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교수의 본분이 교육과 연구라지만, 임용되자마자 강의를 하라고 하면 당황스럽긴 하다. 대부분의 신임 교원은 강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 때 강의 경험이 있냐고 질문을 받긴 하지만, 대학생으로 과외를 하거나, 대학원 때 과목 조교를 하거나, 연구실에서 후배들을 가르친 것 외에 특별히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없는 것보다야 낫지만, 이 경험들은 강의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 과외는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강의는 다수의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과목 조교는 대학에서의 강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질의응답을 받거나 숙제 채점한 정도이므로 직접 강의를 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 연구실에서 후배들을 가르친 경험은 지나치게 가르치는 사람에게 편한 상황이라 대학 강의와 유사성이 많이 떨어진다.
어쨌거나 강의를 하라고 하니 강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학교마다 한 학기에 가르쳐야 하는 수업의 수가 다른데, 필자가 현재 몸담은 학교는 1년에 12학점을 가르쳐야 하며, 국립대는 18학점이 일반적이다. 학교에 따라서 그보다 더 가르치기도 한다. 부임하자마자 갑자기 2-3과목을 준비해야 하므로 첫 학기는 정신없이 보내게 될 것이다. 요새는 판서 강의보다는 슬라이드 강의가 많아서 슬라이드 준비가 제일 오래 걸릴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거기다가 강의를 녹화해서 올리라는 학교도 꽤 많아 강의 준비를 더 어렵게 했다. 대학원이 있다면 대학원 강의를
영어로 해야 할 수도 있다.
필자 역시 부임하고 나서 다른 교수님들과 강의 이야기를 많이 해봤는데, 그때마다 교수자의 기대치와 학생들의 이해도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대학 졸업한 지 너무 오래돼서 대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교수님들이 학창 시절 똑똑한 학생이었던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교수님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쉽게 설명했을 텐데, 학생들의 성취도가 낮으면 사람인지라 힘이 빠진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열심히 안 해서, 머리가 부족해서 이해를 못 했다고 치부하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결국 교수자가 더 잘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목적 아니겠는가?
강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의 반응이 적어서 혼자 떠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질문하고 나서 학생들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부끄러워서 이야기를 안 하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자문자답이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몇 번 강의를 하고 나니 조금 여유가 생겼고, 강의노트도 준비가 다 되었다. 이때쯤 되니 강의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고 고민한 결과, 숙제를 내기보다는 퀴즈를 많이 보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숙제는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면 해답을 찾을 수 있어서, 오히려 인터넷 검색 실력이 중요하게 된다. 그러나 퀴즈는 강의실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공정해 보인다. 채점에 드는 시간은 둘 다 비슷하다.
학기가 끝나면 평가의 시간이 돌아온다. 대학원 강의는 대체로 좋게 나오지만, 학부 과목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의 평가가 짜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어쨌거나 학생들은 강의라는 교육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을 탓하기보다는 더 강의를 잘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보다 건설적인 자세일 것이다. 점수보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강의를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교수는 강의를 잘하거나, 학교 행정을 잘하거나, 연구를 잘하거나,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잘하면 괜찮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강의 평가를 더 잘 받고 싶다면, 수업 중간중간 설문조사를 해서 학생들의 욕구를 확인하고 수업에 반영하자.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주거나, 숙제를 덜 내거나, 강의를 쉽게 하거나, 학점을 조금 후하게 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많은 학교들이 교수학습센터를 운영해서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