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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Dec 29. 2022

퇴사하기 좋은 날씨

다들 이렇게 살아가나요


드디어 퇴사했다. 

높은 업무강도와 나에게 맞지 않는 업무의 강요. 에디터인지 마케터인지 몰랐던 나날들 속에서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사실 퇴사는 입사할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었다. '아, 나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입사 한달 만에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처음에는 적응하면 괜찮아지겠지로 시작했고, 수습딱지를 떼고 '완벽하다'라는 동료들의 평가에 잠시 마음을 달랬고, '퇴사'라는 단어조차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업무에 묻혀있었다.


1년을 연봉인상, 금융치료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1년이 되었을 때 깨달았다. 아, 나는 연봉이 중요한게 아니었구나, 라는 사실. 연봉이 10%인상되었지만 기쁘지 않았고 허탈했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회사는 성장의 성장을 거듭했다. 직원이 4배나 늘었고, 매출액도 매달 경신했을 정도로 빠르게 커갔으며, 스타트업의 암흑기라는 이 시기에 투자까지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런 성장하는 회사에서 버티면, 직급도 오르고 조금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또 몇달을 버텼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과는 별개라는 사실과 함께, 일에서 오는 보람이 없자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마음의 결심과 다르게 입밖으로 내보내기까지는 또 다른 결심이 필요했다. 

이주간의 치열한 눈치게임 끝에야, 퇴사를 고했고 그렇게 탈출할 수 있었다. 


이제 곧 퇴사 한달 차가 되어간다. 남편과 같이 퇴사한 덕분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여행도 원없이 다니고 중간에 코로나 걸린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완벽하게 해줄 수 있었다.(직장다니는 중에 남편이 격리였으면, 나는 미쳐 날뛰었을지 모른다.) 남편의 병원도 함께 가줄 수 있었고 그동안 손 놓았던 집안 일도 하나, 둘씩 해결해나가면서 집안이 온전해지고 있다. 


퇴사를 하고 느낀 사실은, 아이가 있는 집에서 부모 중 한 명은 아이를 케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집에 있자 아이는 부쩍 내던 짜증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더이상 엄마 또 일해? 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나도 여유가 있으니,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원없이 책을 가져와도 읽어줄 수 있다. 


쫓기지 않는 삶. 이런거였구나. 매일 발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되며, 여유롭게 아이를 포용하고 내 자신을 볼 수 있는 그런 삶. 그걸 모르고 여지껏 아둥바둥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던 내 모습이 슬퍼졌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언젠가 다시 일을 시작하겠지. 그때는 돈이나 명예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 원없이 글을 쓰고(내가 원하는) 삶의 밸런스를 맞춰갈 수 있을.


그리고 퇴사는 겨울에 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 추워서 여행다니기도 힘들고 밖에 나가 산책하기도 쉽지 않은 겨울보다는 봄, 봄이 좋을 것 같다. 사실 퇴사만하면 마음이 봄인데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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