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피 Feb 14. 2023

6. 엄마의 퇴근을 환영합니다.


한자 공부를 조금 더 하고 올걸 그랬을까요? 


바둑을 한 판 더 두고 올걸 그랬을까요?


동생이랑 달려오지 말고 걸어와볼걸 그랬을까요?


우리가 너무 빨리 집에 와 버렸던 걸까요?


불 꺼진 집에 동생과 나, 단 둘이 들어가는 건 솔직히 좀 그래요. 


순식간에 온 집에 불을 켜고 티브이를 틀면 좀 낫긴 하지만요, 밝은 낮과 다른 어둑한 밤에 우리 둘이 있기엔 좀 무서워요.  




조금만 기다리면 오실 거라 생각하고 우린 또 티브이를 봅니다!!


절대로 우리가 티브이를 보고 싶어서 보는 게 아닌 거 아시죠? 


티브이를 보니까 좀 안정이 되는 것도 같아서 그래요. 


오늘따라 엄마가 늦으시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보는 거로 해주세요.


이대로 우리 옆 자리에 엄마가 오시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요. 


우린 하루 종일 티브이 본 게 아니라 오늘 처음 보는 셈이죠.


아시다시피, 지금 티브이를 보는 건 그 목적이 아까랑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저 멀리서 자그마하게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3초


2초


1초


우리는 안 봐도 알 수 있어요. 엄마가 오신다는 걸!


이때는 나이 상관없는 거 아시죠? 저와 동생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내복 바람으로 튀어나갑니다. 


엄마~~~~~~~~~~~~~~~~~~~


엄마에게 묻어 있는 엄마의 바깥 냄새를 확인합니다. 


우리 엄마가 맞아요!!!!!!!


티브이도 더는 재미없습니다. 


오직, 엄마!!!!!!!!!


그런 엄마가 우릴 꼭 안아 주시고는, 챙겨놓고 간 저녁 먹었냐고 물어보시네요.



아... 차... 차...


괜찮아요. 깜박하는 게 국민학교 학생 주특기 아니겠어요. 


이제 엄마랑 같이 먹으면 되잖아요.  국민학교 5년차 짬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주방을 바라보시고... 표정이 일그러지십니다.


네... 알아요. 바로 저의 그 스페셜 계란말이 팬케익 때문이지요. 


일단 주방을 엉망으로 해놓은 것에 1차로 혼납니다.


동생을 이 시간까지 굶긴 것에 2차로 혼나고요.


제가 밥을 안 챙겨 먹은 것에 3차로 혼나게 되네요.


힘들게 일하고 오신 엄마께서 주방을 치우느라 한참을 일하시게 하다니, 조용히... 방에 들어가 제가 저를 혼냅니다. 


저요? 더 이상 괜찮지 않아요... 


그래도 일단은 엄마가 집에 있잖아요.


그럼 됐어요. 


제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무래도, 엄마의 퇴근을 환영하는 게 더 중요해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날 밤, 엄마는 접촉사고가 났던 것 같아요. 


가만히 있는 엄마차를 누가 들이받았다나...


얼핏 얼핏 엄마가 전화하는 걸 들은 것도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제가 몰라야 되는 건 모르는척 해야 하니까 다 알면서 기억 안 하는 걸 수도 있지만요.


전 그때만 해도 간단한 접촉사고에도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그냥 차가 부서져서 아깝다는 생각 정도 했던 것 같은 그런 금요일 밤이었어요. 


엄마는 많이 아팠을 것 같은데 저희에게 별 이야기는 안 하셨던 것 같아요. 


그냥...


토요일인 내일도 일 하러 가셔야 할 것 같다고만 하셨죠. 


그 말은 저와 동생은 내일은 학교 갔다가 할머니댁에 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어머 그러고 보니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 갔네요...?








이전 05화 5. 호랑이 선생님과 하루를 보내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