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G Mar 06. 2024

작사 학원 첫 수업 썰! 풉니다.

우리 애들은 학원 가는 시간만 되면 몸을 배배 꼬며 없던 병도 만들어 내던데. 마흔 살 줌마는, 오매불망 학원 가는 날만 기다린다.


우리 집은 경기도 일산, 학원은 서울 강남. 집에서 학원까지 넉넉잡아 1시간 30분이 걸린다. 게다가 토요일 오전 반이라 평소처럼 늑장을 부리다간 지각을 할 수도 있다. 강남. 웬만해선 가지 않는 내겐 달나라 같은 곳이다. 강남 멋쟁이, 깍쟁이들한테 기가 꺾일까 봐 괜스레 걱정도 된다. 친구들이 코 베어 간다고 꼭 마스크를 쓰란다.


고대하던 첫 등원 날, 남편이 강남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태워준다고 했다. 주말 오전에 강남행이라니.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무의미하게 유튜브 숏츠나 인스타를 둘러보다 점심으로 라면이나 먹을까 하며 배를 북북 긁어대던 내가  MZ 작사 지망생들에게 밀리지 않게 한껏 꾸미고 한강 대로를 달리다니. 이렇게 인생은 마음먹은 순간, 조금씩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예상보다 학원에 일찍 도착했다. 자차로 움직이니 1시간 이면 충분하구나. 강남이라고는 하나 빌라촌과 음식점이 밀집된 곳이라 위화감보단 친숙함이 더 들었다. 보기엔 이래 봬도 땅값, 집값이 어마 무시하겠지? 에잇 갑자기 열불이 난다. 작사가로 이름을 떨쳐 강남에 내 집을 갖는 상상을 하며 학원 문을 열었다.  


"오늘 첫 수업인데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 이쪽으로 오세요. 매번 이곳에서 수업하시게 될 거예요."


둘러보니 내가 1등으로 도착한 학원생이다. 안내 직원도 친절하고 학원 분위기도 화사한 게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 인테리어에 간결한 로고까지.  


"사기는 아닌 것 같아 여보"


걱정하는 남편에게 찍은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에 앉을까 하다가 맨 앞자리로 자리를 잡았다. 학교 다닐 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내 자리였는데.


하나 둘 사람들이 강의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자 9명에 남자 1명. 총 10명이 나의 작사 동기생 들이다. 나이대를 짐작해 보니 대부분 20대, 30대인 것 같다. 나도 30대 같은 40대처럼 보이지 않을까? 우겨 보지 뭐


초보반 선생님은 남자분이다. 편안한 캐주얼 차림으로 텀블러와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 얄상한 예민 보스를 상상했는데 후덕한 푸우 스타일이라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에 아이 사진이 잔뜩 붙여져 있다. 부모가 된 사람은 책임감 있게 일한다. 왠지 기대가 된다.


정각에 수업이 시작됐다.  눈에 레이저를 켜고 초 집중했다. 작사의 기초이론부터 실제 작사 의뢰가 오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데 흥미롭고 재밌었다. 수업 중간쯤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자기소개는 어딘가 모르게 뻘쭘한 데가 있다. 나를 나라고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가.


선생님은 말했다. 어디에 살고, 몇 살이고는 말 안 해도 되고, 현재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가사를 쓰고 싶은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라고 했다.  앞자리 순으로 할까 봐 가슴이 콩닥댔다. 다행히 출석부 순이었다. 대학원생, 회사원, 연예부 기자, 패션 에디터, 상당히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작사가를 꿈꾸고 있었다. 모두 내 아들 딸, 사촌 동생 같고. 경쟁자라기보다 우쭈쭈 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내 차례.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아이들에게 르세라핌과 엔시티 노래를 작사하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임영웅 씨 노래를 작사하고 싶습니다. 트로트엔 영어가 별로 없잖아요"


사람들이 키득댔다. 그 때 선생님이 말했다.


"하하, 트로트는 제 꿈이기도 해요. 많은 현직 작사가들의 꿈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넘사벽이랍니다."

"네? 왜죠?"

"그 이유는 말이죠..."


#그이유는다음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