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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Han Mar 30. 2022

햇살 좋은 날, 나는 커피 사러 간다

Sep. 23, 2019

원두를 사려면 집에서 차로 20여분을 가야 했다. 그 20분 사이에 원두를 살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서너 개는 족히 지나지만, 그중에 나와 아내 입맛에 맞는 커피는 없었다. 거리에 사람 많은 날에는 주차할 자리를 찾아 목적지 주변 골목을 두어 바퀴 돌기도 했다. 한 달에 두세 번 이런 수고를 감내했다.

커피는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내게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자신 있는 요리다. 바쁜 현대인들 중 하루에 커피 한 잔도 안 마시는 사람은 없지. 나는 핸드드립으로 아내의 아침을 깨웠다. 별 것 아닌 이 한 잔에 감동하는 아내를 보면, 맛있는 커피는 주방 선반에 항상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사실, 원두를 사러 가면 카페 주변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그마한 편집숍들과 갤러리가 즐비한 동네는 매장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괜히 주변을 걷고 싶게 만들었다. 특히, 요즘처럼 햇살 좋은 날이면 아이스 라테 한 잔 들고 괜히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 날 원두 사 오는 길은 수고가 아니라, 마실이었다.


< 집에 남은 드립백들. 어느 카페 것인지 모두 알면 찐 커피홀릭 >


"부인, 커피 다 떨어졌네?! 집에 드립백 세 개밖에 없어. 내가 얼른 원두 사 올게. 나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정말이야..."


마실, 아니 수고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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