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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yee Dec 25. 2018

나는 식당을 한다

캐나다 산골마을 해산물 식당

난 음식점을 테마로 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에도 음식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몇몇 일본 영화들은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거기엔 고급 테이블도 트렌디한 인테리어도 현란한 손놀림의 스타 셰프도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스토리의 중심에는 세상의 뒤쪽에서 버림받거나 어두운 일상에 지친 손님들이 나오고 그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식당 주인이 나온다.  그들은 소박하지만 기억의 어딘가를 일깨우는 한 접시의 음식으로 이어진다.   핀란드의 구석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내는 카모메 식당이 그랬고 동경의 후미진 골목에서 자정이 넘어서야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 그랬다.    


나는 식당을 한다.   영화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실제로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음식점이다.  처음 캐나다에 이민을 와서 5개월 정도 난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   그리고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잠깐 해 볼까 한 식당 운영이 어쩌다 보니 올해로 벌써 17년째이다.   그동안 동업 형태의 일식 집도했었고 종업원들이 많이 필요한 규모의 레스토랑도 해봤고 지금은 다운타운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서 조그마한 해산물 식당을 나와 아내가 둘이서 열고 있다.   상식적인 낱말 정의이지만 요식업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파는 일이다.   음식에 책정된 가격으로 내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비용을 커버하고 약간의 수익을 남기면서 동시에 손님들이 그 지불에 대해 납득할 때 비로소 그 장사는 비즈니스로서 성립된다.   생각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북유럽 핀란드의 비싼 임대료와 세금을 내며 카모메 식당이 주먹밥을 계속 만들기 위해서도, 각종 공과금과 연료비를 감당하면서도 심야식당이 계란말이에 정성을 기울이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매상은 필요하다.


재료를 구입해서 그것들을 내 기술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 무언가의 상품으로 변형시켜 판매한다는 의미에서는 요식업은 여타 제조업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만드는 음식이라는 상품은 인간이 갈구하는 가장 원초적이며 1차원적인 욕망에 이어져 있다는 것이 다른 제품과는 다르다.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를 맡고 입으로 전달되어 몸속으로 사라지는 제품이다.   그렇기에 내가 만드는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와 리뷰는 전부 과거형이다.   입속에서 맛있었고 몸속에 들어간 후 포만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가 전부이다.  물론 가게의 분위기와 서비스의 수준 역시 중요한 요소 이긴 하나 개인이 운영하는 우리 가게 같은 경우 손님들이 최우선적으로 희망하는 것은 만족스러운 음식 일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지극히 단순 명백하다.   우리 가게에 들어와 주문을 하고 제공된 음식을 먹고 나가는 손님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복감을 최고로 조성해 주는 것이다.   다만 그 느낌은 음식이라는 제품의 특성상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손님이 가게에 머무는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만족도를 제공하여 그들이 돌아가면서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끌어 내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성공이다.


언뜻 단순하게 보이는 요식업은 가게를 꾸려 감과 함께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음식을 다룬다는 것은 엄격한 위생상태가 필수이다.   신선한 재료의 사용과 보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재료의 구입은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포장되어 나오는 가공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재료를 일일이 눈과 손으로 확인해야 한다.   특히나 해산물을 다루는 우리 가게의 경우 첫째도 신선도이고 둘째도 신선도이다.   바다 건너 들여오는 재료는 그 포장 상태와 냉동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가게의 냉장고와 냉동고 역시 잘 움직여 줘야 한다.   미묘한 온도의 변화에도 음식은 상할 수 있기에 매일매일 점검이 필요하다.   물의 흐름도 중요하다.   수돗물은 새는 곳 없이 잘 나와야 하고 싱크 밑으로 흘러 들어간 물은 하수관을 통해 깨끗하게 내려가야 한다.   매일매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홀의 청결은 기본이다.   이 모든 기본적인 체계를 매 순간 안테나를 뻗어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랜 세월 이 업종을 이어오며 발달해온 내 직감과 감각이 발휘된다.   아무리 주의를 해도 때때로 어딘가 무엇인가는 고장이 나고 문제가 생긴다.   이유 없이 냉장고가 약해지거나 파이프가 새거나 하수도가 막힌다.   화장실의 변기마저도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다 보니 이유 없이 망가진다.   이 모든 잡다한 문제는 매 순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되고 즉시 해결해야 하는 응급상황인 것이다.


