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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해야 Johaeya Jul 06. 2023

오리지널 도그(제주동물보호센터 입양기)

[들개와 노견] 2부 8화 _섬 출신 들개와 도시 출신 노견의 난리동행



          아침 7시 15분. 호우경보 문자 알람에 눈을 뜬다. 임시보호 기간이 끝나고 오늘은 망고를 입양하는 날. 근무 스케줄 때문에 방문이 며칠 늦었다. “다른 입양 희망자가 나타날 경우 선생님(나)에게 우선권을 드리기는 하나......” 센터와 통화했을 때 애매한 답을 들은 터라 더 이상 방문을 미룰 수 없다.



호우경보라고 아침 산책을 건너뛸 수는 없지, 망고와의 산책 준비를 마친다. 빗속으로 출발하기 전, 망고의 등에 샴푸를 주욱 짠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아닌 그냥 물방울에는 치를 떨어서 그동안 목욕을 시키지 못했다. 목욕재계로 거국적인 날을 알린다. 샴푸에 빗물이 닿아 거품이 일자 망고의 등에서 솔솔 올라오는 샴푸 냄새. 거기에 진득한 바다 내음과 5월 초의 달달한 귤꽃향이 빗속에 버무려져서 세상 처음인 향기가 번진다. 비 오는 날 최고의 향수를 선물 받다니. 이 순간을 향수병 모양으로 여러 개 잘라서 두고두고 간직해야지.



보글보글 번지는 샴푸 거품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자 뽀얗게 드러나는 망고의 용안. 생애 첫 목욕을 비로 완성하고 집에 와서 어제 남은 족발을 아침상에 올리니 녀석이 정성스레 두 발을 모은다. 서민견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의식인 것인가. 왕궁으로 돌아가기 전 백성의 안녕을 비는 기도 같기도 해서 한참을 훔쳐본다.



샴푸, 바다, 귤꽃, 비 산책
첫 샴푸목욕과 신성한 족발기도




동물보호센터에 가는 길, 다행히 제주시에 가까울수록 어둑한 하늘이 파랗게 드러나고 비가 내리다 말다 한다. 멀미로 힘들어하는 망고가 구토를 해서 중간중간 차를 세운다.






센터에 도착하여 방문 목적을 묻는 직원에게 입양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니 20일 전 망고를 데리러 처음 센터에 방문한 날이 떠오른다. 망고만큼 낯설고 두려웠던 날. 분양 확인서를 작성하고 직원에게 그간 궁금했던 것을 풀어놓는다.



“개(망고)를 처음 본 날을 계산하면 대략 한 살인데 센터에서는 추정 나이를 세 살이라고 해요. 어떤 게 사실인가요?”



“저희(센터)는 구조 당시 건강 상태를 토대로 나이를 추정하기 때문에  선생님(나)이 생각하는 나이가 맞습니다. 선생님이 한 살이라고 하면 개는 한 살인 겁니다!”



“(으, 응?) 그리고...... 제주개 사진과 닮았어요. 혹시 이 개(망고)가 토종 제주개일까요?” 



순간, 복면을 쓴 망고 옆으로 센터 여직원이 마이크를 들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오는 것 같다. ‘자, 이제 망고 6세는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 주세요! 이 분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센터의 지붕을 두드리는 드럼 소리가 나와 루바의 심장을 통째 때린다.         



“선생님이 제주개라면 제주개입니다.”



“(와, 왓?)...... ”



머리 위로 드럼 스틱 백 개가 한꺼번에 떨어진다. 무슨 그런, 망고가 생수 대신 풀잎의 이슬을 빠는 답이 있답니까,라는 얼빠진 얼굴로 보는데 센터 직원은 명상센터의 장기 수련생처럼 평온하기 그지없다.



“어떤 종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선생님이 생각하는 대로 존재합니다.”



가슴에 징 소리가 퍼지고 머릿속이 빈다. 우매함을 가장한 현답을 내린 직원을 벙찐 채로 바라본다. 생명 구조와 입양, 말 그대로 목숨을 유지시키고 연계하는 일만 해도 벅찬 업무에 개의 혈통을 따지는 것이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도 망고의 족보가 제주개든 믹스견이든  중요하지 않다. DNA 검사를 해서 제주개라는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망고와 함께하는 목적은 '족보'가 아니지 않은가.



