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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치즈버거 Oct 22. 2019

영화광의 고백(12)-여자 둘이 봉만대 감독 영화를

흑역사를 나누다


  사람들은 나에게 낯을 많이 가린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낯을 가린다는 것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 우선 첫 번째, 갓난아이가 낯선 사람을 대하기 싫어하다. 두 번째는 친하고 친하지 아니함에 따라 달리 대우하다. 세 번째 뜻은 체면을 겨우 세우다. 이건 좀 낯설다. 예시는 이렇게 나온다. '이번 대회에서는 겨우 낯가릴 정도의 성적으로 입상하였다.'


  나는 사람을 대하기 싫어하지도 않고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달리 대우 없이 그냥저냥 일관적으로 좀 무심한 형태를 취하며 '체면'이라는 단어 자체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니 나는 낯을 가려 뚱하기보다 본래 이런 사람인 것이다. 오면 오는 데로 가면 가는 데로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무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다. 가만히 있다 내게 오는 사람에게 세상없이 다정하고 쭉 지켜보다 내가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 예고도 없이 훅 다가가 사랑을 표현한다. 좀 제 멋대로라 여겨질 수 있겠다.


  S와의 만남에서 나는 이런 나의 습관을 깼다. 동아리 후배로 들어온 그 아이에게 내가 먼저 인사하고 서로 이름 말고는 아는 것도 없는데 나는 그 아이와 저녁에 같이 영화 한 편 보자는 약속을 잡았다. S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날 저녁 나는 맥주 몇 캔을 사들고 그 아이 자취방으로 갔다. 내 손에는 공포영화 <신데렐라>가 들려 있었다. 나는 아주 시간이 지난 후에 그것이 에로영화로 이름을 날린 봉만대 감독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똘똘한 눈을 가진 어린 신세경이 지독하게 무서운 엄마 도지원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를 보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본가가 어디냐, 왜 여기 와서 공부하냐, 친구들은 좀 많이 사귀었냐 와 같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화면 속에서는 소스라치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진짜 소름 끼치는 내용이었다-.-; 기분이 확 나빠지는 그런.......



지금과 달리 무명시절의 전소민. 나온 줄도 몰랐다. 하지만 외모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일명 맛. 섹. 사라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영화로 봉만대 감독을 처음 알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여자 몸에 초콜릿을 발라 먹는 씬이 기억에 남는다. 에로 영화로 유명하지만 봉만대 감독은 공포영화도 찍었다. 신데렐라의 줄거리는 이렇다. 사고를 당한 자신의 딸을 위해 성당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진 아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데려온 아이의 얼굴을 도려내 자신의 친딸 얼굴 위에 이식한다. 엄마는 성형외과 의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작 친딸은 자신이 입양아라고 알고 있다. 엄마가 아무에게도, 심지어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이의 얼굴을 이식해버렸기 때문이다. 얼굴이 바뀐 걸 설명할 방법이 그거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굴을 이식한, 지하실에 갇혀 살던 주워 온 아이의 저주가 시작이 된다.


  공포영화라고 하지만 지하실에 갇힌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영화였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공포영화들은 이렇게 찜찜한 기분을 남기는 것 같다. 아무튼 S와 나는 어색하게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를 보았다. 공포 영화답게 소름 끼치는 음악과 귀신의 깜짝 등장으로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해야 했지만, 우리는 홀로 어깨만 들썩할 뿐 어깨조차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신데렐라를 보았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었다. 사실 우리는 영화 후반부에 영화를 아예 꺼버렸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저 영화를 딱히 추천하지 않는다. 저 영화를 함께 보았다는 것이 어쩌면 흑역사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봉만대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한다면 그것은 맛. 섹. 사다!


  후에 S는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훅- 다가온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경우가 처음이었다. 처음 3년간, 나보다 1살 어린 S는 내게 존댓말을 썼다. 아직 순진하기만 했던 S는 내가 주절거리는 개똥철학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었다. 내가 그곳을 떠날 때 S는 내게 편지 한 장을 적어주었다. 편지에서 S는 나를 데미안이라고 불렀고 자신을 싱클레어라고 칭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그 아이에게 무언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냥 S를 조금 더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고 장려한 정도였다. 물론 그 장려의 중심에 칵테일 코스모폴리탄이 있었던 것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네???


  어느 순간 그 아이는 내게 말을 놓았다. 그 아이와 나는 매우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지만 14년이 넘는 시간을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며 우정을 이어갔다. 우리가 인생에서 제일 후지던 때, 빨간 뿔테 안경을 끼고 플라스틱 머리띠를 하고 양털 부츠에 코듀로이보다는 골덴이라 더 칭하고 싶은 치마를 입고 새벽 2시에 도로 한복판에서 막연한 자유를 외치던 그때. 우리는 이제 각자의 삶을 살며 드문드문 연락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면, 마치 워크숍의 제일 중요한 식순마냥 흑역사의 나날을 복기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너무나 다른 가치관으로 서로를 당황케 하기도 한다. 삶의 패턴 또한 판이해 만남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신데렐라를 함께 보던 그날처럼, 우리는 완전히 잊고 살다 또 어제 본 듯 훅- 인사를 건넨다. 마지못해 듣는 척 하지만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미운 정 고운 정 이럴 때 쓰는 말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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