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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피 Feb 14. 2023

9. 괜찮지 않은 딱 한 가지


할머니는 엄마가 어디 계셨는지 알고 계실 것 같았어요. 


할머니께 혼나는 것보다 엄마가 없는 게 더 무서웠기 때문에, 곧장 할머니께 전화드렸죠. 


어린애들 둘이만 가버렸다고 혼날 줄 알았거든요? 


근데 할머니는 그러지 않으셨어요. 제가 잘 찾아갈 줄 아셨대요. 


되려 할머니께서는 동생이랑 아침밥 잘 챙겨 먹고, 둘이 집에서 엄마 기다리고 있으라는 거예요. 


엄청 엄청 혼날 줄 알았는데, 진짜 다행이죠?




맞다. 엄마가 동생 굶기지 말랬다! 그날따라 엄마 말씀이 잘 생각나네요. 


쌀 씻어서 압력밥솥에 올립니다. 휙 소리 나고 밸브가 몇 번 돌면 불을 줄이고, 거기서 조금 더 기다렸다 불 끄면 밥이 된답니다. 


냉장고에서 김치랑 반찬을 꺼내고요. 


계란 프라이를 할까 잠시 고민했는데 안 하기로 합니다. 


적어도 오늘은 계란 프라이를 포기하는 게 좋겠어요. 동생도 이젠 괜찮대요.


아무도 혼내지 않았는데 혼나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얼마나 나이를 먹으면 이 느낌이 뭔지 알게 될까요?


엄마는 도대체 언제 오실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동생과 단둘이 조용히 아침밥을 먹었어요.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요일 아침마다 티브이에서 디즈니 만화영화를 틀어주거든요?


어린이라면 그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 해도 말이죠. 


혹시나 놀랬을 동생을 위해 티브이를 틀어줍니다. 아 물론~ 저도 보고요!


근데, 만화영화를 보다가도 계속 집이 깨끗한지 둘러보게 되네요. 자꾸 신경 쓰여요. 


우리가 아침밥 먹고 소파에 앉아 티브이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작은 방도 괜찮고, 큰 방도 통과예요.


이번엔 정말이지 주방도 괜찮을 거예요.


동생 밥 챙겨줬으니 엄마 대신 언니가 엄마 되는 것도 이번엔 까먹지 않았어요. 


이제 엄마만 오면 되는 거죠. 


엄마 어디 간 거야~~~~ 외치고 싶지만 옆에서 신나게 만화영화 보고 있는 동생이 있어서 꾹 참았어요. 




그쯤이었어요. 


뭉툭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엄마가 오신 거예요!!!!


엄마는 우릴 보자마자 난리가 났어요. (아니 할머니도 화를 내시지 않았는데 엄마가 왜?!!!)


왜 할머니집에 가만히 있지 않고 둘이서 돌아다니느냐, 어떻게 집에 온 거냐며 나무라셨죠.


"그게 뭐가 어려워! 버스 타고 왔지!!!!!" 말하고 나니 괜히 스스로 뿌듯한 거 있죠?


엄마가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지만, 전 엄마가 진짜로 화나신게 아니란걸 눈치챘어요. 


우리가 이렇게 잘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실 테고, 금방 풀리실 거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저도 이제 엄마가 왔으니 다~~~~ 괜찮아졌어요. 


일요일 디즈니 만화가 끝나버렸지만 그것도 괜찮아졌고요. 


이렇게 일요일이 가고, 월요일이 다시 돌아오면 동생과 같이 밥 먹고 학교 가야겠지만 그것도 괜찮을 거예요. 


사실 무엇이든 괜찮아요. 


우리에겐 엄마가 있잖아요. 




근데 주말 동안 우리 엄마가 뭐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도 그게 너무 궁금해서 귀 쫑긋 레이더를 가동해 봤거든요?


금요일에  엄마가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났잖아요. 주말 내내 그거 처리하고 병원에서 치료받으셨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게 확실하진 않아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물어봐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혹시나 알아도 기억하고 있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그냥 아예 몰라야 되는 건지도 확실하지 않아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엄마께서 누군가에게 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뿐이에요. 


제가 괜히... 할머니집을 탈출해서 엄마가 치료를 다 못 받으셨을까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괜찮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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