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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라 Oct 22. 2023

이토록 낯선 봄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적 중 하나" 

김소연 시인의 책 <한 단어 사전>에는 봄을 이렇게 표했다. 그렇다. 봄은 흔하지만 선명한 기적 중 하나다. 계절의 격차가 만든 작은 기적. 봄의 기적은 또 있다. 바로 꽃이다. 여기저기 팝콘처럼 피어나는 꽃으로 골목길까지 풍경이 해사하다. 길을 가다 사진 찍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꽃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홀려 벚꽃을 찍기도 하고, 그 아름다움을 벗 삼아 함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그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하는 봄은 낯설었다. 


봄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고 싶어지면서 봄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보는 봄이 아니라, 보여주는 봄이랄까. ‘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은 사뭇 달랐다. 흔한 꽃들도 아이에게서는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졌다. 자기 멋대로 꽃과 나무 이름을 지어 부르기도 하고, 너무 예쁘다며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어서 등원 시간마다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예 꽃이 만개한 봄날에는 등원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마음껏 꽃을 보고 나서도 아쉬움 가득한 발걸음을 이끄는, 나비라도 보게 되면 하루종일 나비 이야기로 조잘거리는 아이에게 봄은 그 자체만으로 기적이었다. 


아이를 만나기 전에 나에게 이토록 낯선 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의 봄의 농도와 색깔과 온도가 나의 봄과는 전혀 달랐다. 저렇게 있는 그대로 제 속에서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는 일은 봄 그 이상으로의 기적이었다.  


꽃잎을 주으러 다니고, 나비를 따라가고, 개미의 행렬을 한참 구경하는 아이를 보며 기억이 희미한 어린시절을 떠올려본다. 꽃잎을 주워 돌로 찧고, 분꽃을 씨앗을 한아름 따다가 소꿉놀이를 했던 일들. 나비나 메뚜기를 잡고 골목마다 소란하게 뛰어다니다보면 저 멀리서 퇴근하는 아빠를 발견하고 와락 안기던 일. 아빠가 힘들게 끌고 오던 세발 자전거. 사진같이 장면 장면 조각난 기억들을 끼워맞추니 어쩐지 따스하다. 


너는 그저 봄이구나. 연두빛 고운 물을 온몸으로 틔워내는 봄을 따라 옮겨 다니는 철새처럼 봄만 따라다니며 옮겨 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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