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작은 방, 따뜻하고 빨간 불이 내리쬐는 여섯 개의 알에서 시작합니다. 여섯 마리의 작은 새들이 눈을 뜨고 몸을 꿈틀 거리며 알을 깨고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하고 아늑한 그 방의 유리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중 다섯 마리는 보송보송한 노란 털옷과 핑크색 주둥이를 뽐내며 얼른 유리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눈앞으로 모였습니다. 그렇지만 한 마리는 회색 빛이 도는 털옷과 까만 주둥이를 가지고 있었고, 어색하게 유리 너머의 커다란 눈을 경계했습니다. 이내 유리문이 열리고, 다섯 마리의 노란 옷을 입은 아기 오리들은 저마다 처음 보는 커다란 존재에게 "엄마!"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유리문을 열어준 사람은 손으로 한 마리씩 막 태어난 새들을 안아보고, 천천히 검사해보더니 회색 아기새를 보고 크게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여섯 마리의 아기새들은 빨간 불이 들어오는 작은 방에서 자고, 유리문이 열리면 나와서 밥을 먹기도 하며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회색 아기새는 다른 새들처럼 밥을 주는 커다란 사람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가 없었고 점점 다섯 오리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곧 커다란 사람은 여섯 마리의 아기 새를 작은 상자에 담아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얕은 물가에 식물들이 자라는 곳이었는데, 처음 밟아보는 흙과 물 냄새에 여섯 마리의 새들은 모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여섯 마리 아기새들은 물 위로 올라가서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풀숲 사이로 장난을 치며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좋은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엄마'를 믿지 못하는 회색 아기새를 이상하게 생각하던 첫째가 회색 아기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엄마는 우리에게 밥을 주고, 매일 우리를 재밌게 놀게 해 주는데 너는 왜 엄마를 무서워하는 거야?"
회색 아기새는 순진하게도 솔직하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날개도 없고, 우리가 하는 말도 못 알아듣잖아. 나는 그 사람이 무서워."
회색 아기새가 그렇게 대답하자 첫째 노란 새는 회색 아기새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둘째, 셋째 노란 새도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조용한 넷째 노란 새만은 회색 아기새와 함께 밥을 먹고, 회색 아기새와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회색 아기새는 몸이 빠르게 커졌고, 물놀이를 갈 때마다 식물들 사이를 헤쳐 나가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노란 새들은 혀를 끌끌 찼고, 회색 아기새가 식물을 쓰러뜨릴까 봐 바깥쪽 물가에서만 벌레를 잡아먹게 했습니다. 넷째 노란 새는 그런 회색 아기새를 위로하듯 근처에서 회색 아기새를 지켜보았습니다.
햇빛이 뜨겁게 내리쬐던 어느 날, 여섯 마리의 아기새들이 놀고 있는 물가 근처 나무에 참새들이 놀러 왔습니다. 참새들은 노란 새 세 마리가 식물들 사이로 자취를 감추자 크게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다른 아이들이 왔어. 올해는 며칠이나 더 저 애들이 저 논에 있겠니?"
"글쎄, 작년에도 아이들의 몸집이 조금 커지니까 바로 우리에 넣어서 팔아버리지 않았어?"
"맞아, 불쌍한 줄도 모르고 이용만 당하는 아이들이 참 가여워."
몸집이 커져서 벌레가 많은 수풀 사이로 들어가지 못했던 회색 아기새만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불쌍하다니?"
"우리는 작년에도 노란 아기새들이 저 논에서 벌레를 잡는 걸 봤어. 인간들은 노란 아기새들이 어렸을 때는 논에서 벌레를 잡도록 하고, 다 크면 철조망 우리에 넣어서 팔아버려. 그리고 다음 해엔 또 새로운 아기새들을 데려온다고. 다 크기 전에 도망가야 해. 날개에 힘이 생기도록 매일 날 수 있게 연습해야 해. 기회를 봐서 저기 보이는 큰 나무 너머 호수까지 있는 힘껏 날아가렴. 거기엔 너희보다 큰 새들이 많이 살고 있어."
회색 아기새는 참새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노란 새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직 넷째 노란 새만이 회색 아기새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넷째 노란 새는 회색 아기새가 집에서 몰래 날개 운동을 하고 나는 연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노란 새는 회색 아기새가 미련하게 날개를 퍼덕거린다며 비웃었지만, 넷째 노란 새는 몰래 회색 아기새를 따라 날개에 힘을 줘서 움직여보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노란 새들도 조금씩 몸이 커졌고, 갈수록 벼 사이로 날렵하게 지나기가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회색 아기새는 몸에서 회색 털이 빠지고 하얗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노란 새들의 엄마는 처음보다 회색 아기새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노란 아기새들이 논에서 놀도록 할 때 회색 아기새는 참새가 말했던 큰 나무 근처에 있는 연못에서 놀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회색 아기새는 이제 날개도 훨씬 커졌고, 참새들의 말처럼 나무 너머로 날아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떠나기로 결심한 전날 밤, 회색 아기새는 넷째 노란 새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했습니다. 넷째는 오래 고민했지만, 다음 날 회색 아기새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미안해. 나는 너보다 날개도 작고 힘도 작아서 너랑 같이 날아갈 수 없어. 그리고 나는 아직 엄마를 믿어."
