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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명 용사들의 발자국!

도전과 은혜

by 천혜경

늘 공항에 들어설 때면 마음이 설렌다.
머나먼 땅에서 지내다 보니, 누군가 우리를 만나러 이곳까지 찾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공항으로 달려가는 길은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공항에 상주하며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몇 달 전, 한국에서 중요한 연락이 왔다.
“이번에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한국분들이 이집트에 가기로 했습니다.”


매년 귀한 선물을 들고 이곳을 찾아와 이집트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했지만,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 달간 한꺼번에 오시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난감했다.

예상 인원이 무려 1500명이라니....


우리가 중동에서 살고 있는 삶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늘 보안과 위험을 의식해야 했고, 갑작스러운 무리의 방문은 우리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었다.


누가 나라의 경계를 막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과 발걸음은 결국 하나님의 뜻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드디어 우리는 카이로 공항에서 1500명의 귀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과 대사관, 여러 기관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50대 가 넘는 큰 버스를 빌려야 했고, 관광회사와 손발을 맞추며 모든 일정을 조율해야 했다.




문제는 그분들은 안내해야 하는 인도자였다.

그분들을 다섯 나라로 나누어 이동해야 했는데, 같이 할 분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빠 엄마와 같이 사역하던 15살 아들과 16살 딸까지 팀을 맡게 되었다.


15살 아들은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로 들어가는 젊은 팀을 맡았다.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 국경을 넘어야 했고, 재정도 넉넉지 않아 가장 값싼 숙소와 교통편을 찾아야 했다.

항상 밝고 까불 까불 하는 사춘기 아들을 이분들을 인도하라고 보내는 내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집트 국경, 요르단 국경, 그리고 시리아까지… 그 모든 국경을 지나며 수십 명을 인도해야 한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물론 거점지마다 연결망을 만들어 두었지만, 언어와 교통, 재정 문제까지 생각하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진실해 늘 고민이 많은 사춘기 16살 딸은 다행히 이집트 안에서 수단 국경까지 가는 팀을 맡게 되었다.

리더 인 남편은 한 팀을 이끌고 가장 어려운 리비아 국경을 넘어가야 했다.

나는 이집트에 남아 모든 팀들의 의료와 소통을 도왔다.

이집트와 수단, 리비아,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 이스라엘… 어느 나라 하나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엔 더욱 불안했다.


어떤 팀은 겨우 비행기표만 마련해 와서 숙식비조차 부족했다.

도착하는 곳마다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이동하고 머물러야 했기에, 딸과 아들의 감당이 얼마나 클지 걱정이 되었다.

엄마로 간절히 기도하며 두 아이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그동안 이 땅에서 살아온 경험과 언어 실력을 믿고,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준 뒤 넓은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핸드폰도 비싸고 귀한 시절이라, 거점지에서 한 팀에 하나씩 주어진 전화를 통해 무사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어린 인솔자는 누구보다 든든하게 팀을 이끌었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그 땅의 언어로 안전하게 인도하고, 길잡이가 되어 어려운 상황들을 풀어나갔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십 대의 딸과 아들은 어느새 중동의 삶을 이해하고 견뎌낼 줄 아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든든한 동역자가 되어 있었다



감사는 준비보다 더 컸다.

시내산에 함께 올라 하나님을 예배하며 감동을 나누는 시간, 아브라함도, 요셉도, 예수님도 지나가셨을 땅에서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올려드린 감사의 고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여정은 언제나 예기치 못한 일과 함께했다.

시내산을 오르는 마지막 길목에서 많은 분들이 갑자기 배앓이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메바성 이질이었다.

이 땅의 병은 이 땅의 약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급히 약 500 알을 구해 50대가 넘는 차량을 돌며 배앓이에 시달리는 분들께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쓰레기 마을의 동굴 교회에서 들려온 한국어 찬양 소리는 지금도 귀에 선하다.

거칠고 황량한 이집트 땅을 가득 메운 찬양은 내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사랑하셔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한국 사람 1500명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셨다.

그리고 그들의 입술을 통해, 이집트를 향한 기도와 노래가 하늘로 울려 퍼지게 하셨다.


무사히 일을 마치고 온 딸과 아들은 너무나 대견하게 자기 보다 나이 한 참 많은 분들을 잘 인도하고 안전하게 귀가하였다.

각 팀원들의 간증과 기적의 이야기들 그리고 아들과 딸의 무용담을 들으며 그 두 아이를 보호해 주신다고 바쁘게 움직이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날의 그들이 밟고 걸어간 땅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내 기억에 또한 함께 한 1500명 용사들의 삶 깊은 곳에서 살아 움직일 것을 믿는다.

설령 우리가 이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할지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우리 부부의 마음은 시원했다.


그들은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이집트를 위해 부르신 군대였고, 사랑으로 이 땅의 미래를 하나님 앞에 올려드린 예배자들이었다.

그날의 발걸음과 기도는 지금도 이 땅에, 그리고 그들의 삶에 살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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