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오후의 진실
“엄마, 나는 엄마가 잠잘 때가 제일 마음이 우울해져요. 엄마, 제발 오후에는 자지 마세요.”
딸이 조심스럽게 꺼낸 그 한마디가 내 가슴을 콕 찔렀다.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자주 쓰러져 잔줄 몰랐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마음이 무거울 정도로 자주 드러누웠다니....
언제부터인가 오후만 되면 내 몸은 어딘가 꺼져버리는 것처럼 축 늘어졌다.
아무 힘도 없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짜증이 늘었고, 울분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저 중년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때때로 게을러지고 감정 조절 못하는 내가 너무 못 마땅해 속으로 엄청 괴로워 자책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선교를 시작할 때부터 내 몸은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파키스탄으로 향하던 첫날,
비상약도 없이 탔던 그 비행기 안에서 뜨거운 열과 구토를 참으며 14 시간을 견뎌야 했었다.
좌석에 앉아 꼼짝없이 덜덜 떨며 이겨낸 그 시간이, 내겐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그 이후 신장에 이상이 생겼고, 류머티즘과 결핵까지 겹쳤었다.
하지만 나는 늘 믿었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해야 해.” 그렇게 열심히 버티며 살아왔었다.
또한 나는 어릴 적부터 평생 아픈 몸으로 살아가신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엄마는 늘 아프기 전에 미리 약을 챙기셨고, 나는 그 모습을 당연하게 여겼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니고 다닌 약 가방은 내 일상이었고, 건강은 내 책임이었고,
내 삶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몸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몸은 자꾸 가라앉았고,
나는 그저 피곤한 줄만 알고 아무 생각 없이 누웠던 것이
사랑하는 딸에게는 슬픔과 우울로 전해졌다니...
그래서 나는 억지로 자지 않으려고 아이들과 운동도 하고 나가서 걷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외동딸인 나는 가족과 상의 끝에, 홀로 입원하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만에 그리웠던 어머니를 만나서 너무 기뻤다.
옛날에 다니던 병원에 아프신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틈틈이 그 병원에 근무 중인 친구들을 만나며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친구의 권유로 아무 생각 없이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결과지를 본 친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좋은 선생님을 아는데, 꼭 진료를 받아봐. 어서 가." 그녀는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초음파 검사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갑상선에 종양이 보입니다.
모양이 악성입니다.
조직 검사를 해야겠네요.”
나는 모든 세포가 멍해졌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무리 담담하려 해도 ‘종양’ 그리고 '악성'이라는 단어는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선교지로 돌아가기 전 수술을 하자고 권했다.
예상 밖의 결과에 나의 마음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당장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나는 병실로 돌아가 어머니를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 일 없는 듯이 돌봐드렸다.
먼 이집트에서 걸려온 전화, 남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
“서울의 병원에 가서, 꼭 다시 한번 확인해 봐요.”
나는 어머니를 퇴원시키고, 곧장 서울의 큰 병원으로 향했다.
정밀 검사를 받고, 결국 조직검사까지 진행되었다.
결과는 역시 갑상선 모양이 악성 같은 경계성 종양 그리고 기능 저하 라고 했다.
“수술은 아직 급하지 않아요. 1년 뒤에 다시 봅시다.”
의사 선생님은 다정하게 말했다.
갑자기 몸속 생겨난 작은 조직 하나로 인해 감정이 하늘과 땅만큼 이나 널뛰며 요동치는 나를 보며 놀랐다.
'인생의 긴 시간 동안 잘 사용했는데,
이때쯤 내 몸이 피곤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그래도 내 몸에 새로 알게 된 존재인데 두려워하며 내치지는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이 한결 가라앉았다.
일단 어머니도 회복되셨고, ‘1년 뒤에 보자’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동안 쉽지 않은 젊은 날의 여정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나도 모르는 깊숙한 세포들을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이렇게 정리해 주고 계심에 감사를 드렸다.
흔들릴 때마다 울며 기도했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나의 연약함은 때때로 나 자신을 실망스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두려워하지 말자고 천만번도 더 다짐했다.
결국, 한여름의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시간이 지나가고, 나는 다시,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늙으신 부모님을 두고 홀로 먼 나라, 내가 살아야 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왠지…
유별나게 살아가는 딸을 둔 부모님께 너무너무 미안했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기만 하다가 이렇게 약해져 버린 엄마가 되어버린 것이
아이들에게도 미안했고,
그리고…
너무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내 연약한 육체에게도 미안했다.
하지만 그 연약한 몸이 지금까지 나와 함께 열심히 살아주었음을 생각하니
문득, 그 육체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졌다.
‘내가 그래서 피곤했던 거구나…
그래서 그렇게 자꾸 누웠던 거였구나…’
그동안 미처 듣지 못했던 내 몸의 비명을 이제야 조금은 알아듣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하는 그 땅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두려움과 슬픔과 수많은 생각들을 올려드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생명과 미래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나의 하나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