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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 Traveler Jan 17. 2023

비혼시대에 적어보는 결혼의 즐거움

제주라서가 아니라 그이와 함께라서 즐겁습니다.

딸과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는 불안한 마음을 ‘너한테 엄마는 안중에도 없지?‘라는 말로 나를 옭아매며 사사건건 딸을 귀찮게 하던 우리 엄마는 육십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집 개가 나를 두고 분리불안 증세를 보일 때 그렇게 마음 아팠으면서 정작 나에 대한 엄마의 분리불안은 모르고,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살아온 모질고 차디찬 나의 시간들이 후회스러워 엄마가 가시고 한동안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 캄캄한 지옥에서 나를 꺼내준 것은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인 반려견도 아니고 힐링받으며 산다는 이 공간, 제주도 아니다. 비혼시대에 약간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어 ’ 배우자‘이다.


그림같은 선셋도 뒤로 하고 그이를 보는 중


그이는 이론적으로는 부모만이 할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내게 주는 사람이다. 성적이 좋아야만, 맏딸 노릇을 잘해야만 사랑받던 내가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요즘말로) 그이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외국인 눈을 보면 그게 마치 외계인 같다던 나는 그이의 파란 눈에 스며들었고 신혼집은 적어도 33평은 되어야 한다고 큰소리치던 내 수중에 서른 평의 집은 없다. 돈에 집착하며 살던 나와 엄마와는 달리 그이는 내 집 장만 같은 것에는 애당초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을 했다.


그이를 만난 건 일본 공항에서다. 솔로 트립을 좋아했지만 이상하게도 재미를 보지 못했던 후쿠오카 여행 일정을 하루 줄이고 무작정 공항에 갔다가 운명적으로(?) 그이를 만났다. 티켓 창구가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파란눈을 하고 선 이 미국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일본인들이 영어를 잘 쓰지 않아 입에 거미줄 치는 여행에 답답했던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한참을 떠들었다. 그는 나처럼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휴가를 마치고 전주로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그리고 약 1년 이 지나고 그이의 최종목적지는 ‘내’가 되었다.


유일한 공동의 관심사 ‘커피’집에서

그이는 낭만이 가득하고 니체를 읽으며 책 읽기가 지루하다 싶을 때는 수도쿠를 푸는 정적인 남자고 나는 정반대에 있는 여자다. 30만 원짜리 구두를 사신고 삶의 주체는 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속물. 게다가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페페로니 피자다. 나는 피자를 혐오했던 여자고. 하지만 결혼은 결국 이렇게 하는 건가 보다.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은 사람과, 내 오랜 로망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과 살게 되는  일. 이런 아이러니가 결혼의 본질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나는 나의 결핍을 잘 알고 있었고 결혼을 한다면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태산과도 같은 부모의 사랑을 품고있는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매서운 제주의 봄바람도 그이가 곁에 있어 실크결이 되는 되는 기적?을 맛보는 중. 제주라서가 아니라 그이와 같이 있어 더 좋아요. #결혼10주년 #헌정사 #결혼의맛


결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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