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혜경 Aug 28. 2024

기내 화장실/ cabin restroom  

부모의 가장 값진 유산 은 비전

부모로서의 삶이 쉽지 않음을 잘 알지만, 그만큼 소중한 일이라고 믿는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자녀들의 모습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엄마의 삶이라고 느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고 말은 어쩌면 자녀의 얼굴이 평생 눈에서 떠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늦은 나이에 훈련을 받으면서 두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가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아이들과 자주 떨어져 지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동안 한국에서 아빠 엄마를 기다리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을 아들은 나의 머릿속에서 1초도 떠난 적이 없었다.


5개월 동안 떨어져 있는 동안, 아들은 증조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평안하게 잘 자랐다.


내가 도착한 날, 아들은 나를 말끔히 계속 쳐다보거나 피하기도 하고, 밥을 먹을 때 내 옆으로 슬쩍 다가오기도 하고 자신의 관심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0일이 지나서야, 드디어 아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돌봐 주신 할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들어가는데 아들은 할아버지가 따라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만나서 아들과 서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 함께한 든든한 외 할아버지가 안 계신 것이 상당히 불안한 모양이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면서 아들을 안고 달래려 애썼지만, 그 무엇으로도 그 그리움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승무원들이 치즈도 주고  작은 장난감도 주면 조금 조용하다가 겨우 내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동안 많이 자란 아들은 이제 작은 엄마인 내가 편하게 안고 있을 몸무게는 아니었다.

내 품이 좁아 불편한지 깨어나 칭얼거리며 점점 더 큰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 아고 아기가 많이 힘들어하네요. 혹시 아기 입양했나요? "

" 아~~ 아닙니다 제 아들인데, 그동안 친정에 맡겼다가 데리고 가는 겁니다"

" 아고 미안해요. 들어오는 내내 울기에 나는 잘 모르고..."

" 괜찮아요. 엄마가 잘 못한 거죠"


그렇게 말을 하면서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낳은 아들인데.... 입양한 아들을 데리고 가는 엄마 라니...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분은 상황을 보고 하신 말씀인데 내게는 가슴을 팍 찔리는 말이었다.


너무나 울어대는 아들 때문에 기내의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이를 앞으로 꼭 안고 또 재우고 달래며  비행시간 내내 화장실에 머물렀다.


비행시간 내내 기내 화장실에서 나도 울고 아들도 울었다.


드디어 무겁고 지루했던 비행시간이 끝났다.

기내 화장실에서 우리 둘만의 가진 찐한 시간 때문에 아들도 내가 조금은 엄마같이 느껴졌는지 내 손을 잡고 안기기도 하였다. 하강하는 시간에 옆자리에 앉게 하는데도 잘 앉아 있고 안정이 된 것 같았다.


싱가포르로 오는 비행시간 내내 항공기 화장실에 앉아서 와야 했던 아들과 엄마의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여행이 되었다.


드디어 싱그러운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하여 14개월 된 아들을 안고 짐을 들고 조심스럽게 한걸음을 떼었다.

또 아들이 울기 시작할까 봐……


아주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있는 만남의 장소에 도착하니 멀리서 기뻐서 깡충깡충 뛰며 손을 흔드는 딸과 아빠를 보았다.


"아빠다! 어 누나도 나왔네"

갑자기 만나는 아빠와 누나를 보고 놀랄까 봐 아들에게 설명을 하며 천천히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신기하게 아들이 활짝 웃고 서있는 아빠를 향해 제일 먼저 뚜벅뚜벅  걸어가서 웃으며 목을 꽉 안으며 안겼다. 딸은 내게 화들짝 달려와 안겼다.

눈이 팅팅 부은 내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빠가 그동안 아들과 함께 지냈던 삼촌들과 닮았는지 오물오물 아빠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안겼다.

 

급속하게 아빠와 친해진 아들은 그날 밤새 새벽 4시까지 잠을 안 자고 자꾸 밖에 나가 놀자고 아빠를 끌고 나갔다.


아마도 갑자기 바뀐 모든 것들이 신기했나 보다 집에 올라오기 전에 잠시 누나 랑 놀았던 모래 놀이터에서 아빠는 잠 못 이루는 아들과 밤새 놀다가 새벽이 끝날 즈음에 아들을 안고 들어왔다.


그렇게 아들은 아빠와 밤새 신고식을 하였다. 그날부터 아들은 아빠와 더욱 가까워졌다.


아빠를 따라다니고 웃고 아빠에게 뽀뽀를 한다면서 침을 온 얼굴에 범벅을 하고 안기 시작하면 목을 꽉 안아서 자신의 사랑을 힘껏 표현하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부모와 자식의 유대관계는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들이 느꼈을 그리움이 해소되고, 우리는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예배를 같이 보는데 나는 아들을 안고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앞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아들이 갑자기 엉금엉금 기어와 안기더니 잠시 후에 잠을 자는 것이었다.

아들이 내 품을 찾아온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 나는 예배시간에 펑펑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내가 아들에게 엄마로 받아들여졌구나!


내가 엄마입니다. 주님 아기가 내게 이렇게 달려와 안겨 잠이 들 수 있는 엄마입니다.

이제는 아이들과 헤어져 살지 않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주신 가족 잘 지킬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세요.

내가 엄마입니다. 이제 아이가 내게 달려오네요 주님 감사합니다.’


결혼 후 안정된 시기에 아이를 갖기를 기도했지만 우리 부부의 바람과는 달리. 선교를 시작하면서 뜻밖에 딸과 아들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러나 기쁨과 감사함 속에서도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키울 여유는 없었고, 우리 가족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듯 힘겨운 여정을 걸어왔다. 이제 그 여정이 끝난 것일까?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난 두 아이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늘 바뀌는 환경을 함께 이겨내며 부모와 함께 달려야 하는 이 삶에, 아이들은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어디를 가든지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언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시간들이, 나의 두 아이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이 모든 고민들이 내 마음을 깊이 짓누르고 있었다.


자녀를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의 내 삶의 모든 여정은 항상 안전한 상황이 아니었다.

안정을 위해 앞으로 나의 가야 할 길을 포기할 수도 없었고,

과연 그런 삶이 자녀들에게 평생 안정을 보장할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특히 '3살 버릇 80살까지 간다'는 말처럼, 이런 경험들이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고민이 많았다.


나의 어린 시절의 우리 가족의 목표는 아프지 않고 가난하지 않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족의 목표는 우리의 안정감이 아닌 넓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람들과 가난하고 아픈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고 풀어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가족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걸어가는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임을 믿었다.


그 환경에서 부모와 같이 살아내는 자녀들의 성격과 정서에도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들은 부정적인 것 만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온 두 아이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법은, 부모로서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더 담대하게 비전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삶이야 말로 자녀들에게 물려줄 가장 값진 유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전 06화 달팽이 젓갈/ Snail salted pas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