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순자씨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시대에 시골 농촌에서 육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남동생들은 고등학교를, 자신은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어린 동생들을 돌봤다. 성인이 되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 가까운 도시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살았다. 기독교가 유행하던 70년대 후반 교회에 나가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곳에서 적당한 교양을 쌓았다. 교회에서 친구도 사귀고, 일자리도 얻고 위로도 얻고 자녀들의 교육을 의탁했다.
가난한 총각이 좋다며 따라다니고, 주변 어르신들의 ”그 총각 착해“라는 말을 들으며 뭣도 모르고 결혼을 했다. 사글세방에서 살림을 시작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았다. 남편은 하루 종일 고된 노동, 자신은 힘든 육아와 소일거리에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다. 사글세, 월세, 임대아파트를 거쳐 융자를 끼고 첫 내집을 얻었다.
큰 방 하나, 작은 방 두 개, 한 개의 화장실, 주방과 거실이 있고, 발코니가 있는 30평의 13층 아파트를 육천만원에 마련했다.
아이들은 적당히 착하게 자랐고, 시어머니의 치매 때문에 힘들었다. 딸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사위에게 시집을 보냈고 평범하게 자식을 낳고 살고 있다. 하지만 아들은 1인가구, 싱글, 비혼, 못혼이 유행하는 시기의 그 당사자로 살아가고 있어 순자씨에겐 걱정거리다. 힘들게 공부를 시켜놨더니 예술을 한다고 헛바람이 들어 허송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순자씨도 걱정할 기운이 없다. 아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 글을 쓰고 있다.
고령화 시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따라 요양보호사가 되어 자신의 육십대를 보냈다. 다른 이들의 부모를 대신 돌봤다. 이제는 노년을 준비하며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용돈벌이 실버일자리를 얻었다고 좋아한다. 첫 번째 일터는 어떤 어린이집. 하루에 한 두시간 다른 가정의 아이들의 점심식사간을 돌봐주는 것이다. 아이들을 마주하며 더 생기를 얻으시길 기도해본다.
계절에 따라 꽃을 만끽하고, 스마트폰의 대중화에 따라 사진이나 영상을 편집해 카톡에 올린다. 철에 따라 반찬을 만들어 두고. 때에 따라 고향에 내려오는 자식들과 손주들을 챙긴다. 자신은 부모를 부양했지만, 자녀의 부양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억울해하지 않으며 자녀들만을 걱정한다. 부모가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자식이 더 가난한 시대에 늙어가고 있다.
그녀는 전형적인 한국의 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