들겠네 그렇지만 본인이 전혀 기억을 못 하니 동생이 한 번만 딱 이야기를 해주고 이제 서로 풀어요”


“절대 못해요 제 입으로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잠시 조용하게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빨간 옷을 입은 여성분이 다시 한번 손을 잡으며


“그래도 2년 동안이나 잘 참았네. 오늘 그냥 시원하게 털어 버려 응 동생”


한참 동안이나 침묵이 흐르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앉아 상처를 주었다는 그 여성분이 기다리다 못해서 드디어 입을 열었다.


“동생 미안해 진짜 나의 마음은 동생을 좋아했어, 아마 내가 편하다고 뭔가를 실수했나 보다.

미안해 말해주면 더 좋겠고 말할 수 없다면 그냥 용서해 줘 아마 내 진심은 아니었을 거야”


이쯤 하면 그냥 말해 주고 시원하게 정리해도 될 것 같은데…


정말 너무 답답해서 나는 그분들이 앉은 테이블로 달려가서 말해 주고 싶었다.


'아고! 본인에게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시원하게 말해 주시고 다 풀어 버리세요. 그 말을 안 해 주시니 이렇게 서로 아프시잖아요. 이렇게 살면 당신이 당신을 더 힘들게 하는 겁니다. 이제 다 가시처럼 아픈 말들은 쓰레기 통에 버리세요. 그것 때문에 평생 아파서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긴 시간 듣고 있던 학생들도 계속 흘깃거리며 쳐다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수근 거리기도 했다.


아마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소통의 중요한 포인트를 교실에서 진행된 어떤 강의 보다 더 실질적으로 가르쳐 준 커피숍의 수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도 강의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그 대화의 결말을 듣지 못하고 커피숍을 나왔다.




길을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 커피숍에 있던 우리가 자신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그 여성분들은 알고 있었을까?

솔직히 소통하지 않아 서로의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고 있고,

그 가시 같은 지나간 이야기들을 안으로 품으면 품을수록 더 아파지는 자신의 상태를 몰랐을까?

그렇게 쓰레기를 안고 살아가는 아픔이 소중한  가족을 정서적으로 아프게 하는지 알지 못했을까?


긴 인생을 살면서 넘쳐 나는 오해의 강물을 잘 다스리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시원하고 솔직한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커피숍에서 잘 배웠다.


요즘도 가끔 그 여성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가 2년 전 냉면집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뭐라고 말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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