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e Han Apr 01. 2022

감사한 마음의 이면

Sep. 25, 2019

한국에서 오는 우편물을 받을 때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장모님이나 처제는 이따금 먹을거리를 이역만리 마이애미로 보내셨다. 덕분에 냉동실 가득 채우고 한동안 걱정 없이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타지에서는 잘 먹고사는 것도 일이라, 한 번씩 받는 한국의 먹거리는 우리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나의 본가 식구들이 내가 미국에 머무는 약 2년 동안 보낸 우편물은 없었다. 아무래도 혼자 알아서 잘 살아온 아들에 대한 걱정보다는 미국 땅에서도 당연히 잘 먹고 잘 지낼 것이라는 믿음이 근저에 있었을 것이다. 자취하며 명절에나 집에 가고, 1년에 전화 서너 번 걸어 안부를 전하던 무심한 아들의 표본. 우리는 서로에게 살갑지 않았다.


집에서 소포 한 번 보내지 않은 건, 본가에 들렀다 자취방에 갈 때 귀찮다고 반찬 한 번 챙기지 않던 행동이 빚은 결과였다. 그래도 생활비에 보태라고 다 큰 아들에게 매월 용돈을 챙겨주시던 마음에 감사하며 자위했다. 그런데, 처가댁 식구가 아닌 아내 친구가 갖은 먹거리를 챙겨서 보내왔을 때에는, 부끄러움마저 밀려들었다.



상자 안을 채우고 있는 식품들의 종류는 사뭇 다르지만, 고마운 마음은 매 한 가지. 주방두고 요리할 시간 없을 때 요긴하게 꺼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이런 감사한 순간, 상자를 뜯고 내용물을 정리하며 오만가지 마음이 스친 것이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이지. 정작, 아내는 아쉽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말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햇살 좋은 날, 나는 커피 사러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