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그 애를 보러 가는 게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사람이 별로 없는 해변이란 것은 없었다. 완만한 해변에는 카페나 식당 같은 것들이 자리했고, 절벽을 깎아지른 해변 근처에도 자동차가 다니는 곳들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애에게 사람이 없는 또 다른 위험한 절벽을 찾아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 그 애를 위해 겨울에는 자주 만나지 않기도 하지만, 점점 따뜻한 바람이 불수록 그 애를 본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여기저기 해안가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실망했지만, 그래도 그 애가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으니 조금만 있으면 이제 그 애가 멋진 선장님이 되어 나를 만나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힘을 냈다. 나는 그 애가 늘 말하던 하얀 돛을 단 하얀 요트에 선글라스를 끼고 거드름을 피우며 조종석에 앉은 그 애의 배를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났다.
내가 너무 툴툴거리고 다닌 탓인지, 아니면 바람에 휘날리는 그 애의 신비롭고 어두운 머리카락과 보송한 피부, 빛나는 까만 눈동자에 대해 너무 노래를 부르고 다녀서인지 이제 이 근처 바다에는 나의 고민을 모르는 이가 별로 없었다. 다들 내 푸념을 지겨워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한 내가 불쌍하기도 했는지 한 군데씩 장소를 추천하곤 했지만 벌써 내가 거의 다 가본 곳들 뿐이었다. 가끔 그 애를 그렇게 기다리는 나를 보며 혀를 차거나 그 애를 놔줘야 한다고 진지하게 충고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애가 더 이상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더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꼭 그 애를 보고 싶은 마음은 어떤 조롱과 야유에도 잦아들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와 닮은 친구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고, 빛도 잘 보이지 않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한 곳에서 고래를 만나고 오곤 했다. 정작 고래에게 가면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함께 앉아 멀리서 비추는 빛을 구경하거나 깨끗한 바닥에 그려진 빛의 그림자를 구경할 뿐이었지만, 말없이 기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편해지는 내 오랜 친구였다. 사실 사람들처럼 꼭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았기 때문에, 고래는 내 생각을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그 생각들이 다 정리될 때까지 충고도 어설픈 위로도 하지 않았다.
결국 방법을 찾아낸 것은 그 애가 그렇게 좋아하던 돌고래 가족을 통해서였다. 그 애는 돌고래의 꼬리와 우아한 몸짓이 꼭 나와 비슷하다며 웃곤 했다. 물론 나는 돌고래보다 내가 더 멋지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 괜히 내가 좀 더 길고 반짝이는 몸을 가졌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쓰곤 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모두 그 애와 비슷한 눈을 가졌다면, 돌고래 무리에 섞여 있을 때 나를 좀 더 찾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돌고래 가족들도 얕은 해안가 근처에서만 살고 있는 물고기를 찾으러 사람들이 사는 곳과 가까운 바다까지 나가는 일이 있었고, 그때 섞여 들어가서 정말로 사람들이 나를 돌고래와 같다고 생각하는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돌고래 가족들은 나처럼 사람들이 물체를 잘 못 보는 어두운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았고, 오히려 빛이 밝게 비추기 시작하는 시간부터 움직이곤 했다. 정말 그런 시간에도 내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 애를 가까이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애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과, 사람들이 나를 발견해서 그 애를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왠지 평소처럼 유영하는 것도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돌고래 가족들과 똑같이 헤엄치려고 노력하는 걸 보고 막내 돌고래가 피식 웃었다. 막내 덕분에 이상한 긴장감이 풀어졌다. 돌고래 가족들은 쏟아지기 시작하는 따뜻한 빛 위로 자꾸만 등을 내밀며 점점 얕은 바다로 나갔다. 나는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눈치를 살피며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제일 비웃던 막내가 먼저 내 주위를 돌며 주변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괜찮으니 나와보라고 내 머리를 수면 위로 밀었다. 나는 정말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저 멀리 해안가에는 이상하게 아무도 없었고, 주변에는 돌고래 모양과 고래 꼬리 모양의 단단한 돌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중에 그 애는 그게 사람들이 돌고래와 고래를 보고 싶어서 만들어놓은 것들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무튼 돌고래 가족들도 그 이상한 돌 덕분에 여기에서 헤엄치는 것이 좀 더 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다음번엔 그 애와 꼭 여기서, 이렇게 이른 아침 시간에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용기를 내서 나는 어깨까지 몸을 내밀어 조금씩 헤엄쳤지만, 돌고래 가족 사이에 나온 나와 내 꼬리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애는 걱정하는 나를 두고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나와 같은 존재를 보지 못해서 보더라도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과 우리의 오래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숨어야 하는 존재였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그 애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옛날 먼바다에서 인간을 사랑했던 우리 공주님이 물거품이 되었던 역사는 아직 인간에게도, 우리에게도 잊히지 않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그 애를 마주쳤을 때, 나는 나 하나 때문에 다시 슬픈 역사가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애를 계속 못 본 척해야 했다. 