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인간에겐 종교적 커뮤니티가 필요한 것 같다. 현대에는 전통 종교와는 다른 '동호'의 커뮤니티가 새로운 종교로서의 역할을 하며 살 맛을 낸다. 개신교라는 종교는 태어날 때 그냥 나에게 주어진 것이었고, 이후 나의 새로운 '종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어쩔수없이' 아니면 의지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인데, 그것에 서툴다. 동호인간이 되지 못하면 찾아오는 건 외로움이다. 어떤 대상과 사랑에 빠져 깊이 몰입해 즐기는 것을 잘 못한다. 생각이 많아서일까. 어떤 도구나 대상을 숭배하고 몰입하는 문화의 유난스러움에 대한 거부감일까. 그래서 외롭다.
신청
조경가 정삼씨가 우리 동네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링크를 보내줬다.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그는 생각했나보다. 나는 그런 행동을 필요로 하는 시기였나보다. 바로 신청했다. 나의 첫 마라톤 대회다. 10키로 코스를 신청했다. 신청해놓고 취소할까 하는 생각을 네 번 정도 했다. 혼자 가서 뛰면 삼삼오오 함께 온 사람들을 보며 외로움을 느낄 것 같았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이 피로하게 느껴질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지루함이나 몸의 피로로 완주를 못 해 느껴질 배패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경험을 누적했다는 만족에 비해 유행에 시간을 허비했다는 허탈감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괜히 오버하다가 부상을 입어서 평상시의 조깅을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생각이 많았다.
연습
안전하고 기분 좋은 완주를 위해 연습을 했다.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4~5키로 조깅을 했다. 10키로 완주를 하려면 적어도 미리 10키로를 뛰어봐야 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 혼자서 뛸 때 5키로 쯤 뛰면 더 뛰기 싫어졌다. 힘들어서 말고 심심해서 그랬다. 대회 즈음에는 5키로를 뛰는 것이 쉬워졌다. 10키로를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감정의 동요나 예상치못한 관절통이나 근육통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적어도 지쳐서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다. 결국 미리 10키로를 뛰어보진 않았다. 괜히 부상을 입어서 대회에 못 나갈까 걱정이 되었다. 부상을 입더라도, 포기를 하더라도 대회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회
목표한 결과 이상으로 완주했다. 달리는 느낌은 걱정과 다르게 너무나 좋았다. 삼삼오오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나처럼 혼자 뛰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달리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6천 명 정도의 참가자가 중랑천에 모였다. 세상에 이렇게 건강한 몸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 줄 몰랐다. 타고난 멋진 체형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오랜 시간 단련된 다부진 몸을 지닌 사람도 있었다. 통통하지만 이제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것 같은 사람들도 많았다. 한쪽 팔이 잘려나간 사람도 있었다.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와 함께 뛰는 엄마 아빠도 있었다. 적당히 가볍게 뛰는 사람도 있었고, 온 힘을 다해 헐떡이며 뛰는 사람도 있었다. 뛰다가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포기한듯 걸터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 반환점을 돌아 나와 반대방향으로 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구급차에 실려 갔다.
무리에 속해 한 방향으로 뛰며 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느낌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뛰는 것이 세속적이란 생각을 했다. 나보다 빠르게 뛰는 사람을 보며 내가 절제하며 뛰고 있다고 느꼈고, 나보다 느린 사람을 보며 나도 제법 뛴다고 느꼈다. 혼자 뛸 때는 알 수 없었던 감정들이었다. 남들과의 적당한 비교와 함께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외로움을 느낀 순간도 있었다. 출발 전, 대기하는 긴 시간들, 도착 후 메달과 기념품을 받고 사진을 찍는 시간에 외로웠다. 다음에 또 대회를 나온다면 일행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함께 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슬펐다.
후기
10키로를 쉬지 않고 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10키로를 뛰어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20키로 코스에도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풀코스를 도전하진 않을 거다. 긴 트레일러닝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체중을 더 줄여서 더 건강한 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누군가와 같이 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동안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감정은, 주일날 교회를 다녀오면서 느낀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호의 소속감, 그 모임의 장에서 뛰는 사람과 섬기는 사람. 누군가의 댓가없는 응원과 격려. 적당한 성취감.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안도감. 달리기는 비교적 단순하고 저렴하게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