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렇게 살아가나요
드디어 퇴사했다.
높은 업무강도와 나에게 맞지 않는 업무의 강요. 에디터인지 마케터인지 몰랐던 나날들 속에서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사실 퇴사는 입사할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었다. '아, 나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입사 한달 만에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처음에는 적응하면 괜찮아지겠지로 시작했고, 수습딱지를 떼고 '완벽하다'라는 동료들의 평가에 잠시 마음을 달랬고, '퇴사'라는 단어조차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업무에 묻혀있었다.
1년을 연봉인상, 금융치료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1년이 되었을 때 깨달았다. 아, 나는 연봉이 중요한게 아니었구나, 라는 사실. 연봉이 10%인상되었지만 기쁘지 않았고 허탈했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회사는 성장의 성장을 거듭했다. 직원이 4배나 늘었고, 매출액도 매달 경신했을 정도로 빠르게 커갔으며, 스타트업의 암흑기라는 이 시기에 투자까지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런 성장하는 회사에서 버티면, 직급도 오르고 조금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또 몇달을 버텼다. 하지만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과는 별개라는 사실과 함께, 일에서 오는 보람이 없자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마음의 결심과 다르게 입밖으로 내보내기까지는 또 다른 결심이 필요했다.
이주간의 치열한 눈치게임 끝에야, 퇴사를 고했고 그렇게 탈출할 수 있었다.
이제 곧 퇴사 한달 차가 되어간다. 남편과 같이 퇴사한 덕분에 남편과 아이와 함께 여행도 원없이 다니고 중간에 코로나 걸린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완벽하게 해줄 수 있었다.(직장다니는 중에 남편이 격리였으면, 나는 미쳐 날뛰었을지 모른다.) 남편의 병원도 함께 가줄 수 있었고 그동안 손 놓았던 집안 일도 하나, 둘씩 해결해나가면서 집안이 온전해지고 있다.
퇴사를 하고 느낀 사실은, 아이가 있는 집에서 부모 중 한 명은 아이를 케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집에 있자 아이는 부쩍 내던 짜증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더이상 엄마 또 일해? 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나도 여유가 있으니,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원없이 책을 가져와도 읽어줄 수 있다.
쫓기지 않는 삶. 이런거였구나. 매일 발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되며, 여유롭게 아이를 포용하고 내 자신을 볼 수 있는 그런 삶. 그걸 모르고 여지껏 아둥바둥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던 내 모습이 슬퍼졌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니, 언젠가 다시 일을 시작하겠지. 그때는 돈이나 명예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 원없이 글을 쓰고(내가 원하는) 삶의 밸런스를 맞춰갈 수 있을.
그리고 퇴사는 겨울에 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 추워서 여행다니기도 힘들고 밖에 나가 산책하기도 쉽지 않은 겨울보다는 봄, 봄이 좋을 것 같다. 사실 퇴사만하면 마음이 봄인데 어떠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