사실 그 옛날 공주님이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이후 우리는 육지에 나가는 것을 더욱 꺼리게 되었고, 나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친구들 외에는 땅을 디디고 선다는 것은 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일이었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공주님의 사랑을 끝끝내 잊지 못한 왕자님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 우리들에게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 육지를 디딜 수 있는 존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도 그 밤, 그 애가 홀로 앉아있는 해변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면 몰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겹도록 들은 육지의 위험함 따위는 내게 해당되지 않는 일처럼 느껴져서, 그 애가 보이는 풍경 가까이 가다가 갑자기 내 몸을 받치던 꼬리에 이상한 감각을 느끼며 땅을 처음으로 딛는다는 감각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모두에게 내 새로운 능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달이 차오르면 다시 그 애를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열심히 숨어 다녔다. 나름대로는 매번 다른 곳을 통해 육지로 나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 애를 처음 본 그 바다 근처에서 항상 그 애를 찾아다니다 보니 그 애가 나를 발견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사실 그 애는 내가 처음 변화를 맞이했던 날, 바다로 돌아가는 나를 본 뒤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옛날 옛적의 그 공주님이 인간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모한 공주님과, 그로 인해 깊고 사람이 없는 바다로 활동반경이 제한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 뿐이었다. 그 공주님이 왜 마녀를 찾아 목소리까지 내어주고 종국엔 생명까지 걸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평생 그런 느낌은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애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하고 그 애의 생각을 읽어낸 순간 나는 공주님의 마음과 선택에 대해서 깨달아버렸다. 절대로 그 애를 만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애에게 내 생각을 소리로 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그 애는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놀라지도 않았다. 수없이 들어왔던 인간의 호기심과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약간의 놀람과 반가움을 가지고 나에게 서슴없이 손을 뻗었다. 처음의 나는 무서웠고, 그 애 옆에 있던 강아지만큼이나 작게 몸을 말고 그 애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그 애의 첫마디는 소리보다 먼저 전해진 마음으로 들었다. “괜찮아, 아무에게도 너에 대해 말하지 않을게.”
그 애의 약속은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사실 그 애와 나의 대화에 있어서는 내게 너무 유리한 점이 많았는데, 그 애가 말하지 않아도 바다 근처에 그 애가 있다면 언제든 내가 그 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과 생각을 그 애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조금 먼 섬에 사는 회색앵무를 찾아가 사람의 말을 배워야만 했다. 다음 보름달을 기다리는 내내 나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존재들을 피하고, 그 애를 먼발치에서라도 보려고 맴돌면서, 사람의 말을 배우느라 꼬리가 닳도록 움직여야만 했다. 육지에 사는 그 애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스스로가 놀랍고 신기했지만, 꼭 그 애를 다시 만나서 말을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실 그러면서도 그 애를 다시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하고 싶냐고 회색앵무가 물었을 때, 묻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던 생각과는 달리 말문이 막혀서 ‘안녕’이라는 말부터 하라는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어렵게 배운 인사를 처음 그 애에게 건넸을 때의 표정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중에 그 애에게 말을 좀 더 배우면서 내가 자신 있게 회색앵무에게 배워온 대부분의 말들은 완전하지 않으며 명령하는 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내가 보름달이 뜰 때마다 그 애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회색앵무의 역할이 컸다. 이번에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 해변에서 만나자, 바다와 맞닿은 그 숲의 열다섯 번째 소나무에서 기다릴게 같은 말들은 회색앵무가 전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렇게 매번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애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일은 바다에서 해왔던 그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애의 차분한 마음과 소리가 같은 뜻으로 울릴 때의 기쁨과, 그 애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가까이 앉아 있는 일은 너무 좋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시린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지만, 그 애는 가끔 나와 만나는 것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애는 나를 ‘에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옛날 사라졌던 우리 공주님의 이름이 ‘에리얼’이고, 그녀가 사랑했던 왕자님의 이름이 ‘에릭’이라고 그 애는 나중에서야 말해주었다. 나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그 이름들은 그 애는 알고 있었고, 왕자도 아닌 나를 그렇게 불러준다는 것이 나는 마냥 기뻤다. 