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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l 07. 2023

기적은 없다

[들개와 노견] 2부 9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1년 전 제주 동쪽 바닷가 마을에 개 한 마리가 태어났다. 개는 볕과 별이 쏟아지는 날에도 폭우와 안개가 퍼붓는 날에도 매일 스스로 밥을 구하고 껌껌한 밤을 홀로 맞았다. 어느 날 개에게 비를 막아줄 집과, 함께 뛰어놀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는 저보다 나이가 많고 훨씬 키가 작았다. 친구의 곁에는 늘 한 여자가 있었다. 흰 우유처럼 뽀얗다고 여자는 그 친구를 ‘우유’라고 불렀다. 여자는 친구를 뛰게 하지 않았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지 않았으며 가여운 눈으로 자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밤이 오면 마당에 혼자 나와 노래를 부르며 훌쩍였다. 개는 친구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사귄 '친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들리는 여자의 노래는 이렇게 끝이 났다.





. . . . . .

이제는 내가 너에게 갈게
바람 속에 섞인 너를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너를 꽉 안고 말할 거야






          1년 전, 망고가 태어날 즈음 우유는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방광염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접한 소식이었다. 실내에서는 화장실 바닥에서만 볼일을 보던 녀석이 어느 날 가리지 않고 집안에 오줌을 지렸다. 방광과 요도에 결석이 깨알처럼 퍼져 있었다. 그리고 담당 의사가 뜻밖의 말을 했다. 심장병 중간 단계라고 했다. 피부와 치아 상태도 좋지 않았다. 숨소리는 달라지고 날이 갈수록 기력이 달렸다. 의사는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으므로 마취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방광염(결석 제거) 수술과 스케일링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심장병에 완치란 없고, 죽을 때까지 하루에 두 번씩 심장병 약을 먹어야 한다며 약은 완치를 위한 것이 아닌 증세를 늦추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호흡 곤란 등 비상시에 보호자인 내가 스스로 처치할 ‘응급 주사기’를 진료 책상에 놓았다. 그리고 우유의 얇은 등살을 모아 주사 놓는 시범을 보였다.



나는 우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었다. 원래의 수명보다는 분명 짧을 것이라고 의사가 답했다. 그때 우유와 눈이 마주쳤다. 병원을 나서는데 눈물이 안 났다. 울어버리면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최대한 덤덤한 척 병원을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개 심장병’을 검색하다가 겁이 나서 휴대폰을 껐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었다. 그리고 우유와 나를 병원에 데리고 와 준(이때는 내 차도 없고, 필오빠와 루바도 만나기 전이다) 운전 중인 선언니를 몰래 보았다. ‘우유가 죽으면 적어도 장례를 혼자서 치르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눌렸다.






선언니와 선언니의 반려견인 ‘태평이' 그리고 우유까지 넷이서 바다를 걸었다. 열세 살인 태평이는 앞을 보지 못한다. 병원에서는 노견에게 올 수 있는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시력을 회복할 방법은 없다고 의사는 말했다. 한 존재가 눈앞에 보이던 세상을 전부 잃었는데 이유라는 게 어찌 이리도 간단할까 화가 났다. 제주의 바닷가와 숲속을 야생마처럼 달리던 태평이는 어느 날 갑자기(증세를 알아채고 병원에 가기까지 한 달이 안 되었다) 앞을 못 보는 개가 되어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고 있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는데 정작 선언니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태평이의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음에 감사했다. 이후 산책의 모습은 달라지고 둘의 일상도 많이 바뀌었다. 서로를 부르는 소리에 둘만의 시그널이 생기고 바라보는 눈빛은 도리어 짙어졌다. 개에게 열세 살이란 나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이 든 존재와 함께 삶의 끝을 향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참 생각했다.



태평이와 선언니






          모처럼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큰 병원을 오가면서 머리칼이 빠진다고 했다. 30년을 알고 지낸 친구는 내가 섬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암투병 소식을 알렸다. 제주에 살면서 그곳의 풍경으로 지친 나를 달래주었던 친구. 어느새 나는 섬에서, 그 친구는 도시에서 거꾸로 살아가던 여느 날의 오후였다. 친구가 사라지고 지구에 혼자 남은 악몽을 반복해서 꾸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두려움으로 몸이 웅크러졌다. 태어나서 느낀 가장 큰 상실에 대한 공포였다. 귀신이나 벌레가 나타나서 느끼는 공포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언가가 나타나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없어질까 봐' 불안을 견디는 공포였다.



상실의 공포에 살이 붙어서 매일 벌벌 떨던 때에 한 사람(루바)을 만났다. 왕릉을 미끄럼틀 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남자는 생각도 몸짓도 몹시 한가롭고 투박했다. 세상만사를 별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작은 개 한 마리(우유)가 나타났다. 동물병원에서는 무리한 운동은 자제하라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사료만 먹는 개가 가장 건강하다며 음식을 가리라고 했다. 그는 괘념치 않았다. 맛이 없으면 뱉어낼 것이고 탈이 나면 배설하면 될 일, 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자고 내게 말했다.



