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젓갈/ Snail salted paste

카렌족 할머니와 딸!

by 천혜경

우리의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도전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모든 스케줄이 있다면 정말 안정을 주겠지만,

그 안정을 어느 날 깨버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환경으로 내가 던져지는 경험을 하면서 얻어지는 두려움 속의 깊은 환희는 어디서도 배우거나 들어서 얻어지지 않은 경험인 것 같다.




강의 훈련을 마친 후, 우리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태국의 국경지역 산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카렌족을 만나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딸이 먹을 우유와 물을 가득 담은 배낭을 메고, 19킬로그램의 딸을 등에 업고 매일 산을 오르내리며 힘든 여정을 2달 동안 이어갔다.


카렌 족은 태국의 국경지대의 산속에 살고 있었다.

군데군데 산속 깊은 곳에 작은 무리를 이루어 나무로 만든 2층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아래층에는 기둥만 있는데 아마도 벌레와 해로운 동물들을 피하기 위해 지혜롭게 집을 지은 것 같았다.

그리고 특히 아래층 공간에는 아기 돼지들이 졸졸 떼를 지어 뛰어다니고, 가끔 고함을 지르는 수탉들의 화려한 존재감으로 영역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치앙마이에서 7시간 동안 산을 올라 겨우 찾아간 5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첫 번째 카렌 족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아픈 분들을 치료도 해주고 저녁에는 드라마를 하며 해외에서 온 사람들이 신기해서 몰려온 카렌 족 사람들과 멋진 첫 만남을 가졌다.


며칠 머물며 그분들의 집이나 여기저기 농사나 필요한 것을 도와주었다.

서로 말을 소통하지 않았지만 온몸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하루 종일 디딜방아 같은 것을 발로 눌러 그들이 내일 먹어야 할 쌀의 껍질을 벗기는 일을 돕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은 할머님 이 사시는 이층으로 되어 있는 통나무 집에서 같이 자게 되었는데,

그 집의 가운데는 화로가 있어서 화로를 중심으로 한쪽은 할머니와 아들부부와 손주 그리고 반대쪽은 우리 가족이 잠을 잤다.

전기불이 없는 곳이라 깜깜한 방안에 냄새와 연기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지 답답하고 가렵기까지 했지만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참고 벅벅 긁으며 겨우 잠을 잤다.


이 할머니는 바깥세상에서 온 사람들을 만난 것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리고 특히 어린 딸을 너무 좋아해서 계속 딸에게 먹이라고 주섬주섬 맛난 것을 챙겨주셨다.

그 할머니 집 아래에서 뛰어다니는 작은 아기 돼지를 좋아하는 딸을 신기해하며 돼지를 잡아다가 갖다주고 만지라고 하기도 하며 무척 사랑해 주셨다.


내가 잠시 어디를 다녀오면 그 사이에 딸을 데리고 앉아 자꾸 뭔가를 만들어 먹였다.

나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정말 연기에 그을린 온 집안에서 화로에 불을 피워 뭔가를 주물럭주물럭 만드시는데...


그게 무엇일까?

그 무엇인가를 자꾸 딸의 입과 본인의 입에 넣는 것이었다.


나도 다가가서 보니 오후 내 찌어 만든 밥과 거무티티 한 작은 콩만 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내 입에 넣어 보니 정말 짰다.

손짓과 표정으로 '이게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웃으며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작은 플라스틱 통을 가져오셨다."


이미 플라스틱 통의 겉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할머님이 손을 입에 넣어 한번 흘러 내시고 그 손으로 그을음이 가득한 그 통을 열어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을음이 묻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찍어 내 입에 팍 넣어 주셨다.

나는 뭐라 말도 할 시간이 없이 그냥 그 손가락으로 넣어 주시는 그 무엇인가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완전 아찔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손으로 이것을 2살짜리 딸에게 먹였다니...


일단 우물 거리며 할머니가 주신 것을 옆에서 우물 거리며 먹으며 나를 쳐다보는 딸처럼 같이 우물 거리며 먹었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구수하고 짭짤하고 꼬들한 현미밥이 내 입에서 살살 녹았다.


