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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Feb 09. 2023

겨울의 프리타타와 크리스마스 트리


어느새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거리 곳곳에 트리와 전구가 장식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부드럽고 따뜻한 음식 '프리타타'.


프리타타는 달걀물에 다양한 채소, 치즈 등의 재료를 넣어 만든 간편한 이탈리아식 오믈렛이다. 프리타타를 만드는 방법은 쉽고 간편하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 둔 양파, 파프리카, 버섯, 시금치 등을 프라이팬에 잘 볶는다. 어느 정도 익었다면, 잘 풀어 둔 달걀물을 그대로 팬 위에 붓고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를 장식하듯 예쁘게 올린다.


이제 프리타타가 익어가 길 기다릴 차례. 익어가는 프리타타가 어쩐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인다. 시금치 가 초록빛 트리를, 조각조각 색색의 파프리카와 채소들은 트리의 오너먼트를 혹은 작은 전구처럼 반짝인다. 팬을 가득 채운 부드러운 노란빛 달걀물은 깊어 가는 겨울밤 여럿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의 조도와 같이 따스하다. 어느새 완성된 프리타타를 접시 위에 올리면

케이크 같이 근사해 보인다. 조각케이크 모양으로 컷팅한 뒤, 접시 위에 올려주면 특별한 날인 것 마냥 착각하게 되는, 크리스마스를 닮은 음식 프리타타.


프리타타(frittata)는 "튀기다(to fry)"의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프리게레(friggere)'의 과거 분사형인 'fritta(튀긴)'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과 그 밖의 재료들을 가볍게 튀기듯 구워낸 요리 방법에서 유래했으리라.


하지만 따뜻하고 마냥 부드러울 것 같은 프리타타라는음식에게 이상한 별명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프리타타는 '엉망진창인 상황이나 상태'를 뜻하는 속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추측을 해보자면, 노란 달걀을 곱게 덮어 속이 보이지 않는 기존의 오믈렛과는 반대로 자신의 속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프리타타의 모습을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엉망진창인 속을 덮을 수 없었던 것은 워킹맘인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숨기려해도 어쩔 수 없이 보여지는 워킹맘이라는 굴레는 생각보다 혹독했고 수없이 나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방학 때마다, 아이에게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겼을 때마다, 못다 한 일을 새벽에 처리할 때마다 엉망진창인 집을 볼 때마다 나는 여과 없이휘청였다. 모래주머니를 팔과 다리에 달고 뛰려고 애쓰는 나날들. 얼마 뛰지도 못했는데, 늘 제일 먼저 쓰러져 버리는 하루 끝에서 말할 힘도 없어서 조용히 식어가는 프리타타가 되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뒤죽박죽이면 어떤가. 어쨌든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아이가 내 곁에 잠들어 있다. 엉망진창이면 어떤가. 프리타타는 어쨌든 한끼 근사하고따뜻한 식사가 되지 않았는가. 심지어 차갑게 식어도 맛있다. 나 같은 워킹맘에게 후루룩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요리이기까지 하다. 마음이 한겨울인 어떤 날에는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어도 맛있는 프리타타를 먹어보면 어떨까? 올 한 해가 유난히 힘들었다면, 힘들었던 시간들이 쌓이고 모여서 결국에는 이렇게 따뜻하고 맛있을 거라고. 엉망진창 같아도 크리스마스 트리같이 한데 모여 반짝이고 있을거라고.



이 글은 기상청 기관지 <하늘사랑> 2022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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