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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l 08. 2023

레디, 런!

[들개와 노견] 2부 10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삼달리에는 제주의 풍경 사진을 전시한 작은 갤러리가 있다. 이 갤러리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외진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토록 조용한 마을이다. 그런데 촬영 장비를 실은 크고 작은 트럭과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내가 사는 집 앞에 가득하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옥상에 올라가서 적극적으로 사태를 살핀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 해녀의 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분란한데. 촬영을 중단하고 모두가 옥상 위의 나를 본다!



스타 납시오~ 뒷짐을 지고 집밖을 나선다. 그런데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나에게 길을 비키라는 안내요원. “선생님 집인 거 압니다만 영화 촬영 중이라서요......" 카메라 앵글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었구나. 집앞에서 영화 촬영이라니. 군중과 소음을 피해 찾아온 바닷가 마을에 영화판이 벌어졌다.


 

안개 속 영화 촬영



다음 날 아침. 목장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망고가 차 뒷좌석으로 가볍게 뛰어오른다. “그렇지!” 뿌듯함에 녀석을 바라본다. “오늘은 네가 영화 주인공이다." 내 배우의 엉덩이를 팡팡 친다. 그리고 곧장 루바에게 전화를 걸어 망고의 뒷좌석 자진 탑승 소식을 알린다. “진짜? 거짓말! 어떻게?” 나처럼 신이 난 루바.  



망고를 닮은 노란색 꽃들이 마당에 피어난다. 지금을 기념하기 위해 항공 촬영을 감행하는 나. 드론, 은 없다. 옥상에 올라가서 팔을 하늘까지 뻗은 다음 바닥을 향해 내리찍으면 그럴듯한 항공샷이 된다. 멋지게 포즈를 잡는 망고. 역시 영화 찍는 동네에 사는 개답다.



(항공샷 같은) 옥상샷
영화 찍는 동네에 사는 개






          전 직장 동료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다. 키우던 고양이 중에 한 마리가 치매에 걸렸단다. 두 마리이던 고양이가 곧 네 마리가 된다는 소식도 더하는 동료. 얼마 전에는 뒷마당에 나타난 강아지 때문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단다. 근무 중에 전화를 받은 남편은 “눈 마주치지 마! 밥 주지 마!”라며 아내(료)에게 간곡히 부탁했다는데. 문득, 제주에 살면 왜 내 집 주위에 개와 고양이가 굴뚝 연기처럼 피어나고, 그 숫자가 비 내린 계곡물처럼 불어나는지 의문이 든다. "진짜 제주는 왜 그럴까?”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한번 오면 끝이야! 선택의 여지는 없어!” 이것이 즉문즉답이라는 것인가. 동료의 남편 심정을 자신은 백번도 안다며 루바가 악을 쓴다. 나로 인해 돌아올 수 없는 '산책의 강'을 건너 버린 사람이다. 측은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이내 누가 버튼이라도 누른 듯 기계적으로 아침산책을 준비하는 나와 루바. 이때 부앙~~ 부앙~ 이른 아침부터 ‘호우경보’를 알리는 진동이 요란하게 울린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망고가 목욕할 때이다! 비바람이 세니 우유는 집에 두자는 내 말에 “폭우 산책에 예외는 없어!” 단호한 루바. 두 녀석의 등에 샴푸를 조금 뿌리고 비를 향해 나아간다(세정보다는 향기가 목적이다). 그런데 처음의 서툰 실력은 어디 가고 두 마리를 동시에 핸들링하며 산책 신공을 보이는 루바. "와~ 노년에 개산책으로 재능기부를 해도 되겠어", 흐뭇하게 웃으며 루바의 뒤를 졸졸 따라간다.



동네 사람들이 보면 비 오는 날 정신줄 놓은 딱한 가족이라고 하겠지만, 떠돌이 망고 때문에 시작한 비산책이 갈수록 좋아진다. 살에 닿아 터지는 물방울과 완전히 젖어 가는 몸이 비가 올 때마다 다른 향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다.  



비산책이 좋아진다






          자동차 뒤 타이어 한쪽이 주저앉았다. 며칠째 안개는 갈수록 심하다. 구멍 난 타이어에 짙은 안개라...... 그럼에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밖으로 나간다.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매일, 해도 해도 부족한 것이 '산책'이기 때문이다. 힘은 들지만 개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나를 어쩌면 저들이 움직여 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작은 영혼들이 나를 기르고 가르친다. 달릴 때 망고의 순수한 얼굴을 보면 마술을 부린 건 내가 아니라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그란 눈과 흔들리는 꼬리, 모든 몸짓이 금은보화보다 더 빛나는 녀석. 나는 내가 가진 일부만을 버렸는데 녀석은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나에게 바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나에게 오다니.



나의 마법사(과거 vs. 현재)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영화 촬영팀은 동네를 누볐다. 한 달 반 동안 나는 조용한 바다를 잃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촬영팀은 마을 풍경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산책 중인 망고와 우유에게 스태프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 짧은 축제는 끝이 났다. 영화가 개봉하면 루바가 조종하는 배를 타고 인천 앞바다에 상륙하여 섬사람 복장 그대로 서울 도심에서 영화를 보자며 서운한 마음에 우스개 소리를 해 본다. 도심 영화관에서 우리 마을이 나오는 장면을 마주하면 기분이 어떨까. 그때도 나의 집은 섬일까.



사람의 생도, 개(고양이)의 생도 모든 생은 알 수가 없다. 이 영화에는 대본이 없고, 러닝타임도 각각이다. 내일을 모르는 오늘...... 나는 이 글을 쓰는 때에 상사의 언어폭력과 감정횡포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2년 6개월 동안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던 끔찍한 지난날들. 감정 노역살이를 스스로 끝내자고 결심한 건 나의 내일은 나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사건은 조사 중이다). 살벌한 퇴사 사유를 짓밟고 나는 13일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나를 괴롭히고 멈추게 하는 것들이 아니다. 이 순간 짙은 안개 속을 두려움 없이 달리는 개들처럼 언제나 '지금'만을 위해서 나는 달릴 것이다. 나의 영화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숨소리와 발짓은 서로를 움직이는 큐사인이다.



"얘들아. 레디, 런!!!"



레디, 런!






[들개와 노견] 끝.

작가의 인사는
내일 오전 10시에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해야-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브런치북(1부,2부)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구독&좋아요&댓글> '3종 세트'를 남기신 분께는 개들의 활기를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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