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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Nov 06. 2019

영화광의 고백(15)-이제 그만 재생을 멈추자!


  내 동생은 나와 11살 차이가 난다. 어릴 적 나는 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일도 내가 담당이었고 응가를 치우는 일도 돈까스를 튀겨 주는 일도 내가 도맡았다. 우리 집에는 잔소리를 거의 안 하는 부모님이 계신 덕에 자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지만, 내 동생은 내 덕에 그 자유가 무제한이었다.

  나는 동생이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면 게임을 시켜줬고 영화가 보고 싶다고 하면 흔쾌히 보여주었다. 그 아이의 유년 시절의 반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섬나라 특촬물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번은 목 근육에 이상이 와서 목을 반쯤 오른쪽으로 기울고 있어야 할 때도, 그 녀석은 게임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내 동생이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할 텐데, 다행히 녀석은 비교적 탄탄대로의 인생을 걸었다. 어릴 적 질리도록 게임을 한 덕이라고 본다. 10대가 되어서는 게임을 거의 하지 않고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타와 피아노가 게임의 자리를 대신하긴 했지만.


  동생이 7살이 되던 해 나는 동생과 함께 첫 영화를 보았다. 그러니까 영화관에 간 것이다. 서현역 메가박스. 당시만 해도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의자에서는 섬유 특유의 휘발유 냄새가 났다. 우리가 같이 본 영화는 <파워 퍼프 걸>!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나온 영화. 의외로 극장 안에 사람이 많았다. 아이들은 파워퍼프걸이 당할 때마다 소리를 질러 주었다.

 

  동생은 포켓몬과 디지몬의 엄청난 팬이었지만 가끔 파워퍼프걸을 보기도 했다. 당시 어린이와 볼 만한 영화를 찾던 중 유일하게 개봉한 어린이 영화라 고른 것 같다. 영화 자체는 기억이 잘 남지 않는다.



  2007년에 나온 영화 <내사랑>. 너무 재미없었다. 러브 액츄얼리의 성공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옴니버스 영화가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이 영화도 그중 하나이다. 나는 강짱, 최강희의 오랜 팬으로 단순히 그녀가 등장한다는 사실에 들떠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고 나는 강짱을 보며 욕을 참았다. 하지만 극장에서 나온 동생은 엄청나게 울고 있었다. 아마 불치병에 걸린 인물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누가 때렸어? 누가 너 꼬집었어?"하고 화를 내며 범인을 색출하려 했던 기억이 난다. 저 영화를 보고 울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2008년에 나온 다찌마와 리. 이 영화를 속된 말로 '똥망/ 망작 / 개재미없음' 등의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달며 악평을 퍼붓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는 동생과 이 영화를 보며 극장을 뛰쳐나와야 했다. 너무 웃겨서.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참느라 부들거리다 눈물까지 흘렸다. 나의 병맛 감성을 제대로 저격한 영화였다. 


  우리는 이렇게 영화관에서 다양한 영화들을 감상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비디오를 보는 것에 더 치중했다. 비디오의 시대가 저물던 2000년대에도 우리는 가까스로 오래된 비디오 기계를 지켜내며 본 영화를 또 보고 또 보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나만 한 가지 비디오를 많이 돌려 보나 싶었는데 유전적 영향인지 내 동생도 나만큼이나 본 걸 또 보는 녀석이었다.


  나는 동생 덕분에 후뢰시맨백 투 더 퓨처 그리고 취권을 족히 50번 넘게 보았다. 나중에는 진심으로 정색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동생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새끼 나보다 지독하네!' 진심이었다. 


진즉에 프리즘을 써야지... 후뢰시맨 보면서 늘 불평을 했다. 도대체 왜 프리즘을 안 써서 실컷 얻어맞는 것인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꺅! 너무 합성티 나서 좋다.... 이런 걸 레트로라 그러는 거 아닌가-.-;


아프기 전만 해도 마이클 J. 폭스의 발재간 엄청났는데... 역시 건강이 최고다!


영화만 봐도 술냄새가 진동한다.



팔선 취권의 창시자인 소화자! 이런 영화는 확실히 사부가 이상할수록 재미있음.


  후뢰시맨 백 투 더 퓨처도 취권도 모두 70~80년대에 생산된 영상물이었다. 나도 어릴 때 저 시리즈와 영화를 보았지만 내 동생 나이 때와는 거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동생이 나와 동시대의 오락거리를 즐긴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하여 기쁜 마음으로 같이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미친 듯이 보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귓가에서 저들의 대사가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동네에 하나남은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후뢰시맨을 빌리고 빌리고 또 빌리니까 어차피 이거 이제 빌리는 사람 없다고 보고 싶은 만큼 실컷 보고 돌려줘도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비디오 가게 사장님이 미웠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후뢰시맨의 마지막 편을 보며 "야, 지금 보니까 저거 완전 스타워즈 짭이네."라는 나의 불평에도 동생은 역시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되감기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동네에 하나 남은 비디오 가게가 폐점을 하면서부터 였다. 티브이 선반을 커다랗게 차지하던 우리 집 비디오 기계도 플레이스테이션과 DVD기계로 대체되었다. 그즈음부터 동생은 메타녀라는 고전게임에 중독이 되었고 나도 덩달아 함께 그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 아이들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 불린다는 월플라워. 이 영화를 보면 에즈라 밀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스포츠카 모는 럭비부와 치어리더들 보다는 한없이 투명하고 어딘가 모자란 너드들의 이야기가 더 좋다.


  비디오는 사라졌지만 동생에게 부지런히 영화를 추천하긴 했다. 심지어 '장난스런 키스'의 대만판인 <악작극지문>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동생에게 몰아보게 하는 고문 아닌 고문도 즐겼다. 시간이 빠르게 휙휙 지나갔고 동생도 나도 각자만의 철저한 사생활이 생기기 시작했다. 청춘사업에 골몰하던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친정을 떠나며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추천해 준 영화가 <월플라워>였다. 원작은 소설로 미국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동생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나 누구보다 따뜻한 감성을 가진 깨어있는 남성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 영화를 동생에게 알려주었고 책도 선물했다. 동생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너드 같은 누나를 둔 덕택인지 동생도 호감 가는 너드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현존하는 게임을 다 맛본 동생은 게임맵을 신나게 만드는 것을 끝으로 그 세계와도 거리를 두었다. 녀석은 대신 기타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기타를 치게 된 것도 내가 생일선물로 받은 통기타를 내가 아무 곳에나 방치한 덕(?)이었다. 독학으로 코드를 배우더니 나중에는 작곡을 하기 시작했고 밴드부에 들어갔다. 음악에 매진하던 동생은 영화음악이 만들고 싶다면서 영화과에 진학을 했다. 솔직히 나는 이것에 나의 영향이 어느 정도 포함되었다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꿈과 희망을 나누던 비디오의 세계는 전멸했다. 그 짧은 사이 DVD도 쇠퇴했고 컴퓨터 CD도 사라졌다. 진보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누군가 우리 삶을 빨리감기하는 기분이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눈을 감고 아직도 선명한 그때를 떠올려 본다. 내게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알려주고 윤리적 화두를 제시하고 좋은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게 만들어 준 것은 8할이 무수한 명작들이었고 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나는 이제 왓챠와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보고 키보드 방향키를 톡톡 치며 시간과 시간 사이를 넘나 들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본 영화를 또 보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해도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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