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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의 조앤 Oct 30. 2022

집밥 태동기, 논현 주점



주방 겸 거실 1, 침실 1, 다용도실 1, 화장실 1. 신혼가구가 살아도 부족함이 없을 12평 논현동 빌라는 독립 후 두 번째 집이었다. 그 집을 초대받은 이들이 항상 집을 둘러보자마자 자리에 앉으며 하는 첫 질문은 집 얼마야? 그다음 멘트는 이사 갈 때 자기한테 언질 한 번 주라는 말. 그런 대화를 나누며, 최대 8명까지 둘러앉을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에 앉은 친구에게 웰컴 드링크를 서브할 때는 살짝 우쭐해진 채로 부모로부터 경제적, 신체적으로 독립한 삶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긍정적 에너지를 가져오는지 설파했다.


논현 주점의 여름 시즌 1















그러나 그 주체성이 집밥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나 혼자만을 위한 집밥을 매번 해 먹는 일은 2010년대 서울에서는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식재료 관리, 조리 및 뒷정리 시간과 그에 따르는 체력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그보다는 집 앞 순두부집, 우동집에서 빠르게 한 끼를 때우는 편이 나았고 에디터인 나조차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생기는 서울 및 전국 맛집을 취재 삼아 체크하는 일만으로도 식사는 충분히 해결됐다. 집밥을 위해 사용할 체력은 맛집 서치와 이동, 매거진 기사 또는 개인 SNS 후기 작성으로 대체됐다. 이런 상황을 백만 번을 설명했음에도, 백만 일 번을 본인의 고집대로 김치, 각종 반찬, 과일 등으로 나의 냉장고를 채워주던 엄마는 햇김치가 묵은지를 넘어 거의 뭉그러지는 지경을 목도했을 때쯤에야 나의 끼니 걱정을 멈췄다. 아니, 단념했다. 


그러니, 런던으로 유학 가기 전, 집밥과 관련된 기억의 중심에는 외할머니와 엄마가 있다. 집밥은 '집에서 만든/먹는 밥'이라는 의미 외에도 많은 뜻을 내포한다. 집밥을 준비하고 만드는 행위, 함께 할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 여분의 음식을 나누는 일, 다음을 기약하는 일, 그 처음부터 끝 사이에서 피어나는 그 모든 감정. 주부를 라이프스타일 종합예술인이라고 여기는 나에게 외할머니는 명인 1호, 엄마는 명인 2호였다. 맏딸이자 맏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온 명인 2호는 명인 1호로부터 물려받은 음식과 관련된 감각, 지혜, 풍요로움을 겸비한 채 명절, 김장철, 집안 행사, 온갖 절기에 맞는 음식으로 집안사람들과 주변인들을 따뜻하게 데웠다. 

두 명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서당개 30년 경력의 미생은 내 공간이 생기자 틈만 나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메인 디쉬는 배달, 주류와 스낵은 프리미엄 식료품점에서 공수하는 방식으로 집밥을 준비하고 만드는 행위는 대체됐지만 이외의 모든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새에 두 명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었다. 집이 강남 역세권이라, 친구들이 퇴근 후 모였다가 흩어지기에 좋다는 장점도 한몫했다. 졸려서 이 집을 나갈지언정 배가 터지기 전에는 못 돌려보낸다는 듯 끊임없이 술과 음식을 내며 나는 논현 주점식 호스피탈리티를 실천했다. 새벽 5시에도 매운탕을 배달받을 수 있는 배달 천국 서울에서의 흥겨운 나날이었다. 내가 유학을 떠난다고 하자, 더 이상 논현 주점에서 모일 수 없다는 사실에 친구들은 몹시 아쉬워했다. 가끔은 나와의 잠정적 이별보다 논현 주점과의 영원한 이별을 더 안타까워하는 느낌도 받았지만 그들에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끼던 단골집의 폐업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었을 것이다. 


논현 주점은 마침 이사 시기가 맞았던 친구에게 넘겼다. 집주인 할아버지가 ‘아주 오묘한 색’이라고 아주 오묘한 뉘앙스로 말씀하셨던 벤자민 무어 페인트의 마운틴 라우렐 컬러로 문과 몰딩을 직접 칠한 그 집에 생전 남이 아닌 친구가 들어온다고 해서 정말 기뻤지만, 보다 세심한 호스피탈리티를 실현하고자 음식과 계절에 맞춰 사 모은 접시와 각종 집기들을 팔면서는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런던에 오고 몇 달 뒤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 너한테 산 그릇들, 올해 나의 최고의 소비였다. 얼마나 잘 쓰고 있는지 몰라


떠나보낸 자식에게 미련을 갖는 엄마의 마음이, 친구의 한 마디에 녹아내렸다. 논현 주점은 폐업했지만, 집기들은 또 어디선가 사용되면서 이야기가 덧입혀지겠지. 쿨하게, 깔끔하게 모두 정리하지 못하고 결국 런던으로 가져온 몇 개의 커트러리도 함께. 





논현 주점의 여름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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