옛날 할머니가 뭔가 쌈을 싸주셨던 그 음식 같았다.


내가 너무 궁금해서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었냐'라고 온몸으로 물어보니

내 손짓 발짓을 이해 한 할머니가 갑자기 만들고 있는 것 같은 조금 더 큰 통이 있는 곳으로 방금 입에서 빼신 그 손으로 내 손을 잡아끌며 지붕에 닿은 머리를 숙여가며 앞서 가셨다.

나도 방금 내 입에서 나온 손으로 같이 잡고 머리를 숙여서 살살 따라갔다.


까맣게 그을린 뚜껑을 열었는데..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멸치 젓갈 냄새가 같은 것이 온 공간을 진동을 했다.


설마.. 멸치젓갈?


그런데 할머니가 손을 쑥 넣으시더니 뭔가 하나를 꺼내 보여 주셨다.

그리고 손으로 기어가는 것을 흉내 내셨다.


아하! 달팽이

할머니는 내 손을 탁 치시며 내가 소리치는 소리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정말 흔들어 대신다..


와우.. 너무 놀랐다.

멸치 젓갈처럼 이렇게 달팽이젓갈을 만들어 놓고,

매일 쌀을 디딜방아 같은 것으로 찧어서 밥을 하고 이렇게 조금씩 얹어 먹으며 식사를 하였던 것이었다.


나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멸치 젓갈을 좋아하는 외할머니 가 시식을 해주셨기에 참 좋아했었다.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 나는 그 할머니가 만들어 두신 그 젓갈을 딸과 함께 많이 먹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잘 먹는 우리 모녀가 신기했는지,


개구리 다리도 구워 주시고,

도마뱀 다리도 구워 주시고,

까만 뭔가도 구워 주시고,

똥글똥글한 뭔가도 갖다 주시고...

누구 다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먹고 물로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조건 어석어석 한 밥과 그 달팽이 젓갈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배부르다고 안 먹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다가 할머니에게 들키면 할머니가 뜯어 주시는 그을음이 까만 무엇인가를 입에 넣고 그냥 삼 겼다.


그렇게 셋이서 함께 선교하는 시간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딸이 점점 하나가 되었다.

집집 마마 전도하기 위해 방문할 때마다 제일 먼저 사탕을 불쑥 내미는 머리가 곱슬하고 오동통한 한국 여자 아기 때문에 우리 팀은 가는 곳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동네 아이들도 늘 몰려 달려와서 딸 주위에 둘러앉아 뭐라고 하나 들어보려고 자꾸 말을 시켰다.


그때마다 딸은 늘 외웠던 말 ‘지저스 러부유’를 외쳤다.

그러면 애들도 다 따라 웃으며 그 말을 따라 외쳤다.


나의 평생친구 류머티즘은 그때도 나의 온몸의 관절마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산행을 하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매일 밤 다리에 파스를 붙이고 진통제를 먹고 내일은 아프지 않게 걷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고 잠이 들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뜨면 느껴오는 가벼운 상쾌함으로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주시기도 하였다.


같이 선교를 하는 동료 선교사들도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주어진 임무를 잘 감당을 했다.

행복했던 카렌 마을에서의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더 힘들었던 것은 지금 만나는 상황들이 당황스럽고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꾸준히 그 순간을 통과하면서 지나간 그 상황들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되었을 때 정말 우리의 도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달팽이 젓갈과 맛있게 구운 누군가의 다리들을 얻어먹으며 따라다니던 어린 딸의 여정에 하나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가난하고 억울하고 소외되고 버려지고 아픈 자들을 향한 마음을 주시고 계신다.


잘 계획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혼란스럽고 힘든 도전들을 경험할 때, 우리의 이해와 마음은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숙명적인 것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러한 도전이 평생의 길을 발견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귀한 깨달음들은 일상의 틀을 깨는 도전적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소중한 보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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