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비정규직이다
우리는 언제 처음 계약을 해볼까? 아마도 휴대폰 약정 할인이 가장 처음이 아닐까 싶다. 2년이라는 기간을 해당 통신사와 쓰고,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지하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 필자도 휴대폰 개통하면서 약정했던 것이 맨 처음 계약이었던 것 같다. 이 때는 계약 당사자끼리만 만나서 종이 몇 장에다가 사인하고 말았겠지만, 월세 계약이라도 하면 공인중개사(제 3자) 앞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계약 기간 동안 그 집을 임차해서 살아야 하며, 계약을 해지하려면 임대인과 상의해야 할 것이다. 너그러운 임대인이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보증금을 못 돌려주겠다는 사람도 나올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대학을 다니면서 계약을 했던 적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학생이 다른 학교로 가기 위해서, 혹은 창업을 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둘 때, 학교 입장에게 별다른 강제 수단이 없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그만두고 취업한다고 했을 때 지도교수가 말리고 설득할 수는 있어도, 강제로 못 나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추천서를 요구하는 직장에 지원할 때 추천서를 안 써주거나, 아는 사람에게 악담하는 것일 텐데, 이런 것들은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말자. 지도교수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아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박사 후 연구원이라면 상황이 약간 더 복잡해진다. 박사 후 연구원들은 대학원생과는 달리 연구비가 있는 연구자가 학교나 연구소를 통해 다른 연구자를 계약한 것이다. 통신사 약정 할인 계약처럼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마치 이 계약 기간을 다 지켜야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우고 취업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전수 조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인 것 같다. 이렇게 일찍 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박사 후 연구원 인터뷰 할 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보는 일이 많다. 뽑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너무 일찍 그만두지 않아야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일찍 나가는 게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연구실 출신이 교수나 연구원이 되어서 학계에 남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영향력이 커진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직이나 연구원직에 지원하겠다고 하면, 기쁘게 추천서를 써주는 사람도 많다. 물론 사람마다 얼마나 일찍 나가야 일찍 나갔다 생각하는지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서 이 모든 게 복합적이다. 필자 개인의 생각은 너무 일찍 떠나지는 말자는 것이다. 최소 반년은 하고 지도교수와 친해진 다음에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자신에게 딱 맞는 자리가 나왔다면, 지도교수와 상의하고 추천서를 받자. 물론 추천서 안 받을 거고 평생 안 봐도 되는 사이면 그냥 떠나도 되겠다. 그러나 최소한 인수인계만큼은 잘해두도록 하자. 그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서, 연구실 후배들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