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너무 길어요.’
천신만고 끝에 출간된 그의 첫 책에 달린 첫 번째 리뷰였다. 누군가 스타트를 끊어주길 바란 걸까? 이 리뷰 이후에 여러 사람들이 그의 호흡을 탓하기 시작했다.
긴 호흡.
‘긴 호흡이 어때서?’
주식도, 습관도, 연애도, 인생도 긴 호흡으로 바라보라 충고하는데 어째서 문장에서의 긴 호흡만큼은 금기가 된다는 말인가. 지리멸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긴 호흡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짧은 문장,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기. 독자로 하여금 움푹한 사이의 구덩이에 몸 담가 사유하게 하게 만들기. 가독성을 높이고 문장을 쓰는 사람으로서 예술적 미학을 성취하는 일. 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도 자신이 말하지 않은 것을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는 말하고 싶었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막아도 막아도 터져오를 것 같은 자신의 심상을, 숨 한 번 쉬지 않고 말해도 턱끝까지 숨이 차오르기는커녕 더 강렬히 토해내고 싶은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소위 말맛이라고 하죠. 작가의 특장은 이 말맛에 있어요. 하지만 호흡이 길어요. 문장 사이 호흡이 어찌나 긴 지 역설적이게도 숨 쉴 틈 하나 없군요. 그 점이 참 아쉽습니다.’
칭찬의 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긴 호흡이 마치는 인사라도 된다는 듯 으레 지적했고 긴 호흡을 지적당할 때마다 그의 장점들은 자연스럽게 휘발되었다.
청탁은 전무하고 리뷰의 숫자도 줄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책을 낸 문우는 드라마 판권 계약까지 했다는데 그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그에게 남은 건 긴 호흡뿐.
“그놈의 호흡, 망할 놈의 호흡. 그래, 인간들아 니네들이 그렇게 원하는 긴 호흡 내 손으로 마무리한다. 미친 그 짧은 호흡이 뭔지 내가 보여줄게.”
그는 옷장에서 제일 비싸고 단정한 옷을 꺼내 입었다. 평소에는 잘 바르지도 않던 스킨과 로션까지 듬뿍 바른 뒤 샘플로 받은 수분크림까지 구석구석 발랐다. 통장 잔고를 싹 그러모아 청담동 스테이크 집에서 홀로 등심을 먹었다. 모범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뒤, 치실로 치석을 제거하고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꼼꼼하게 양치를 했다. 술기운은 필요 없었다. 사람들은 과정보다 결과를 더 높게 사니까. 스스로 결심한 인생의 마무리만큼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길 바랐다. 단조로운 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지는 몰라도 사람이 죽었다는데 단신으로는 처리되지 않을까. 그는 한강으로 갔다. 작가치고 이건 너무 클리셰가 아니냐 비난할지 몰라도 한강만큼 몸을 던지기에 좋은 곳도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정신이 듭니까? 세상에, 기적입니다. 평소에 운동을 자주 하셨나 봐요? 물속에 그렇게 오래 있고도 살아난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어요. 정말 긴 호흡을 가지셨군요.”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긴 호흡을 가진 사람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쩐지 그가 들이마신 산소가 아직도 몸속에 남아 배출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니미럴. 그놈의 긴 호흡.”
그는 긴 호흡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냈다. 긴 호흡이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망쳤는가에 대한 그의 회고는, 경쟁과 불안에 떨며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한 번쯤은 느리게 살아보자는 당시 시류와 딱 맞아떨어졌다. 그 해 에세이 부문에서 6개월 내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마침내 그는 긴 호흡의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