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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주 Aug 15. 2020

나도 부캐가 있었으면 좋겠다

쓰지 않기를 바라는 글쓰기

나도 ‘부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의 이름은 이조금이다. 세상에 ‘조금’만 해를 끼치고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스스로 바꾼 이름이다. 이조금은 차로 30분이면 바다에 닿을 수 있는 지역의 한 작은 식당에서 덮밥을 판다. 상호는 물론 ‘조금 식당.’ 테이블 수도 조금, 메뉴도 조금이다. 4인 테이블 2개와 2인 테이블 2개가 있고, 메뉴는 가지 덮밥과 치킨 덮밥뿐이다. 바다 근처인데도 해물 덮밥이 없는 이유는 바다 근처라고 해서 반드시 해물 요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단 두 가지 메뉴로도 이조금과 식솔이 굶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 창출되고 있다. 신선한 가지와 닭을 쓰고 실내외가 청결하며 가격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주로 근처 문학관에 들렀다가 나오는 사람들이다. 30년 전 사망한 그 지역 출신 소설가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이조금의 식당처럼 문학관도 작은 규모지만 주변이 조용하고 정원수가 싱그러워, 번잡한 곳을 피하려는 여행객들이 잠시 들렀다 가기 좋다. 이조금은 그 소설가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으나 사람들이 꾸준히 드나드는 것을 보면 생전에 책이 꽤 팔렸던 사람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덕분에 자신이 지나치게 고통스럽지 않은 노동으로 먹고살 수 있게 된 데 감사하는 마음도 있다.


사실 이조금은 그 소설가의 책뿐 아니라 다른 책도 거의 읽지 않는다. 이조금이 사는 방 두 칸짜리 집에는 이조금 몫의 책이 총 30권쯤 있다. 이따금 선물로 받아두고 열어보지 않은 시집과 수필집이 10권쯤, 식당을 개업할 때 참고하려고 샀던 창업과 조리 관련 책이 10권쯤, 산 건지 빌린 건지 누가 두고 간 건지 기억나지 않는 ‘일주일 실무 엑셀’, ‘아름다운 실내 가드닝’, ‘근골격 해부학’, ‘부자 되는 가계부’, ‘성경대로 기도하라’ 등 맥락과 출처가 불분명한 책들이 그 나머지를 차지한다. 책들은 그냥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이유로 거기 있지만 이조금은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선반을 자주 청소한다. 읽지 않지만 더럽히지도 않는다. 애틋하지도 무심하지도 않다.


애틋하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건 책뿐이 아니다. 부모와 형제, 친구, 식당의 손님들, 건물의 임대인, 다세대 빌라의 관리인, 주거래 은행의 직원들, 헤어진 연인, 또는 앞으로 만날 연인, 주차장을 함께 쓰는 이웃들, 심지어 아홉 살 난 딸아이까지. 이조금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적절한 거리와 책임으로 대한다.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겼을 때, 그리고 2년 전 아이의 아빠와 헤어졌을 때도 그랬다. 이조금은 사실을 사실대로만 받아들이고 그 이상을 판단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게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로부터 ‘아이가 나를 행복/불행하게 할 것이다’는 판단을 도출하지 않는다. ‘우리가 헤어졌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헤어진 것은 옳았다/틀렸다’는 판단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그것은 이조금의 가장 큰 재능이고 그 재능은 결과적으로 이조금 본인을 비롯해 누구에게도 손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조금을 전적으로 만족시키거나 전적으로 실망시키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조금과 직접적으로 얽힌 관계에서 나아가 지역의 자치단체장, 더 넓게는 대통령, 미국의 정치가, 초일류기업의 수장들, 슈퍼스타들, 항공우주국의 연구원들, 환경운동가들, 교황, 온갖 테러단체와 정보국, 지구 종말을 점치는 예언가, 범죄자들, 사상가들, 파워 트위터리안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든 뉴스든 이조금이 일부러 피하는 것은 없지만, 이조금을 어떤 강렬한 상태에 오래 머물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러니까 이조금은 ‘지나가는 사람’이다. 평균 수명을 산다면 지금으로부터 대충 2050년대까지, 지구 한구석의 한구석의 한구석의 한구석의 한구석을 조그맣게 지나가는 사람이다. 이조금은 지나가는 사람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다. 잠시 지나갈 곳이라면 너무 많은 짐을 부리지 않게 된다. 잠시 지나갈 곳이라면 너무 많은 시선을 주고받지 않게 된다. 잠시 지나갈 곳이라면 그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기쁨과 슬픔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가는 망나니’가 될 수 없다는 의식이 이조금에겐 중요하다. 지나가는 망나니는 갑작스럽고 불쾌한 주제에 복수조차 불가능하니까.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이조금은 매일 아침 식당 문을 열고, 틈틈이 딸아이를 챙기고, 꼬박꼬박 은행 대출금을 갚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이와 위 등을 검진받는다. 지나가되, 망나니로서 지나가지 않으려면 성실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조금은 알고 있다.


이조금의 딸도 성실하다. 아홉 살 인생의 아기자기한 과제들을 매일 성실히 수행한다. 딸이 여러모로 이조금을 닮았다는 건 주변 사람들이 대체로 수긍하는 부분이다. 딸은 식당을 찾는 손님 대부분이 문학관에 들렀다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도 문학관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다. 그는 그곳에 대해 종종 묻는다.

“엄마, 저기엔 재밌는 것도 없는데 왜 사람들이 자꾸 가는 거야?”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기 때문이야.”

“그리워하는 게 뭐야?”

“볼 수가 없는데 보고 싶은 거야.”

“왜 볼 수가 없는 거야?”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야.”

“그런데 왜 보고 싶은 거야?”

“그 사람이 쓴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딸은 생각에 잠긴다.

“그럼 나도 나중에 책을 쓰는 사람이 될래.”

이조금도 생각에 잠긴다.

“책을 쓰면 너무 오랫동안 지나가게 돼.”

“그게 무슨 말이야?”


지나가는 사람은 가능한 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이조금은 딸에게 설명할 수 없다. 아이는 아직 어리다. 이조금은 부스스한 딸의 머리카락을 말없이 쓸어내려준다. 아이가 지나갈 방식에 대해 조금 판단할 뻔했지만 곧바로 멈춘다. 아이가 지나갈 길에 대해서는 아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조금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묶어주었다.




*부캐: 온라인 게임에서 유래된 말로 자신이 주력으로 이용하는 원래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 부캐릭터의 줄임말.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 추대엽의 부캐 카피추, 김신영의 부캐 김다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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