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eyee Dec 29. 2018

오! 돈가스

그리운 마스터...

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연수를 마치고 오사카에서 첫 직장생활을 할 무렵의 일이다.   회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월세 아파트를 계약한 나는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였다.   회사 업무 이외에는 친구도, 만날 사람도, 특별한 일도 없던 나는 그저 회사와 집을 왕복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정체불명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지극히 단조롭고 지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는 주로 같은 부서 직원들과 근처의 라면집이나 회사 건물 1층에 자리한 조그마한 경양식집을 이용했는데 난 그 경양식집 음식을 무척 좋아했다.   매일매일 바뀌는 ‘히가와리 메뉴’라는 세트메뉴가 그것이었다.   접시 위에 그 날의 메인 메뉴와 샐러드, 파스타, 밥이 올려져 나오는 것이었고 그날그날 바뀌는 다양한 종류의 요리 덕분에 질리지 않고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그중에도 데미그라스 소스의 햄버거는 일품이어서 가게 앞 칠판에 햄버거가 메뉴로 올라오는 날은 아침부터 점심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던 것 같다.   오피스 밀집지역에 위치한 그 집은 정신없이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면 저녁은 항상 한가했다.   우리가 마스터라고 부르던 오너 셰프는 저녁이면 혼자서 다음날 준비를 하며 간혹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맞았다.


하루는 퇴근을 하여 자전거에 오른 나를 마침 가게 앞 화초에 물을 주던 마스터가 불러 세웠다.   

“내일 돈가스로 쓸 고기를 손질하다 남은 부분이 있는데 괜찮으면 시식이라도 해보지 않을래?”

난 당연히 괜찮았고 시간도 많았으며 무엇 보다도 돈가스를 먹어볼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게걸스럽게 시식(?)을 하며 가게문을 닫은 후 늦게 까지 마스터의 말동무가 되었다.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마스터는 내게 한국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며 그날따라 대화 분위기가 좋았는지 아무나 들을 수 없는 아저씨 만의 인생 이야기와 장사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마스터가 자기 가게를 운영하기까지 아주 젊은 나이 때부터 주방에서 힘든 경험을 쌓아온 얘기를 듣던 나는 맥주로 오른 취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감동하여 눈물이 나올 뻔 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그날 맛보았던 마스터의 돈가스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생각하면 침이 고이는 내 인생 최고의 맛이었다.   소박하고 겸손한 가운데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스터는 그날 이후 나의 롤 모델 비슷한 인물이 되어 있었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마스터는 나의 좋은 친구이자 조언자이자 인생선배로 남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는 가운데 일본에서 만난 마스터에 대한 기억은 점점 사라지는듯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갑자기 결심하게 된 ‘이민’…  완전히 새로운 타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며 내 머릿속을 제일 먼저 스치고 지나간 기억이 내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던 오사카의 마스터 아저씨였다.   캐나다 독립이민을 결정하고 이것저것 정리와 준비를 하던 밀레니엄 서기 2000년… 나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다.   캐나다라는 멋지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나만의 조그마한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막연하게 가게를 연다는 생각을 식당 비즈니스로 좁히게 된 것에 마스터의 영향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그렇지만 그 아저씨 역시 평생을 음식업에 종사하며 어렵게 자신의 가게를 가질 수 있었고 풍요롭지는 않지만 소박한 하루하루를 엮어가고 있었다.   내가 본 마스터의 모습에는 사실 아저씨의 지나온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그 당시 만난 아저씨의 모습은 수많은 경험과 반복된 일상의 중첩된 세월의 결과물이었으리라.   나 역시 그런 마스터가 걸어온 길을 비슷하게 라도 밟아보고 싶었다.


