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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G May 16. 2024

매주 돈 주고 욕을 먹는 사람

첫째가 다니던 수학 학원이 있었다. 대기가 있을 만큼 동네에서 제법 소문난 학원이었다. 긴 대기 끝에 아이도 그 학원에 다니게 됐다.  그런데 아이는 한 달도 채 되지 못해서 학원을 관뒀다.


경직된 수업 분위기와 빡센 과제 양도 이유였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수학에 주눅 들어 있는 아이였는데 말끝마다 "너는 그것도 못하냐?""도대체 뭘 배운 거냐?""다른 애들 이쯤은 거뜬히 한다" 선생님은 아이의 자존심을 마구 긁어댔다.   


날이 갈수록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싫어하던 수학을 널덜 머리를 내며 더 싫어하게 됐다. 당시에 나는 심약한 아이를 탓했다. 견뎌보라고 달래도 보고, 그 정도의 비난은 감수해야 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수학은 아이의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되었다.


뒤늦게 아이를 이해하게 됐다. 그 좌절과 절망, 창피함, 우울, 두려움... 이러다 영영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작사 학원 4개월 차. 지금 내가 아이가 느꼈을 딱 그 심정을 느끼고 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다. 기초반 3개 월은 왠지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의 기간이었다. 그런데 중급반에 오르자 왠지 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이 닥쳤다.



중급반은 매주 가이드 과제에 대한 합평으로 이루어진다. 굉장히 진지하고 자비가 없다. 한 선생님은 대놓고 자신은 칭찬을 하지 않겠다고 선포를 했다.  매번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작사가 신랄하게 까인다. 수업이 끝나고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돌아온 나를 보며 남편은 "매주 돈을 내고 욕을 먹네"라며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의 나이는 핸디캡이 됐다. 연륜이 장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전혀 그 반대다. 요즘 K 팝 트렌드를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는 건지, 감은 있는 건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머리를 스친다.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점차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형으로 바뀌고 있다. 두렵고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저런 가사 발로도 쓰겠다고 한 과거의 나의 입을 꿰매고 싶다. 절대 쓸 수 없다. 발은커녕, 양손, 아니 남의 손까지 합세해도 못 쓸 것만 같다.


나는 과연 작사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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