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순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의 한 교수님은 인생계획을 세우고자 할 때 자신이 죽는 순간의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하셨다. 어떤 모습으로 생을 마감할지 그려보고, 그런 모습이 되기 무얼 해야 할지 거꾸로 차례차례 생각하다 보면 오늘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과거에, 삶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낸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자문했던 적이 있다. 고민의 결과, 나는 죽는 순간까지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끝에, 말년에는 ‘몸 쓰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머리 속에 그려진 장면은, 뉴질랜드나 아르헨티나 시골에서 소와 돼지, 닭과 오리를 직접 기르는 것이었다. 몸 쓰는 일 외에도 세상에 도움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 좋을지 새로운 시대의 직업에 대한 연구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종종 지인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하려면 우선 넓은 땅과 전용 비행기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추면 좋을 것 같았다. 부자가 된다든지 크게 성공하겠다는 류의 막연한 목표에서 그치지 않고, 재산 규모나 이런 삶을 시작할 시점의 나이 및 건강상태 등 갖춰야 할 사항들이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그런 구체적인 사항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시간 역순으로 검토하다 보니 오늘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위의 미술대학 교수님의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는데, ‘삶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죽는 순간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모두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죽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삶의 마지막 모습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 한해 적용되는 것 같다. 만약,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른 시점이라면, 그 모습을 기준으로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가령, 누군가는 결혼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이 결정적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슬램덩크’ 마지막 부분에서 허리를 다쳤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조금 더 뛰겠다는 주인공 강백호가 감독인 안선생님께 이런 말을 한다.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사진출처: Rookie 매거진)
각자의 미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중에서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을 생각해본다. 그 순간에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려본다. 그 모습이 명확해지면 그 순간 그 모습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차례차례 생각해본다.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을 기준으로 고민해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인생계획을 세울 때, 죽는 시점이 아닌 다른 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를 이룬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어느정도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이룬 후 삶의 의욕을 갑자기 상실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