비록 두 사람은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았지만, 그 애와 나는 사는 곳이 달라도 마음을 나누고 있었으므로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에 대한 약간의 불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그 애도 나와 다른 세상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슬펐지만, 그 애가 나를 ‘에릭 왕자님’하고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 그런 기색은 감추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다고 어느 갈매기가 말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보름달이 뜨면 육지로 나갈 수 있는 존재이며,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어느 왕족에게 말할 수밖에 없는 때가 왔다. 긴 회의가 이어졌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나를 두고 하는 말들에 상처받기보다는 그 애가 보고 싶다는 열망에 들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이 일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내가 그렇게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인간들은 나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육지에 대한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그 애와 몰래 만나던 해변가들에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겨우 갈매기들을 통해 가끔 소식을 전해 들을 뿐이었다. 결국 내 편을 들어준 것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글린 공주님이었다. 그 옛날 에리얼 공주님과는 달리 나는 마녀의 도움 없이도 다리를 가질 수 있어서 말을 할 수 있으며, 그 애가 지금까지 비밀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글린 공주님의 정찰대가 그 애의 마음을 읽으러 갔지만 한 번도 나를 배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한 증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를 영원히 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을 한 번에 잠재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조건이 붙었다. 마치 에리얼 공주님에게 에릭 왕자를 죽일 단도를 주었던 것과 같은 조건이 생기는 것인지 나는 두려웠다. 수백 년 동안 할 일이 없었던 바다의 마녀는 내게 작은 병을 건네며 말했다. 절대 그 애를 해치는 일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녀를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애에게 그 작은 병의 마법약을 먹이는 조건으로 자유를 되찾았다. 도대체 그 효과에 대해서는 내게 정확히 말해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지만, 적어도 나를 지지해준 글린 공주가 자신을 믿고 이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긴 시간을 들여 설득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육지로 향할 수 있었다.
그 애에게 그 약을 먹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애는 육지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늘 물병을 여러 개 가지고 다녔고, 그 애가 말을 많이 하다보면 늘 그 물을 함께 마셨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육지에 나와서는 평소와 달리 뻣뻣한 나의 행동을 그 애가 이상하게 여겼지만, 긴 시간 육지에 오지 않아서 긴장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그 애의 마음을 듣고 나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 그 애는 나의 마음을 알 방법이 내가 하는 말 뿐이었기 때문에,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약을 먹인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약을 먹고도 그 애는 전혀 변화가 없었고, 불편한 기색도 없었다. 그제야 사람을 해치기 위한 약이 아니라는 마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대가로 나는 그 애와의 만남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게 바다에 비밀이 사라졌을 때, 내가 변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는 장소를 찾는 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 애는 시간만 나면 위험한 절벽과 사람이 없는 바다를 쏘다녔고, 그러다가 몇 번이나 바다로 떨어져 사고가 날 뻔한 것을 내가 발견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이대로는 그 애도 나도 서로의 세상으로 돌아간 진짜 에릭 왕자님과 에리얼 공주님의 역사를 반복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돌고래 가족이 나를 위한 해결책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돌고래 가족과 함께 다니면서 내가 변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심지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애를 볼 수 있는 바다는 점점 늘어났다. 회색앵무는 나와 그 애 사이를 오가느라 다시 바빠졌고, 내게 좋은 것들을 하도 받아먹어서 앵무는 살이 포동포동하게 쪘다. 사람들이 많은 바닷가에서 헤엄치고 있어도 사람들은 내 꼬리와 돌고래 가족의 꼬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환호했다. 그 애는 나만큼이나 좋아하면서 나를 만나러 자주 바다로 나오곤 했다. 사람들을 피해 어두운 시간에 만났던 것과 달리 밝은 아침에 해수욕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어도 사람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햇빛을 찬란하게 받는 그 애의 미소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도 행복했다. 그렇게 나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애는 더 이상 ‘그 애’로 불릴 수 없는 어른이 되어갔다. 그 애는 점점 내 부름에 답하기가 어려워졌고, 처음보다도 훨씬 오래 기다려야만 그 빛나는 미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보름이 한 번, 두 번 지나가도록 그 애는 바다는커녕 바다 근처 마을에도 오기 어려운 일이 생기곤 했다.
