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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
"분노거래소"

#4 - R4: 사무실, 일기, 분노거래소

『위화감이 자꾸 드는 건 왜 일까. 소름끼치는 이 느낌.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착각마저 일어나게 만드는 이 방의 분위기에 난 압도당한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니 짧은 복도가 나있고 그 끝에는 이리저리 긁힌 듯 보이는 두 나무문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탐정이라도 된 듯 발소리를 죽이며 사무실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넓은 창문을 뒤로 한 채 기다란 사무용 책상이 허들 경기의 장애물처럼 놓여있다. 왼쪽에는 책장들이, 오른쪽에는 접대용 소파와 둥그런 탁자 하나가 배치되어있다. 벽에는 미스터 마의 젊은 모습을 그린 큰 초상화가 걸려 있다. 조금씩 흔들리는 샹들리에의 불빛 사이로 먼지 쌓인 장식용 벽난로가 내 모습을 보고는 비웃는다.


기다란 사무용 책상으로 다가간다. 낡은 전화기와 스탠드, 흐트러져 있는 서류들(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전원이 꺼진 구식 컴퓨터 옆에는 작은 액자 하나가 놓여있다. 그러나 사진은 없다. 탐정기질이 발동하여 책상서랍까지 열어보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초상화 근처로 간다. 젊은 날의 미스터 마. 비록 그림이라 약간은 다르게 묘사했을지 몰라도 내가 처음 받았던 미스터 마의 인상 그대로의 느낌을 받는다.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갸름한 얼굴. 그의 강렬한 눈빛은 마치 날 보고 있는 듯하다. 옅은 연두색 재킷과 하얀색 셔츠를 입은 상반신. 어깨는 약간 좁아 보였으나 전체적으로는 미남형에 가까웠다.


그의 얼굴과 비교해 나 자신을 자책하면서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벽난로 쪽을 향해 걸어간다. 누가 봐도 장식용처럼 보이는 이 조약한 벽난로. 케케묵은 먼지만이 이 벽난로가 언제 이곳에 들여졌는지 짐작가게 해준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쌓인 선반 위에는 작은 일기장 하나가 놓여있다.


읽고 싶다. 


내 마음 속이 심하게 요동친다. 어쩌면 이 분노거래소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있으리라. 미스터 마가 썼든 누군가가 썼든 이런 상황에서 기록물은 무언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추리소설과 스릴러영화를 즐겨보는 나는 잘 알고 있다. 


먼지를 털어낸 뒤 일기장 첫 페이지를 펼친다. 방금 쓴 것처럼 선명한 붉은색 글씨로 크게 쓰인 문구를 읽어보던 도중 너무 놀란 나머지 일기장을 그대로 카펫 위에 떨어뜨렸다. 그럴 리가 없다. 그것은 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 아무도 모르는 『이것』이 어떻게 이 일기장에 적혀 있는 것일까.


미스터 마가 곧 올 것 같은 불안한 느낌에 재빨리 일기장을 집어 든다. 그리고 빠르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훑어보았지만 아무 내용도 없다. 단, 일기장 첫 페이지만을 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첫 페이지를 다시 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로 일기장에 여전히 적혀있다.


삐거덕거리는 소리. 


미스터 마가 올라오고 있다. 어서 이 흔적을 지워야 한다. 이것은 미스터 마와 분노거래소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일기장을 선반위에 원래 상태로 돌려놓은 뒤 소파로 향해 점프한다. 타이밍 좋게 바로 사무실로 들어서는 미스터 마.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간단한 설명과 상담 후 바로 계약에 들어가지요.”


※ 분노거래소 Step 4 : 분노를 판매하는 절차는
일반적으로 5가지의 과정을 거칩니다.

“상담->평가->계약->관리->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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