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를 가사로 듣는다. 가사말이 좋으면 별로였던 노래도 좋게 보인다. 사람들의 입안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가사들을 만들고 싶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20대 때는 어떤 루트로 작사가가 되는지 알지 못했고, 30대 때는 일과 육아가 너무 바빠서 내 꿈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40대가 되고 나니, 이제 일도 육아도 짬밥이 생기나 보다.
내 가슴 저 안쪽에서 잊고 있던 꿈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그 꿈을 신기루가 아닌 진짜 나만의 오아시스로 만들어 버리자고 결심했다
스무 살 언저리에도 작사가라는 꿈에 닿기 위해 꿈틀댔던 적이 있다. '작사가가 되고 싶은 모임'(?) 비슷한 이름의 daum카페에서 활동했었다. 자신이 쓴 작사를 올리고 댓글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이었는데 모두 그런 식으로 작사가가 되고 싶은 갈망을 표출했다.
그때, 카페에 현직 작사가라는 사람이 그룹 과외를 모집했다. 지금은 프로 의심러지만 당시에 얼마나 순진했는지... 20만 원 가까운 돈을 내고 수강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내 월급이 60만 원;;)
갔더니 작사하는 법은 안 알려주고 여성 작사가에 대한 찌라시 같은 이야기만 잔뜩 해주었다. 자신이 유명 곡을 받지 못하는 것도 여성 작사가들 때문이라는 찌질이, 머저리, 거머리, 겉절이 같은 놈.
지금 같으면 K아줌마의 본 때를 보여주었을 텐데. 그땐 뭘 해도 어버버 대고 있을 때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심정으로 관두었다. 시작이 좀 거시기해서 그런지 작사를 가르친다는 곳은 '개사기'라는 이미지 같은 게 생겼다.
어떤 알고리즘적 인연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최근 유튜브에서 MBC 김수지 아나운서가 작사 일을 겸하고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보게 됐다.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아주 편안하게 시청 중이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벌떡' 반동을 일으켜 자리를 고쳐 앉았다. 김수지 아나운서의 말을 한마디도 빼먹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어떻게 작사가가 될 수 있었죠?"
내 마음의 다급한 질문을 유재석이 대신해 주었다.
"2년 정도 학원을 다녔어요. 학원으로 들어오는 데모들을 수강생들은 다 작업을 하거든요."
작사 학원?!!
학원을 통해 데모곡을 받고 데뷔까지 했다는 증언이 나에겐 신의 존재를 알리는 간증처럼 느껴졌다. 구원의 빛이 내 머리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신이시여, 드디어 제게 길을 열어주시나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