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반짝인다
나에겐 생의 시기마다 힘이 되어주고 강렬한 추억의 섬네일이 되어주는 몇 편의 작품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영화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다. 때로는 그림이나 드라마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추억의 페이지를 다시 열 때 꼭 '그때 내가 아마 이 작품에 꽂혀 있었을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 브런치에 내 삶의 소회들을 풀어놓는 요즘, 내가 무수히 반짝이는 그 작품들을 끄집어내며 사실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 영원한 애증의 존재 사람이여.
12살에 처음 간 이승환의 콘서트는 나에게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엔 재능 없는 학생에게 언제나 친절을 베풀어주던 나의 비올라 선생님이 있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강렬한 음악이 뿜어져 나오며 공교육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든 영화 <더 월>에는, 기꺼이 나와 함께 영화를 봐주었던 소중한 친구 K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반 고흐라 불리는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웃는 자화상>을 보고 감명을 받아 엉엉 울 때는 이제는 남편이 된 나의 다정한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도 아낌없는 찬사를 퍼붓는 특별한 작품들, 그것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작품들이 지닌 위대한 가치만이 아니었다. 그 작품을 끄집어내는 내 기억 곳곳에 소중한 그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에 다소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난 사람이 제일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모든 것에 초연한 듯 콧방귀를 뀌어 대는 나니까. 그렇다고 내가 타인을 대할 때 무례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사람을 끊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뿐. 그리고 날 향한 과도한 관심을 조금 귀찮아할 뿐이기도.
그러나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는데 나는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퉁 쳐서 인류애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사람이 좋다. 각자만의 다채로운 인생과 그 인생이 만드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없이 그립다. 사람이 너무 좋아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는다. 때로는 아주 멀리 떨어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아픔에 대신 울기도 한다. 그리고 그만큼 상처를 준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한다. 사람을 향한 나의 사랑은 상처에도 굳건하다. 여전히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생각한다.
다만, 수없이 상처를 받고도 단련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 사람이 싫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댈 뿐이다. 자기 방어를 하기에 이만큼 좋은 변명이 또 없다. 결국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야기'가 있는 것이라면 허긴 진 아이처럼 내 안으로 삼킨 것도 아마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때문이었을 거다.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으니까.
나이를 먹어가며 무언가의 이름을 가물가물 기억하는 지금에도, 나는 내 삶의 사소한 순간들을 반짝이게 만들어준 나의 작품들만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그 순간들이 조금씩 변형되긴 하지만 그 기억 속에 머문 사람들만은 그대로이다.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즈>라는 에세이집에 김연수 작가는 이런 추천사를 썼다. "도입부만으로도 나는 패티 스미스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도입부에 등장한 어린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백조를 본 순간에 대해 써놓은 문단은 속된 말로 "진짜 죽이는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본 백조를 통해 접한 황홀함과 "백조란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짧은 한 마디, 인생은 백조를 만난 그 순간처럼 경이로 가득 차 있음을 암시하는 탁월한 첫 문단이었다. 그리고 그 문단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은 아마도 패티 스미스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갔던 그날의 기분일 것이다.
나는 아직 미약한 실력 탓에 패티 스미스처럼 탁월한 첫 문단을 쓰는 일은 할 수 없지만, 그녀가 내게 보여준 온도만큼 따스하게 지난날을 반추할 수는 있다. 그것은 훌륭한 재능을 낭비하지 않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노고이자 그런 작품들을 같이 보아주고 이해해 준 나의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사람이 싫다는 말은 거두겠다. 다만 조금 용기를 내어 이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어차피 이제는 안다. 훌륭한 처방이 있다면 상처는 금세 아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처방은 언제나 행운처럼 찾아온 사람들의 덕택임을. 그러니 뒤늦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반짝이는 기억을 선물해 준 그대들을 사실은 아주 많이 사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