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백날 땅을 파봐라. 거기서 돈이 나오나.”
바닷가 물놀이용 삽을 들고 바깥으로 나서는 내 등 뒤로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세요. 처음에는 그 말이 어찌나 웃기는지 배꼽을 잡았어요. 누가 땅을 파면서 돈이 나오길 바랄까요? 하지만 엄마는 내가 삽을 들고나갈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계속했어요.
“차라리 다른 애들처럼 게임을 해! 그러면 프로게이머라도 되겠지. 땅을 왜 파니, 땅을!”
그럴 거면 내 이름을 왜 ‘남다름’이라고 지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괜히 엄마의 화를 돋울까 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어요.
“알지? 학습지 선생님 오기 전까지 돌아와!”
나는 문이 닫히고 나서야 휴, 하고 한숨을 쉬었어요. 드디어 해방이다! 엄마는 내가 아파트 주변에서만 노는 줄 알지만 사실 땅을 파기 위해선 좀 더 먼 거리까지 가야 해요. 가끔은 산에도 올라가요. 엄마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 오늘도 자전거 페달을 세게 밟아요. 삽질을 시작한 덕분에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진 기분이 듭니다. 엄마의 잔소리도 그만큼 심해진 게 아주 ‘쪼끔’ 나쁜 점이지만요. 뭐, 상관없어요! 누가 뭐라든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하던걸요?
내가 왜 이렇게 땅을 파고 다니는지 궁금하다면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저의 꿈은 고고학자입니다. 고고학자를 알게 된 건 외삼촌 덕분이었어요. 역사를 공부하는 외삼촌은 멀리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외삼촌은 모르는 게 없고 책도 아주 많이 읽어요. 방학 때 나온 외삼촌은 꿀이 흐르듯 달콤하고 부드러운 프랑스어로 말하기도 하고 자신이 연구하는 것들을 제게 들려주었어요.
“공부 많이 한다고 잘 사는 거 아니더라. 남들은 저 나이에 진급하고 애도 낳았을 나인데. 그래서 교수는 되는 거 확실해? 돈은 어떻게 벌 건데?”
다락방에 세 들어서 번역 알바를 하며 힘들게 공부하는 외삼촌을 격려하기는커녕 엄마는 잔소리만 해대요. 엄마가 혀를 끌끌 찰 때마다 귓가에 화살이 슉슉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아요. 삼촌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하며 살아온 엄마는 여전히 삼촌에게 화가 나나 봅니다.
떠나면서 외삼촌은 우리가 사는 서울에도 아직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 중요한 유물이 땅 속에 있을지 모른다고 알려주었어요. 나는 그날부터 유물을 찾은 최초의 어린이가 되기 위해 삽을 들었어요. 엄마는 내 말에 잔뜩 성을 내며 외삼촌을 나무랐습니다.
나는 오늘도 내 길을 가렵니다. 내가 공룡 화석이나 오래된 유물을 발견하면 엄마도 나의 삽질을 인정해 주시지 않을까요? 혹시 모르죠. 우리나라도 이젠 북유럽만큼이나 춥다니까 산에서 빅풋을 만나게 될지.
삽질하는데 너무 열중을 했나 봐요. 핸드폰으로 맞춰 둔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알람이 울리는 시간에 출발해도 페달을 전속력으로 밟지 않으면 정해놓은 시간에 늦고 마는데 말이죠. 시간은 10분을 훌쩍 넘었고 그 사이 엄마가 30통이 넘는 부재전화를 남겼습니다.
나는 잠시 허둥거리다 생각을 바꿔 봅니다. 이왕 늦은 거 더 늦어도 어차피 혼날 것은 똑같아요. 그러니 팔 수 있을 때까지 파보자.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잘라 놓은 땅 한쪽에 앉아 열심히 삽질을 했어요. 그때 갑자기 삽 코에 묵직한 것이 닿은 기분이 들었어요. 확실했습니다! 제가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잖아요?
“어? 돈이잖아?”
500원짜리 동전이 보였습니다. 한 개도 아니고 3개나 있었어요. 500원 동전이 3개면 1+1으로 파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살 수가 있었어요. 저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엄마에게 혼이 날 것은 생각도 안 하고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갔습니다.
내가 집으로 가자 엄마는 번개같이 뛰어나와 내 엉덩이를 때렸어요.
“어디 갔었어? 얼마나 전화를 했는데. 너 엄마가 6시까지 올라고 했어 안 했어? 아파트 관리실에 방송까지 냈는데. 어머 이게 뭐야? 무슨 흙이 이렇게 많이 묻었어?”
평소 같으면 울음을 터뜨렸겠지만 나는 눈물 대신 하얀 치아를 잔뜩 내보이며 웃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입을 벌리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봅니다.
“엄마, 땅을 파봐라 어디 돈이 나오냐,라고 했지? 이거 봐라?”
나는 자랑스럽게 500원짜리 동전을 3개 내밀었습니다. 엄마가 동전을 보더니 팔짱을 끼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합니다.
“너, 지금 엄마한테 혼날까 봐 쇼하는 거 모를 줄 알아? 너 또 저금통 거꾸로 들어서 동전 꺼냈지?”
