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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사막의 연가!

떠남은 또 다른 시작이다.

by 천혜경

이집트는 국토의 95% 가 사막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8년 동안 살아낸 경험은 우리 가족에 세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렇지만 매 순간마다 불가능해 보이던 길들이 폭포수처럼 시원하게 열리는 순간을 우리는 자주 만났다.


익숙한 동네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우리를 맞이했다.

장거리 이동을 할 때면 반드시 현지를 잘 아는 사람의 안내가 필요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막에서의 삶은 어느새 우리 가족에게 가장 포근한 집이 되었다.




우리는 현지 사역자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선택했다.

그들의 문화와 생각, 그리고 삶을 깊이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과연 선교란 무엇일까?

늘 그 질문을 품고 고민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우리 가족은 참 많이 배웠고, 지금은 그것이 참 아름다운 우리 가족만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밥을 함께 지어먹고, 밤이면 전기가 끊긴 어둠 속에서 기타를 치며 찬양하고, 하늘 가득한 별을 벗 삼아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광활한 사막 위에 어떻게 경계가 그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땅에, 전 세계의 수많은 중보기도자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울타리가 세워지고, 하얀 벽돌로 강의실과 집이 지어졌다.

경계 없는 그 사막 한가운데 어느새 넓고 아름다운 기도원이 세워져 갔다.


중동에서 처음으로 아랍어와 영어로 진행되는 귀납법적 성경학교를 개척하면서 강의실 준비와 학생 숙소를 위해 가족과 간사들이 함께 손수 나무를 깎아 책상과 의자를 만들었다.

전문가가 아님에도 집을 짓고 가구를 만드는 현지 사역자들의 손길은 놀랍기만 했다.

저녁이면 지평선 끝에서부터 달이 떠올라 곁에 앉은 듯 가까워지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묻어오는 익숙한 모래 향기를 즐기고, 점점 하늘 가득 흩뿌려지는 별빛들이 연출하는 사막의 낭만을 우리 모두 함께 누렸다.


물론 사막의 삶이 늘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거센 모래바람이 불어오면 얼굴을 칭칭 감싸도 모래가 입과 코를 파고들어 폐 속까지 스며들었다.

철제 셔터로 창문을 막아도 모래가 숨결은 따라 파고들어 오는 것은 막을 길이 없었다.

때로는 외로움이 밀려와 똑같이 생겨 떼를 지어 하늘을 나는 새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사막에 우리 가족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그곳은 진정한 배움과 기도의 공동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가족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다가왔다.
아빠 엄마를 따라 살다 보니,

아들은 어느새 이집트에서 관광비자로 지내는 한국 국적의 17세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한국 남성에게는 군 복무의 의무가 있기에, 17세가 되면 더 이상 여권을 새로 발급받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더 머무를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 앞에 서게 되었다.


몇 해 전, 한국의 한 리더가 우리에게 “한국을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고 조심스레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먼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시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20대 말에 고국을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마음속 깊이 늘 그리운 곳은 한국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 길을 여신 다면, 분명 또 다른 사명을 준비해 두셨으리라 믿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사막에서 흘린 땀과 눈물, 함께 울고 웃으며 세운 공동체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우리는 평생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현지인들과 말씀을 나누며 계속 살고 싶었기에...


작년 큰 행사를 치르며 잠시 나라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시간이 다가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떠남의 순간마다 배워 온 것이 있었다.

어설픈 실력으로 쌓아 올린 담들 과 8년의 긴 시간 동안 하나하나 개척하여 현지인들에게 주어진 사역들은 이제 우리의 손을 떠났다는 것, 결국 이 모든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바람처럼 왔다가 갈 수밖에 없는 시간여행자 같 이방인들은 다시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었다.


사막을 떠나는 우리의 발걸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두 아이들 역시 헤어짐이 쉽지 않은 과정을 겪으면서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담담히 받아들였다.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애착을 가지고 사용했던 물건들을 하나씩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8년의 추억을 곱게 포장해 나눠 주는 것과 같았다.

아침이 밝기 전, 사막의 공동체와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공항으로 향했다.



그 순간, 사막의 지평선 위로 불타는 듯 눈부신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끝없는 모래 위, 오직 하나뿐인 도로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마치 이집트의 하늘이 태양의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 가족에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장엄한 인사 같았다.

그 빛은 우리가 사막을 떠나는 길 내내 눈부시게 비추어 주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펼쳐진 이 놀라운 자연의 환송에 감격하며, 이제 시작될 고국에서의 새로운 여정에도 동일한 은혜와 약속이 이어지리라는 확신을 깊이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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