어쩌면 마녀의 물약이 서서히 나를 잊게 만드는 마법인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마녀는 내가 원한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어서,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런 마법이 있는 약이라고 해도, 사실 나는 그걸 되돌릴 방법도 능력도 없는 무력한 일개 인어일 뿐이었다. 그 애는 점점 지친 표정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그즈음부터는 그 애의 마음도 잘 들리지 않게 되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내가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바다에는 살아가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참으면서 하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내가 마녀를 찾아 그 돈이라는 것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서라도 그 애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다. 그 애는 시간이 흐를수록 말이 없어졌고, 더 이상 회색앵무가 찾아가던 바닷가 마을 시골집에 살지 않았다. 어떤 새도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회색앵무도 더는 내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나는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최선을 다해 그 애가 사는 곳 근처까지 찾아가곤 했다. 여러 번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먼 육지까지 그 애를 찾으러 가도, 그 애는 ‘회사’에 있는 밤이 더 많아서 아무리 기다려도 만나기가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그 애를 만나지 못한 채로 몇 년이 흘렀다. 거의 모든 날이 고래 옆에 모래가 된 것처럼 죽은 듯이 누워 지내는 날들이었다.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방법은 몰랐지만 가슴이 너무 아파서 그렇게 모래처럼 누워만 있는 것이 좋았다.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나를 정찰병이 글린 공주님께 데려다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 물약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에리얼 공주님은 바보가 아니었고, 에리얼 공주님을 사랑했던 왕족들도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해 잘 아는 존재들이 왕실에 비밀 기록을 남겨두었다고 했다. 인간은 그 애처럼 어린 소녀 시절에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쉽게 마음을 읽을 수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마음이 닫히고 어린 시절에 믿었던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글린 공주님은 넋이 나간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 애가 앞으로 나를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글린 공주님은 나를 안쓰러워하며, 내게 물약의 역할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건 그 애가 어른이 되어 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나에 대한 기억을 없애주는 약이라고 했다. 결국 그 애가 좀 더 행복하게 자기가 속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는 약이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못해 가슴이 저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그라드는 것처럼 아팠다. 바다 속에서도 내 눈에서 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된 순간이었다. 그래도 나만큼 아프지 않고, 그 애가 자기 세상에서 행복하게 돌아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린 공주님은 놀라면서도 미안해했고, 이제 더이상 소용도 없는 보름의 내 변신 능력을 쓰면서 멀리서 그 애를 지키며 살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처음 그 애를 만났던 곳, 이제는 유명한 해수욕장이 되어버린 그 바다였다.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돌고래 가족과 함께 인간들이 많은 바닷가에 가서 그 애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찾더라도 그 애는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할 테고, 그저 돌고래 꼬리라고 생각하며 환호할 테지만 그렇게라도 그 애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 마지막 짧은 만남의 순간, 햇빛은 바다의 맨 위 파도에 부서져 빛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바닷가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맑은 하늘만큼이나 깊은 바다도 푸르게 빛났고, 어쩐지 평소보다도 훨씬 백사장 근처까지 헤엄치고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바다를 바로 보는 어느 건물 테라스에 나를 똑바로 보는 시선이 느껴져 나도 고개를 수면 위로 들어 위를 보았다. 거기 그 애가 있었다. 돌고래 가족들이 좀 더 깊은 바다에서 위험하니 돌아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애가 나를 완전히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 애는 나를 보고 놀라는 것 같았다. 그 애의 생각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을 거라고 마녀도, 글린 공주님도 말했지만 내가 그날 들었던 것은 그 애 목소리가 분명했다. 그 애는 이렇게 생각했다.
“설마, 진짜 인어는 아니겠지? 맨날 꾸던 그 꿈속에서 보던 바다랑 똑같은 곳인데. 돌고래겠지? 사람인가? 지금 이걸 나만 보고 있는 건가”
나는 그 때 두 번째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이런 것이었구나 생각하며, 조금 성숙하게 변했지만 너무도 보고 싶던 그 애의 얼굴을 잠시 동안 응시했다. 더 이상 나를 두고 볼 수 없던 돌고래 가족이 직접 나를 깊은 바다로 데리고 가는 그 순간, 나는 그 애의 눈에도 눈물이 반짝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