회색 아기새는 넷째 노란 새와 함께 떠날 수 없어서 슬펐지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색 아기새는 연못으로 가서 그들을 데려온 노란 새들의 엄마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회색 아기새는 힘차게 날개를 움직여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나무 근처까지, 다음에는 큰 나무 위의 가지까지밖에 가지 못했지만, 회색 아기새를 잡으러 뛰어오는 사람을 보자 회색 아기새는 있는 힘껏 날개를 움직였습니다. 좀 더 높은 하늘로 날아가면서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을 받자, 논에 있는 노란 새들은 작은 점처럼 보였고, 참새들이 말했던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색 아기새는 처음 느끼는 바람과 신선한 공기에 몸을 맡겼습니다. 이제는 그동안 함께 지냈던 넷째도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크고 푸르게 빛나는 호수가 가까이 보이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도착한 호수에는 크고 하얀 깃털과 검은 눈, 주황색 부리를 가진 멋진 새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그들 근처까지 날아간 회색 아기새는 그만 호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새들이 깜짝 놀라며 회색 아기새 근처로 왔습니다. 가까스로 머리를 내민 회색 아기새는 멋진 새들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어서 조금 부끄럽고 놀랐습니다.
"아가야, 너는 어디서 왔니? 엄마는 어디 있니?"
그렇게 말하는 커다란 하얀 새 뒤로 회색 아기새와 똑같이 생긴 작은 새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회색 아기새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했고, 자기가 백조이고 함께 지냈던 노란 새들은 오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색 아기새는 어른 백조들과 함께 지내면서 우아하게 헤엄치는 법, 물고기를 잡는 법, 멀리 날아가는 법을 배웠고 친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점점 아기새의 몸은 멋진 흰 털로 덮이고, 눈가도 멋진 어른 새들처럼 까만색으로 변했습니다. 따돌림을 당하던 아기새는 어엿한 어른 백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마을로 사냥을 가기로 했던 백조가 높은 하늘을 날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색 아기새야, 어디 있니? 너를 믿지 못해서 미안해! 듣고 있다면 제발 도와줘!"
그건 넷째 노란 새의 외침이었습니다. 백조는 넷째 오리의 소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오리는 다른 오리들과 함께 갇혀서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습니다.
"넷째야, 나야! 무슨 일이니?"
넷째 오리는 회색 아기새였던 백조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우리를 팔았어! 우리는 곧 죽게 될 거야!"
백조는 우선 오리들을 실은 차가 어딘가에 멈출 때까지 오리들을 따라갔습니다. 드디어 차가 멈추고, 인간이 내려서 사라졌습니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던 백조는 드디어 오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놀랍도록 멋지게 변한 백조의 모습에 첫째, 둘째, 셋째 오리는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쭈뼛거렸습니다.
"회색 아기새야, 너는 정말 멋진 새가 되었구나! 그때 너를 믿었어야 했는데!"
백조는 조용히 밖에 걸린 걸쇠를 부리로 조심스레 풀어냈습니다. 문이 열리자, 오리들이 하나씩 바닥으로 내려왔습니다. 백조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오리들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날 따라서 날아가야 해. 여긴 위험해."
철없는 첫째, 둘째, 셋째는 그 백조가 어린 시절 자기들이 무시했던 회색 아기새인 것을 기억해내고는 날아서는 도망갈 수 없다며 꽥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인간들이 얼른 오리들을 확인하러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백조는 얼른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백조가 나는 방법을 연습할 때마다 비웃기만 했던 세 오리는 어떻게 따라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백조는 인간의 손을 피해 날아올랐고, 더 이상 친구들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백조가 조금 떨어진 나무까지 날아간 후 뒤를 돌아보자, 넷째 오리가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며 백조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백조는 얼른 넷째 오리에게 날아가 크게 소리쳤습니다.
"넷째 오리야, 힘내! 저기 보이는 우리 호수까지만 가면 돼!"
오리와 백조는 빨간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호수까지 날아갔습니다. 처음 백조가 호수에 도착했을 때처럼, 넷째 오리는 호수에 머리부터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새들은 조금 놀랐을 뿐, 곧 다른 오리들이 다가와 넷째 오리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넷째 오리는 더 이상 노란 새가 아니라 백조처럼 하얀색의 몸을 가졌고, 호수에 살던 오리들은 갈색의 점박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몸의 색깔이 달라도 호수의 오리들은 넷째 오리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백조와 호수의 하얀 오리는 닮았지만 조금씩 다른 백조들과, 오리들과 어울려 살아가며 평화롭게 살아갔습니다. 백조와 오리는 노을을 보면서 가끔 서로를 토닥이며 생각에 잠기곤 했지만, 호수의 모든 새들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