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를로비바리에 다녀왔습니다
프라하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온천의 도시 까를로비 바리에 간다.
이곳의 온천은 마시는 온천수다.
까를로비 바리에 도착해서 하고 싶은 건 컵을 사는 거다. 온천수를 마시기 위한 컵인데 약간 납작하게 생긴 게 주로 많고 손잡이가 빨대다. 라젠스케 포하르(Lazenske Pohar)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컵. 이 도시에 도착하면 이 컵을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다. 한 번 가보시라.
까를로비 바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하고 두 팔 벌려 반겨주는 건 벌들이다. 유럽에는 벌이 많다.(유럽이라지만 가본 곳은 파리, 프라하 이렇게 두 곳) 버스에서 내린 나와 동생은 배가 고파 피자와 파스타를 먹는다. 그런데 벌들이 무섭게 같이 먹자 달려든다. 어째 나보다 벌이 더 잘 먹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벌 때문에 요란을 떠는 건 나와 동생뿐. 옆자리 테이블에도 벌이 잔뜩이지만 다들 소-쿨하게 식사 중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게 파스타인지 벌인지 모르겠는 식사를 마치고 라젠스케 포하르를 사러 간다.
컵을 파는 상점이 줄지어져 있다. 한 군데에 서서 본다. 시원한 블루가 새겨진 컵을 고른다. 꽃과 나비가 고전적인 느낌으로 그려진 게 마음에 든다.
컵을 샀으니 이제 몸에 좋은 온천수가 솟는 장소로 간다. 컵에 담는다. 마신다. 으. 쇠맛입니다.
손잡이 빨대에 입을 대고 호록하니까 뜨듯한 물이 쪽 나온다.
온천수의 쇠맛으로 텁텁함이 차오를 즈음 프라하로 돌아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오른다.
8월의 버스 안은 훅훅 쪄지고 있다.
시동이 걸리고 출발하면 에어컨 켜주겠지.
침착한 유럽사람들(로 추정되는) 틈에서 나도 한껏 차분하게 앉아있다. 드디어 버스 안이 승객으로 가득 차고 출발. 그런데 에어컨은 가동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싶지만 모두 가만히 쪄지고 있다.
내 자리는 버스 맨 뒤. 불타는 엔진이 내 뒤통수에 들러붙은 기분이다. 열리지 않는 창문으로는 뜨거운 햇빛이 강렬하게 들이친다. 이대로 좀 더 가다가는 팔리지 못해 장시간 열에 방치된 전기통닭구이마냥 말라버릴 거 같다. 예매가 늦어 떨어져 앉은 동생의 뒤통수를 찾아보니 역시나 김을 뿜고 있다.
그런데 우리 빼고 모두 차분하다. 옆 옆자리 사람은 핫초코를 주문하더니 홀짝인다. 기절할 광경.
버스에 같이 타고 있는 안내인에게 대체 왜 에어컨을 안 틀어주냐 물으려는데 에어컨이 고장 났다 한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달린다. 죽음의 맛을 보았다고나 할까. 비몽사몽한 상태다. 침착한 유럽인들도 이제 더 이상은 힘든 듯 다들 어퓨 어퓨 하며 혀를 내두른다. 그때다. 살 궁리를 하던 사람들의 눈이 한 곳으로 쏠린다. 버스 천장에 손잡이가 달린 창문이 있다!
캔 유 오픈 더 도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버스 안내인에게 소리친다.
뭔가 의문스러운 표정의 안내인은 그래도 팔을 뻗어 창문열기를 시도해 준다.
하늘이시여!
열린다. 달리는 버스 안으로 숨구멍이 열린다. 버스 속 익어가던 사람들은 드디어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한숨을 쏟아낸다. 나는 눈물도 찔금 흘린 듯하다.
바람과 함께 한 시간 넘게 더 달려 프라하로 돌아온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다리에 힘이 없다. 나와 동생은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참착해지고 만다. 휴. 살았다. 우리 침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