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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by 존치즈버거

오늘도 엄마는 어디선가 길을 잃었나 봅니다. 학교를 마치고 오니 불 꺼진 집 앞에 배고픈 밍키만이 저를 반겨줍니다. 밍키는 우리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아기 고양이입니다. 밍키의 엄마가 먹을 것을 구하러 가면 밍키는 우리 집 앞 쓰레기 더미 틈에 들어가 낯선 사람과 추위를 피합니다. 내 발소리를 귀신 같이 알아들은 밍키가 반갑게 야옹 하고 인사합니다. 고양이의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해요. 그저 코를 찡긋하며 밍키의 울음을 따라 해 봅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 참치캔 하나를 뜯어 밍키에게 줍니다. 참치를 맛있게 먹은 밍키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꼭 놀아 달라 조르는 동생 같습니다.


“미안해. 오늘도 엄마 찾으러 가야 해. 네 엄마도 곧 오실 테니까 여기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야 해. 어디 다른 데 가지 말고.”


밍키의 작은 울음소리를 배웅 삼아 나는 오늘도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아무래도 잘 그린 약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엄마는 툭하면 길을 잃으니까요. 나는 외투를 꼼꼼하게 부여잡고 한 달음에 커다란 도로까지 질주합니다.


오늘은 좀 멀리까지 나가보려 걷고 또 걸었습니다. 버스정류장이 보입니다. 기다란 벤치에 앉아 파일을 가슴에 꼭 쥐고 핸드폰 불빛에 코를 박고 있는 누나가 보입니다. 누나는 추운지 다리를 달그락 거리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누나의 낮은 굽이 만드는 소리가 경쾌하게 귀를 울립니다. 강아지처럼 축 처진 눈, 누나는 왠지 좋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누나!”


내 말에 누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다시 바라봅니다.


“나 말이니?”


“네, 누나. 혹시 우리 엄마 못 보셨어요?”


“너희 엄마? 글쎄. 너희 엄마가 버스정류장에 있다고 하셨니?”


“네. 엄마가 여기서 매일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오늘은 너무 늦네요.”


“아까 전에 짧은 머리하고 파란 구두 신은 아주머니 한 분이 내리셨는데 너희 엄마신가?”


“아, 아니에요. 우리 엄마 머리는 길어요. 목도 기린처럼 길고 새하얀 손가락도 엄청 길쭉해요. 웃을 땐 누나처럼 요렇게 눈이 처져서 아기 강아지 같기도 하고요.”


누나는 빙그레 웃었어요. 나도 누나에게 대답하듯 같이 웃습니다.


“날씨도 추운데 집에 가서 기다리는 건 어때? 감기 걸리면 엄마가 걱정하실 텐데. 집에 있으면 엄마가 오지 않으실까?”


“하지만 난 매일 이렇게 나와서 엄마를 마중하는 걸요? 내가 안 보이면 엄마가 실망할 텐데.”


“어머, 너희 엄마는 정말 좋겠다. 이렇게 마중 나오는 멋진 아들도 있고.”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어요. 누나가 나눠 준 사탕 하나를 천천히 입안에서 굴립니다.


“누나는 엄마 데리러 안 가요?”


누나가 배시시 웃습니다.


“나는 엄마가 매일 데리러 나오셔. 이렇게 다 컸는데도 엄마는 내 걱정이 되나 봐. 나도 너처럼 엄마 데리러 가는 딸이 돼야 하는데…….”


“그래도 누나가 버스에서 내리면 누나 엄마는 행복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누나는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니까.”


누나가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줍니다. 곧 띵똥하는 소리와 함께 누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엄마가 곧 오시길 바랄게. 누나가 타는 버스가 이제 오나 봐. 그럼 잘 가, 귀여운 꼬마.”


나는 누나의 버스가 점처럼 작아질 때까지 차창 너머 누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몇 대의 버스가 더 지나갔지만 엄마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어깨를 피고 발을 힘차게 내디뎌 저 멀리 공원으로 가봅니다. 아까까지 붉은 노을이 아스라이 져있던 하늘이 회색 물감을 탄 듯 흐릿해졌네요. 공원에서 놀던 아이들도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총총 떠나고 있습니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엄마를 기다려 봅니다.


“꼬마야, 왜 혼자 있니?”


공원을 청소하시던 아주머니가 계속 저를 바라보며 물어보십니다.

“엄마를 찾고 있어요. 엄마가 퇴근하고 오시면 여기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래? 나는 매일 여기에서 청소하는데 오늘 너 처음 보는데?”


“아……. 평소에는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오늘은 공원에서 보기로 했어요.”


“왜? 공원에서 뭐 하기로 했어?”


“오늘이 엄마 생신이거든요. 제가 그동안 줄넘기 2단 뛰기 연습했는데 선물로 그거 보여드리려고요. 처음에는 정말 못 했는데 제가 엄마 몰래 엄청 연습해서 이제는 잘해요.”


“그래? 그런데 줄넘기는 어디 있니?”


아차, 나는 매우 놀란 사람처럼 일부러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이럴 수가, 줄넘기를 집에 놓고 왔네요. 내 정신 좀 봐! 어쩌죠? 엄마한테 꼭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울상을 짓자 아주머니가 오히려 미안한 듯 내 등을 토닥여주십니다.


“그럴 수도 있지. 엄마 본다고 들떠서 안 챙겼나 보네. 내일 보여 드려도 엄마는 실망하지 않으실 거야. 그나저나 너희 엄마는 참 좋겠다. 우리 아들도 너 만한 때가 있었는데. 훌쩍 커버리더니 엄마가 언제 오든 신경도 안 쓰네.”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주머니를 쳐다봅니다.