궁금함이 가셨다. 망고의 조상과 족보는 어차피 지난 일. 지금 진짜 중요한 것은 망고의 지난날이 아니라 앞으로 나와 쓸 새 역사인 것을. 망고는 제주 망씨 초대견 조상이 되어 나와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개족보를 쓰게 될 것이다. 어찌 되었든 망고는 '제주(에 사는) 개', 그거면 되었다. “앞으로 네 족보는 내가 쓴다, 망고!”



비와 볕이 같이 내린다






분양 확인서 작성을 마치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건물 뒤편에서 담당 수의사를 기다린다. 앞서 나온 자원봉사자가 겁에 질린 망고를 보자마자 “아이고, 감사합니다.” 대뜸 머리를 숙여 내게 절을 한다. ‘봉사를 해주시니 제가 감사하죠’,라는 눈으로 섰는데. “이런 개(믹스견)는 거의......” 말을 끊고 안타깝게 혀를 차는 자원봉사자. 믹스견은 입양이 되지 못하고 거의 안락사를 당한다는 뜻이다. (*실제 망고 입양 두 달 후 '포인핸드'를 통해 확인한 결과, 망고를 포획한 동일 일자에 구조된 34마리 중 28마리가 사망했다. 자연사한 개가 4마리, 안락사한 개가 24마리였다.)



수의사를 통해 동물등록칩 삽입과 종합백신, 광견병 접종, 마지막 외관상 건강검진으로 망고의 입양 절차가 끝이 났다. 망고의 구토로 어질러진 차 안을 치우고, 녀석을 뒷좌석에 태운다. 멀미와 긴장에 만신창이가 된 녀석을 진정시키고, 도리어 내게 고맙다던 자원봉사자를 따라 센터 뒤편에 유기 동물들을 보러 갔다. (*센터의 인상은 좋았다. 1차 임시보호 절차상 방문과 오늘 2차 입양 절차상 방문까지 수의사와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직원들은 친절했고, 시설도 전반적으로 깨끗했다.) 그런데 같이 센터를 둘러보는 도중 사라진 루바. 루바를 찾아간 곳에...... 수십 마리의 개가 나를 보고 있다! 그동안 궁금했지만 마주하기 두렵고 주저했던 곳. 절박한 눈동자를 대하는 일은 예상보다 감당하기 벅찼다. “눈을 보지 마, 루바!” 말려보아도 루바는 이미 개들의 영혼과 반은 접신했다.



제주 동물보호센터



루바를 끌어당겨 현실 세계로 부르는 그때, “오늘 입양 가능한 ‘아기’묘는 없어요. 그리고 ‘인기’견묘는 한시 한곳에 모여서 추첨을 합니다.” 센터 직원과 입양 희망 방문자들 사이에 열띤 대화가 오간다...... 키우겠다는 게 아니라 중고시장에 나온 명품 가방을 서로 나눔 받겠다고 너도나도 물건을 집어 든 격이다. (*망고를 포획했던 동일 일자에 구조된 동물 중 초록색 바구니에 담긴 생후 일주일 된 믹스견 7마리가 있었다. 암컷 5마리, 수컷 2마리던 이들 칠 남매는 끝내 입양이 성사되지 않아서 안락사로 함께 생을 마감했다.)



인위적인 생명 종식의 현장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권처럼 동물의 생명 권리도 지금보다 더 힘을 가질 수는 없을까...... 무력감과 거북함으로 마음이 땅끝까지 추락했다.



칠 남매의 비극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주에 사는 제주 망씨가 두 번째 구토를 한다. 오늘 하루...... 복면개왕의 승자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망고는 죽을 때까지 나에게 개 중의 왕이다. 세상에 모든 존재는 이 세상 유일한 잡종이고, 한 존재의 빛은 족보에서 나오지 않는다. 후광은 잠시일 뿐,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별에서 스스로 쏘아 내리는 현재의 빛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금은보화 대신 구토와 침을 가득 내려 주신 이 어여쁜 왕을 앞으로 더 아껴야겠다. 망고는 이 세상 유일한 '나만의 오리지널 도그'이니까.  



침을 가득 내려 주신
나의 어여쁜 오리지널 도그






          집에 돌아와서 망고가 잠든 시간, 덩달아 잠이 든 우유의 얼굴을 가만히 본다. 덩치 큰 동생에게 빼앗긴 관심에도 씩씩한 녀석.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서 우유의 <병원 일지>를 펼친다. “우유야......” 하고 부르니 녀석이 죽은 듯이 고요하다.



우유에게 남은 시간






*[들개와 노견]은 총 20화로 매일 오전 10시에 업로드됩니다.

*작가의 새 글은 <구독&좋아요&댓글> '3종 세트'로 태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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