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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May 03. 2022

스스로를 가꾸는 나

나는 어제 길고 길었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무사히 전역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실 지난 3월 중순에 이미 집으로 돌아오긴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역 전 휴가, 이른바 '말년휴가'를 나가 부대로 다시 복귀하지 않고, 자가에서 전역한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신분 상으로는 계속 군인 신분이었기에, 어제 비로소 진정한 민간인이 된 것이다. 


나의 군 생활은 축복이었다. 일반행정 모집병으로 군에 입대할 때만 해도 전방에 있는 전투부대 예하 일개 중대에 배치되어 정말 많은 고생을 할 줄 알았던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후방에 위치한 기행 부대에 배치되었고, 그중에서도 본부에서 일할 수 있는 행복한 군 생활을 했다. 주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인생의 모든 운을 군 생활하는 데 때려 박은 것 같다고 말하곤 했는데, 정말 그 정도로 나의 군 생활은 너무나 편안했다. 


내가 나의 군생활에 만족한 이유를 꼽으라면 정말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제일 먼저, 나는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주변 간부들을 항상 날 인정해주어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믿고 맡겼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날 믿어주는 사람들로 인해 나는 내 임무에 더 집중하고 열정으로 임할 수 있었고, 나에게 보내준 믿음은 선순환이 되어 부대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선후임들도 마찬가지였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입대해 처음에는 걱정이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나를 존중해주었다. 나이로 존중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같은 후임으로서, 혹은 선임으로서 날 동등하게 대해주고 어울려주었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사람 복은 타고난 듯하다.


내 군생활이 행복했던 정말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스스로를 더 단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입대하기 전 내 모습은, 스스로 합리화를 잘하고, 게으르지만 잔머리는 좋아 항상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어내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는 나를 그렇게 평가했다. 군에 입대하며 나는 여러 가지 목표를 세웠다. 가장 큰 두 가지 목표는, 전역 후 내 삶을 계획하고 나오기, 그리고 책 100권 읽기였다. 


나는 군 복무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나의 의지로 만들어진 선택이 아닌, 우리가 따라야 하는 사회의 합의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룰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로 태어난 이상, 당연히 수행해야 할 신성한 의무이지만, 만약 선택권이 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그런 것 말이다. 하여튼, 위 두 목표를 세운 이유는 이 무의미 보이는 시간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해외에서 공부에 치여 살며 달려온 나에게는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나는 전역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었고, 영국 로스쿨에 합격해 다가오는 9월 진학을 앞두고 있다. 책 100권 읽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내가 부대에 가져간 책과 그곳에 있던 많은 양의 책을 모두 읽고 나왔다. 적어도 40권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내가 이 목표들을 통해 얻은 진정한 가치는,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에 있었다. 다시 영국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은 후, 로스쿨에 합격해야 하니 내가 가진 자유시간을 모두 투자해 공부하는 데에 집중했다. 남들은 모두 뒹굴거리며 쉬고 있을 개인정비 시간에 나는 도서관, 혹은 사이버 지식정보방에 들어가 공부고 준비하는 데에 집중했다. 잠도 줄였다. 매일 주어진 연등 시간을 활용해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로 늘렸다. 주간에 틈틈이 책도 읽었다. 업무가 너무 많아 일에 치여 살았던 날이 더 많긴 했지만,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내가 달성할 목표를 설정하고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통제하며 하다 보니, 낭비라고 생각되던 기간도 스스로 의미 있는 기간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내 군 생활은 축복이었다. 물론, 나는 감사하게도 좋은 환경에 있을 수 있었고, 그 환경들을 잘 활용했을 뿐이다. 편한 군 생활을 한 것도 크나큰 축복이었지만, 그래도 힘든 군 생활 동안 스스로를 더 어른스럽고 단련할 수 있었기에 더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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