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판정 사실 주변에 어떻게 알려야 할까?
"수업 시간에 아빠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났어
그래서 조용히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
얼마 전 첫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가 불쑥 꺼낸 말이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감수성이 아주 풍부하고 예민하다. 나와 아내는 아이들에게는 내 암 판정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다. 만약 사실대로 말하면 아이들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 그랬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한다” 정도로만 설명을 해 줬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러 갈 때도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자기들끼리 짐작을 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암’이라는 병명에서 떠오르는 상황들을 아이들이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이 내 병명을 알게 됐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는 며칠간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시골에서 부모님과 동생이 올라왔었다. 그때 아내는 내 병실에 와 있었는데 그때 동생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간암 수술을 받는 다는 사실을 말해버린 것이다. 물론 동생은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 줄 알고 한 말이었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수술을 잘 받고 회복했으니 아이들도 그냥 큰 충격없이 넘어간 줄 만 알았다. 하지만 최근 첫째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첫째는 아빠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것을 보면서 질병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겪지 않는 ‘죽음의 공포’와 ‘아빠의 부재’라는 상황을 온 몸으로 겪은 것이다.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섭고 견디기 힘들었을까? 엄마 아빠한테는 말도 못하고 어떻게 견뎠을까? 눈물을 참느라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아주 많이 미안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컥하는 아이를 꼭 안아줬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었다.
사실 난 암 판정 이후에 주변을 돌보지 않았다. 오직 나만 생각했다. 내가 건강해야 아내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 ‘남편과 아빠의 부재’라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고 아내가 만들어주는 모든 식단을 따랐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다행히 수술 전과 후에 40kg이 넘는 체중을 감량했고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다.
물과 커피를 제외한 모든 음료도 끊었다. 라면은 물론 빵 등의 밀가루로 만든 음식과 화학적인 조미료와 성분이 들어간 모든 음식도 일절 끊었다. 밥도 하루 한끼 아주 소량만 먹었고 대부분 방울토마도, 오이, 닭가슴살 등으로 만든 샐러드와 계란 요리를 많이 먹었다.
이 와중에 다행이었던 것은 고기를 먹을수 있다는 점이었다. 담당 의사는 구운 고기가 아닌 수육, 보쌈, 샤브샤브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했다. 우스갯 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고기를 먹지 못했으면 참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치열한 운동과 식단 조절로 수술도 잘 됐고 더 건강해 졌다. 이제는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매일 같이 운동을 한다.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나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온다. 대부분 걱정과 위로의 전화들이다. 그런데 곤혹스러운 게 매번 똑같은 설명을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가족들, 친구들, 선후배들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고마운 게 사실이지만 연락을 해 온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 주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다.
사실 난 당초 아내 외에는 암 판정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 물론 수술 때문에 회사에는 알려야 했지만 특히 초기에는 굳이 알려야 하나 라는 생각에 팀원들에게도 알리진 않았다. 팀원들에게는 수술을 앞두고 한명 한명에게 직접 말을 해 줬다.
모두 다 진심 어린 위로로 나의 회복를 바래줬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암 판정을 받은 환자를 위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의료 기술이 좋아지고 생존율이 높아졌다고 해도 아직 ‘암’은 ‘죽음’과 직접 연결되는 병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 환자들은 완치 판정을 받기 위해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텨야 한다. 말이 5년이지 매순간 죽음과 사투를 벌인다. 2개월 3개월 마다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를 확인해야만 생명의 연장에 안도한다.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고 나서야 ‘생존자’라는 말을 이해했다. 암 환자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생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