“에이, 아닐걸요? 아마도 형은 이제 확실히 아는 게 아닐까요? 언제든 엄마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걸.”

내 말에 아주머니가 빗질을 멈추고 우두커니 나를 바라봅니다. 곧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십니다.


“너, 아주 똑똑하구나.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아들은 이제 그걸 다 아는 나이라서 그런가 보다. 너희 엄마가 누군지는 몰라도 널 아주 잘 키우셨구나.”


나는 부끄러운 듯 코를 찡긋해봅니다. 하늘은 이제 진한 물감을 뿌린 듯 어둠으로 뒤덮였습니다. 아주머니의 빗질도 멀어집니다. 나는 물끄러미 딴 곳을 보다 크게 소리를 칩니다.


“어, 저기 엄마가 있네요. 저기 빨간 치마를 입은 사람이 우리 엄마예요.”


우렁찬 나의 목소리에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얼른 가봐라.”


나는 한달음에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에게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 여자분은 우리 엄마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내 발걸음이 닿은 곳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자동차들이 보입니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환한 빛을 내뿜고 있는 건물에는 온통 학원들만 있습니다. 일제히 열리는 차문에서 아이들이 블록처럼 쏟아집니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오늘도 집중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나라면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며 오늘은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할 텐데, 아이들은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갑니다. 앞만 보고 걷는 아이들을 등지고 나는 홀로 손을 흔듭니다. 저 수많은 엄마 중 내 엄마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무도 내 인사에 대답하진 않습니다. 아이들의 손에는 저마다 무거운 캐리어가 들려 있습니다. 드르륵 차르륵. 콘크리트 바닥을 울리는 가방들의 무거운 화음에 맞추어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봅니다.


“아, 오늘은 진짜 가기 싫다.”


귓가를 스치는 투정에 아이들이 소곤소곤 불평을 토합니다. 나도 엄마를 만나면 괜히 토라진 표정으로 불평하고 싶습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이렇게 추운 날 어디에서 무얼 하다 왔냐고.


어느새 강풍에 낙엽이 쓸리듯 아이들은 건물 안으러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차들도 차례차례 줄을 지어 어디론가 떠납니다. 나는 멀어지는 차를 향해 다시 한번 손을 흔듭니다. 오늘도 고생이 많아요, 엄마. 작은 소리로 말하고 나도 다시 길을 걷습니다. 고요해진 길 한복판에서 잠시 멈춰 하늘을 봅니다. 까만 밤 위에 더 까만 밤이 덧칠되었습니다. 집으로 갈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나는 길목의 편의점에 들어가 2천 원짜리 김밥을 집어 듭니다. 김밥을 품 안에 넣고 전속력으로 뛰어봅니다. 내 몸이 뛰면 심장도 덩달아 뜁니다. 심장이 뛰면 왠지 기분이 좋습니다. 마치 내게 설레는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니까요. 나는 이제 우리 집으로 가는 모든 지름길을 알고 있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숙제는 미루고 약도부터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발소리를 귀신같이 아는 밍키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밉니다. 여전히 배곯는 모양으로 야옹야옹거리고 있습니다. 나는 김밥을 꺼내 먹기 좋게 옆구리를 터뜨려 나눠줍니다. 나도 미지근한 김밥을 입 속에 털어 넣습니다.


“오늘도 엄마는 찾지 못했어.”


내 말에 밍키가 가르랑 하고 소리를 냅니다. 녀석은 내 말에 곧잘 대답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엄마를 부러워해. 나 같은 아들을 두었다고 말이야. 이 사실을 엄마도 알게 되면 집으로 돌아올 텐데. 밍키 넌 어떻게 생각해?”


밍키가 앞발로 수염을 다듬으며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짓고 밍키와 함께 밍키의 엄마를 기다립니다.


잠시 뒤, 다리를 절뚝거리는 밍키의 엄마가 다가옵니다. 나는 밍키의 엄마에게 손을 흔듭니다. 핼쑥한 엄마의 입에 밍키의 저녁이 물려 있습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손을 흔듭니다. 밍키 엄마의 다리가 예전보다 더 아파 보입니다. 밍키가 엄마의 다리를 핥아줍니다. 엄마의 다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동네에 술 취한 아저씨였습니다. 밍키를 갓 낳았던 밍키의 괴로움에 밤마다 울었습니다. 내가 해줄 것은 없었습니다. 나는 밍키의 엄마가 밍키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곧 죽을 것 같다던 무심한 우리 아빠의 말에도 엄마는 이겨냈습니다. 죽음까지 이겨낸 엄마가 무엇이 두려울 수 있을까요? 밍키의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천천히 내게로 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나는 밍키와 엄마의 시간을 위해 자리를 비켜줍니다. 야옹야옹 잘 들어가라는 듯이 작은 울음으로 배웅하는 둘에게 손을 흔듭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홀로 약도를 그립니다. 엄마에게 약도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엄마도 어디에선가 절룩거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집으로 오기만 한다면 엄마가 어떤 모습이든 나는 괜찮습니다. 나는 내일도 엄마를 찾아 나설 겁니다. 먼 데서 올 우리 엄마를 미리 배웅하며 나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사랑을 배웁니다. 엄마를 찾는 아이를 미워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지런히 헤매다 보면 내 마음이 엄마의 느린 걸음보다 먼저 닿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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