어쨌든 내 머릿속 상상의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캐나다라는 곳에 온 가족을 데리고 살러 가면서 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업이라는 것을 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직접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요식업 분야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민을 준비하며 무언가 전문점 적인 요소가 있는 아이템을 찾던 때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 옛날 마스터가 해 주었던 돈가스였다.   마침 돈가스 전문점 사업을 위한 요리학원 단기 코스가 눈에 띄었고 그날로 등록을 마친 나는 돈가스의 고기 손질부터 소스 만들기까지 전반적인 기초를 배웠다.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내 입속에 집어넣고 그 음식이 심지어 맛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야릇한 성취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민을 와서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가족과 친지 이외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심지어 그 대가를 지불해 주는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신선한 돼지고기의 탱탱한 살결을 손질해 밀가루 계란빵가루로 옷을 입혀 기름에 금방 튀겨낸 고기를 홈메이드 소스와 양배추 샐러드와 함께 내는 지극히 단순한 요리인 돈가스… 다행히 이곳 캘거리에 돈가스 전문점이라는 곳이 없던 때라 우린 오픈하자마자 ‘원조’가 되었고 ‘돈가스 하면 그 집’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지금껏 제각각 다른 성격의 식당을 운영해 오면서도 돈가스 만은 꾸준하게 메뉴에서 지우지 않고 만들고 있다.   어쩌면 지나온 인생을 돌아봤을 때 내가 한 분야의 일에 가장 오랫동안 매달려 온 것은 아마도 돈가스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나 하는 조금은 우습고 슬픈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곳 캐나다에서 내가 사는 앨버타주는 소고기로 유명하다.   차를 타고 서쪽으로 조금만 달려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우리가 거래하는 정육점에서 금방 손질한 고기를 사다가 도마 위에 올려 만져보면 온기가 느껴진다.   붉은 것도 아니고 분홍도 아닌 그저 살색이라고 밖엔 표현하기 힘들다.   요리는 단순하게 이루어진다.   등심 고기의 지방 부위를 살짝만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고기 테두리에 칼집을 내어 고기가 기름에서 휘는 것을 방지한다.   소금과 후추는 한 면에만 살짝 뿌린다.   곱게 거른 밀가루 위에 고기를 굴린 후 불필요한 가루는 털어낸다.   골고루 잘 저어 준비해 놓은 계란 물에 살짝 담근다.   빵가루는 일반적인 식빵보다는 프렌치 바게트를 쓰는 것이 좋다.   식빵은 설탕을 많이 쓰기 때문에 기름에서 빵가루가 타는 경향이 있다.   바게트는 당도도 낮을뿐더러 입자가 단단하게 살아 있어서 튀김의 바삭거림을 도와준다.   기름은 180도의 온도 유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름 용량이 넉넉해야 한다.   이 즈음에서 돈가스는 왜 사 먹는 것이 맛있는지가 밝혀진다.   집에서 팬에 달군 기름은 온도 유지가 어렵고 고기가 기름 안에서 놀기에도 기름이 넉넉하지 못하다.   어쨌든 다시 요리로 돌아와서 빵가루는 고기에 빈틈없이 묻혀야 한다.   이제 180도로 세팅된 튀김기에 고기를 투입한 후 타이머를 누른다.   시간은 5분… 5분 동안 앞뒤로 한 번씩만 뒤집어 주며 기름 안에서 자유롭게 놀게만 해 주면 된다.   기름에서 꺼낸 고기는 망에 바쳐 여분의 기름이 빠지게 한 후 2분 동안 그대로 놓아둔다.   이동안 기름에서 갓 나온 고기에 골고루 온도가 전달되어 덜 익지도 더 익지도 않은 상태가 된다.


이제 잘 드는 칼로 써는 일만 남았다.   2Cm 정도의 간격으로 썬 고기와 곱고 얇게 썬 양배추, 그리고 홈메이드 소스를 곁들이면 끝이다.   여기서 양배추는 돈가스 정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샐러드이다.   일본의 정통 돈가스 집에서는 처음 주방에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양배추를 채 써는 일 만을 10년 동안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우리 가게의 경우는 다행히도 그 일을 기계가 대신한다.   일본에 있는 “미스터 양배추”라는 기계 메이커에서 기계와 부속을 사다가 쓰는데 나에겐 무엇보다도 고마운 주방용품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은 소스이다.   사실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 소스 만들기이다.   우리 가게에서 내가 만드는 나만의 소스만 하더라도 상당수이다. 돈가스 소스, 양배추 드레싱, 하우스 샐러드드레싱, 타르타르소스, 카츠 돈 소스,  가락국수 국물 원액, 핫 소스… 등등 우리 가게의 색깔을 좌우하는 나의 비밀 레시피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 돈가스는 우리 가게의 메인 아이템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이곳에 사는 일본 분들이나 한국 분들에게는 정통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요식업이라는 일을 하고 살지 모르지만, 돈가스는 내 인생의 음식이고  내 초심의 중심이다.   건강 지상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튀김요리는 적이다.   하지만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의 첫 식감과 그 안에서 녹아드는 부드러운 고기의 육즙을 거역하기엔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바쁜 와중에도 내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시던 마스터 아저씨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이전 01화 나는 식당을 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