어느 날은 3시간 반 동안 숲을 걸었다. 또 어느 날은 사람이 오르기도 힘든 가파른 오름을 스스로 오르내렸다. 오름을 오르다가 심정지로 저세상으로 오르는 건 아닐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난 떨지 않았다. 개를 자유롭게 해 주자는 그의 뜻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는 사이 결석으로 오줌을 지리는 횟수가 줄었다. 아침마다 컥컥거리던 숨소리는 언제부터인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심장약 먹이는 것을 잊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돌아와서는 지쳐 쓰러져서 깊은 잠을 잤다. 이후에는 저녁약을 잊었다. 그리고 거실 서랍장과 차에 넣어둔 비상용 주사기를 치웠다.



걷고, 걷고



그러던 중 회사에서 떠돌이 개(망고)를 만났다. 루바는 둘을 똑같이 대했다. 떠돌이 개라고 해서 더 안쓰럽게 여기거나, 아픈 개라고 해서 더 신경 써주지 않았다. 우유는 저보다 다리가 긴 망고를 따라 심장이 터질 듯이 달렸고, 망고가 먹는 음식과 똑같은 것을 먹었다. 태풍이 오는 날에는 망고를 현관에 들이고, 맑은 날에는 우유를 마당에 내놓았다. 험한 길에도 고운 길에도 그는 절대 우유를 일으키거나 안아주지 않았다. 우유의 병세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할 시간도, 병원에 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인 것처럼 망고가 듣는 곳에서 마다 노래했다.  





네가 만난 바다를 다 데리고 갈게
네가 마셨던 숲도 다 모아서 갈게
날 기다린 시간과 내 슬픔이 쏟아진 곳을 떠나
영원히 병들지 않는 바람이 되어줘
 
나의 우주였던 너의 눈동자...
나의 노래였던 너의 꼬리...
너의 모든 몸짓으로 내가 살았어

이제는 내가 너에게 갈게
바람 속에 섞인 너를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너를 꽉 안고 말할 거야

 



같이 걷고, 걷고






          우유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목장을 누빈다. 저대로 목장 아래에 묻히기 일보 직전인데. “더 뛰면 죽을지도 몰라!” 또다시 우유에게 나의 가련한 눈빛과 손길이 가려는 찰나, 루바가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처럼 우유와 망고를 향해 힘차게 소리를 지른다. “좋아요, 우유 선수!” 흙탕물 위를 날아다니는 망고. “망고 선수는 분발하세요!” 망고는 우유에게 왕왕거리면서도 해하지는 않는다. 우유의 슬라이딩과 망고의 드리프트로 아침 산책이 생난리인데. 우애 있게 지내라고 했더니 이건 아니다, 가정교육 다시 해야 할 판으로 심각하게 선 나. 그런데 둘을 말리지는 않고 루바가 결승전처럼 고래고래 흥분한다.



“그렇지, 개처럼 놀아라!!!” 망고를 피해 달아나던 우유가 저 멀리서 우리 셋(나와 루바, 망고)을 돌아본다. 그런데...... 우유의 얼굴이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니고, 망고 역시 밖을 떠돌던 시절의 얼굴이 아니다.



개처럼 놀아라!!!



망고를 데려오는 일이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혼자일 때보다 우유를 더 외롭게 하거나 혼자보다 못한 둘을 만들까 봐 고민이 깊었다. 하지만 지금, 저 둘의 얼굴을 보니까 알겠다. 두려움은 각자의 외로움을 부딪쳐서 서로 부서뜨려야 줄어든다는 것을. 둘에게 고독의 양이 줄어든 것만 같은 벅찬 순간이다. 결석과 심장병 진단을 받고 정확히 일 년 후에 우유의 병은 사라졌다. (병원에서는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내내 달고 살던 귀염증과 피부염도 멈췄다. 근래 아픈 이를 뽑아낸 우유는 더 잘 먹고, 잘 뛰고, 잘 잔다.



(의사는 심장병이 재발할 여지가 있다고 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은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기적은 없다,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이 전부다. 태평이에게 남아 있는 희미한 시력, 친구가 살아 있다는 현실, 우유가 네 발로 달릴 수 있는 지금...... 기적을 바라지 않고, 하루를 사는 것이 '지의' 전부가 될 때 상은 놀랄 새 없는 기적이 된. 덩치 큰 들개와 까칠한 노견이 '친구'가 된 것처럼!



(좌) 방광 ㅣ (우) 요도
사라진 결석들
심장병이 뭐예요? 결석이 뭐예요?






            다음 날 아침, 집 앞이 소란스럽다. 외진 바닷가 마을에 촬영용 차량과 스태프들이 지천에 깔렸다. 이대로 나가면 카메라 플래시에 눈이 멀겠는데(이건 꿈이 아니다)......



꿈이 아닌 현실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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