음식장사는 이익을 남기는 것보다 손해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이든 아끼고 절약하는 습관이 사업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가게를 유지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설비와 환경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온도를 보고 물의 흐르는 상태를 점검하고 실내 온도를 체크하고 기름을 갈고 버너의 화력을 체크하는 일 등은 매 순간 내가 움직이는 동선과 함께 연출된다.   이 모든 잡다하다면 잡다한 일들을 등한시할 때 어느 순간 큰 고장이 나거나 해서 터무니없는 목돈이 나가게 된다.   오랜 세월 수업료를 지불하며 배운 덕분에 옛날에 비하면 많은 부분에서 비용이 덜 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곳곳에 문제 투성이 이다.   장사로 잔뼈가 굵는다는 말은 아마도 주위에 수없이 널려 있는 자그마한 문제들에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기에 나온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없어 모르겠지만 이곳 캐나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식당에 대한 선호도가 남다르다.   처음 가게에 들어와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은 몇 번의 방문을 거쳐 자신에게 맞는 메뉴의 조합을 만들게 되고 그 이후부터는 그 메뉴 구성을 바꾸지 않고 계속 유지한다.   가끔은 새로운 메뉴를 권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메뉴 조합을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그만큼 자기 몸에 맞는 음식에 대해선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다 우연하게 들리게 되는 손님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을 오던 한 달에 혹은 일 년에 한 번을 들리던 우리 가게를 알고 찾는 손님은 단골이다.   여기서는 레귤러라고 부르는 이 고객들은 내 장사의 가장 큰 밑천이다.   가게가 오래되어서 인지 레귤러 손님들의 수는 상당하다.   나 역시 내가 잘 가는 식당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변화 없는 일정함이다.   난 그 식당이 새롭고 팬시한 메뉴를 개발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저 내 입맛이 길들여진 음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안정감인 것이다.   우리 가게야말로 다른 곳에 없는 메뉴를 가지고 있다 보니 그 일정함이 무엇보다도 요구된다.   변함없는 재료로 변함없는 맛을 제공하는 일이 어쩌면 내가 하는 일의 가장 큰 사명감 이리라.


돌이켜 보면 눈 깜짝할 사이였는데 요식업이라는 사업은 어쩌다 보니 내가 학창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기간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하고 있는 일이 되어있다.   앞으로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계속해서 이 업종에 머물게 될 것 같다.   캘거리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너무나 힘들었던 스트레스를 주었고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으며 인내심의 한계에서 좌절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남들과의 비교 이전에 나 자신 한 곳에 꽁꽁 묶여있는 모습이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힘들고 더디게 들어오는 돈은 너무나도 쉽게 간단히 빠져나갔다.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점점 더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가지면서도 어떤 변화도 줄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잃고 희생하고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과 상관없이 가게를 오랜 기간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는 내가 이 가게를 인수하기 훨씬 전부터 이 식당을 찾아와 주던 분들도 여럿이다.   그분들 하나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분명 내가 운영하는 가게가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무언지 모르는 책임감 같은 것도 생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식당이라면 내가 가장 적임자라는 야릇한 자신감도 갖게 된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내 모든 감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에 배게 되었다.   우리 가게 어느 구석에서도 카모메 식당이나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고 식당 주인인 내 입에서 손님들의 힐링을 돕는 멋진 코멘트가 나올 리도 만무하다.   다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하게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존재하는 한 난 이제 누군가에게 안기 기 보단 모든 사람을 안아주는 업종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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