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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역사

by 존치즈버거


나는 보라색과 하늘색을 좋아한다. 나는 낫또를 좋아하고 이것을 모든 음식에 곁들여 먹는다. 나는 재즈와 클래식을 즐겨 듣지만 아이돌의 신곡 뮤직비디오도 꼭 챙겨 본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는 만큼 장르소설 또한 사랑한다. 나는 액션 영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로맨스 영화를 보며 커피를 마신다. 나는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먼저 범인을 확인하고 첫 페이지를 편다. 나는 고민이 생기면 표를 만들어 나의 근본적 문제를 확인한다. 나는 원피스를 입을 때 하얀 운동화를 신는다. 나는 커피는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이것은 모두 나의 취향이다. 그리고 이 취향은 단번에 생긴 것이 아니라 동전을 저금하듯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다. 그리고 나의 취향 속에는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흔적이 있다.


나는 특정 브랜드의 한 가지 라면만을 먹는다. 그 라면이 아니면 사실 라면을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그것을 끓여 내 앞에 놓는다. 코끝이 얼얼해질 만큼 매운 면발을 숟가락에 다소곳이 얹은 뒤 그 위에 낫또 한 젓갈을 포갠다. 쪽파도 조금 곁들이면 좋다. 그리고 한 입. 입안에서 면발과 낫또와 쪽파가 맛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순간 귓가에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에릭 사티의 연주곡이 맴돈다. 날계란 하나를 까서 노른자를 낫또 위에 얹고 휘휘 젓는다. '많이 저을수록 점성이 강해져, 그게 낫또의 풍미를 돋우지.' 이제 더 이상 그의 음성은 들리지 않지만 나에겐 나만의 레시피가 생겼다. 그 외에도 아주 많은 즐길거리, 이제는 온전히 나의 취향이 된 소소한 즐거움들 대부분이 나를 떠난 그들 덕분이다.


나의 취향에는 사랑의 역사가 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이 좋아한다고 말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려 노력했다. 스쳐 지나가듯 언급한 영화나 음악들도 대사와 가사를 유심히 보며 꼭 꼭 삼켰다.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밀고 당기는 것은 늘 제 3자의 이야기였다. 나는 사랑을 하는 것보다 사랑을 감추는 것에 더 서툴렀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에게 한없는 내 마음을 보냈다. 마치 내 마음이 도마뱀의 꼬리라도 되는 듯이. 내가 그들의 취향을 내 것으로 만든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 이루어졌다. 단지 그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버려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넘어 그 사람의 인생을 나만의 방식으로 짐작하고 싶어서. 이런 노력들이 내가 모르는 세계의 문을 열어 준 것이다. 맛과 멋, 멜로디와 소리, 이야기와 이미지. 때로는 그들이 좋아하던 나의 어떤 모습이 내 취향이 된 경우도 있다. 그들은 가끔 내가 모르는 나의 매력을 탐정처럼 찾아냈다. 그들의 웃음만큼이나 새로운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물기 가득 머금은 수채물감이 채색되듯, 나의 사랑은 추억뿐만이 아니라 취향과 취미가 되어 내 삶의 밑바탕을 생동감 있게 물들인 것이다.


물론 취향이 일치하고 마음이 맞는다고 해서 이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탐스러운 취향으로 나를 매혹시키고 누구보다 애끓는 사랑을 보냈던 그들도 내 곁을 떠났다. 오래 한 공간에 머문 사람들의 짐이 섞이듯,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공유한 취향들도 네 것 내 것이라는 경계가 없어져 버렸다. 사랑은 떠났지만 음악과 영화는 남았다. 나는 이것들을 누구보다 소중히 간직했다.


지금 나는 나의 취향을 남편과 아이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길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취향의 시발점에 대해서까지 세세하게 고백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소중한 것들을 존중하며 함께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취향은 또다시 한데 섞여 새로운 형태를 가졌다. 이것은 또한 이제 온전히 우리만의 취향이자 추억이 된다. 사랑이 깃든 역사의 역사들이 모여 우리의 역사가 되었으니, 나는 떠난 그들을 밉게만 추억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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