나는 가슴을 치며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설명하려 하지만 엄마는 들은 체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벌로 문제집을 평소보다 3바닥이나 더 풀고 500원짜리 3개도 삽도 모두 다 뺏기고 삽질도 금지당했어요. 하지만 여기서 굴할 남다름이 아니죠. 나는 학교 쓰레기 수거장에서 쓰다 버린 정원용 삽을 챙겼어요. 그리고 미리 봐 둔 학교 운동장 늑목 아래를 파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밤에 거기서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아마도 그쪽이 사연이 있는 자리가 아닐까요? 사연이 있는 곳에선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이 많잖아요?
“어? 이건 뭐지?”
오늘 삽 코에는 딱딱한 동전 대신 바스락 거리는 지폐 3장이 있었어요. 합쳐서 3000원! 1+1 아이스크림을 2개나 살 수 있어요. 합이 4개니까 엄마 아빠 내가 먹고도 1개가 남는 거지요. 나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골똘히 숫자를 끼적이던 엄마는 내가 지폐를 펄럭이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너 그 돈 어디서 났어?”
“땅 파서 얻었지.”
“얘가 대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땅을 팠는데 돈이 왜 있어?”
“진짜예요! 진짜라고요.”
나는 엄마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어요. 굳게 닫혀있던 엄마의 입술이 떡 벌어진 건 내가 땅을 파서 5천 원을 발견했을 때였어요.
“말도 안 돼!”
엄마는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내가 찾은 지폐를 쳐다보았어요.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내가 땅을 파기만 하면 돈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머, 준우 엄마 뭐해요? 세상에, 우리 애가 땅을 파면 돈이 나와요. 네네, 그래요. 우리 애만 그렇다니까요!”
“어머어머, 진희 엄마. 벌써 이야기 들었어? 어, 그래그래. 우리 애가 그렇다니까. 나는 기대도 안 했는데 무슨 횡재인지 모르겠어. 앉은자리에서 5만 원을 벌었다니까. 로또도 이런 로또가 어디 있겠어?”
나는 조금 창피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신이 난 엄마의 모습을 보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늘 어디 가서 내 자랑 좀 해보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엄마와 아빠는 며칠 뒤, 나를 방송국에 제보했고 나는 <지구에 이런 일이>와 <천재 발굴단>에 출연까지 하게 되었어요. 기뻤냐고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이렇게 칭찬받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어른들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쓸데없는 짓’이라고 불렀는데 이젠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얼마 지나자 그런 기분은 민들레 씨앗이 바람에 날리듯 홀홀 사라져 버렸어요.
“내가 사람이야, 땅 파는 기계야?”
한숨 섞인 나의 투정에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어요. 그저 신나는 얼굴로 아빠와 돈을 세며 아파트를 옮길지 차를 새로 살지 들떠 있었어요.
“꺅, 이게 무슨 일이야?”
혼비백산한 엄마가 아빠에게 소리 질렀어요.
“당신, 당장 포클레인 자격증이라도 좀 따 봐.”
엄마의 재촉에 아빠는 까끌한 턱수염을 매만지며,
“지금 이 나이에 무슨 포클레인 자격증이야. 그거 따려면 또 공부해야 하는데. 나도 이제 지친다고.”
“그럼 지금 애를 저 꼴로 놔둔다는 소리야? 포클레인이 그냥 움직여? 사람이 들어가서 조종을 안 하면 포클레인은 그냥 고철덩어리밖에 더 돼? 지금 우리 애를 저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고물로 만들고 싶어? 가만 놔두면 엄한 땅 다 파서 그거 우리가 또 보상해줘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왕 팔거면 제대로 파야 할 거 아니야!”
“아니 이 여자야! 언제는 애 교육에 신경 쓰지 말라며. 당신이야말로 애가 포클레인이 될 때까지 뭘 한 거야?”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엄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내가 포클레인으로 변해도 엄마와 아빠의 싸움은 늘 똑같은 순서대로 흘러갑니다. 나는 그만 싸우는 소리에 지쳐 내 코에 달린 거대한 버켓을 땅에 내려놓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유명한 박사님도 엔지니어도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틈만 나면 기자들이 찾아오는 탓에 나는 매일 피곤했답니다. 엄마도 이제는 관심이 지겨운 사람처럼 기자들과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내쫓기 일쑤였어요.
투두둑. 빗방울이 온몸을 감쌌어요. 내가 아이였다면 우산이라도 쓸 수 있었겠지만 이젠 그저 비를 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흑흑.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엄마의 얼굴이 눈물범벅이었어요. 엄마는 내 몸에서 흐르는 녹을 보며 마치 코피라도 난 듯이 호들갑을 떨었어요.
“아이고, 우리 애기 아파서 어떡해.”
내가 아주 어릴 때만 보던 엄마의 모습이었어요. 이것도 꿈일까? 나는 차창이 되어버린 눈꺼풀을 와이퍼로 뻑뻑 닦으며 엄마를 바라보았어요. 지잉지잉. 울지 말라고, 붐을 움직일 때마다 엄마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어요.
"이제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뭘 어쩌겠어요? 나는 하던 대로 땅을 계속 파겠죠.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정식 포클레인이 되었으니 나도 좀 덜 피곤해질 것 같네요. 포클레인이 땅 파는 게 뭐 신기한 일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