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서
그날 이후, 우리는 첫 데이트를 했다. 오늘부터는 애프터가 아닌 정식 데이트다!
첫 번째 데이트 장소는 그가 자취하는 동네였다. 인근에는 이국적인 풍경의 시장이 하나 있었는데 이 동네의 관광명소 중 하나였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동안 그가 항상 우리 동네에 온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제는 내가 갈 차례라고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고 갔다. 가는 길에 공기정화 식물이 심어진 작은 화분을 하나 구매했다. 그래도 혼자 사는 남자 집 방문은 처음인데 빈 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역에 내렸다. 저 멀리 개찰구 앞에서 기다리고 k의 모습이 보였다. 확실히 패션센스가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요란한 무늬가 앞뒤로 그려져 있는 감색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래, 앞으로 내가 당신의 전담 코디네이터가 되어주면 되니까.
날이 더웠다. 나는 통이 큰 청바지에 딱 붙는 흰색 PK셔츠를 넣어 입었고 머리는 디스코 머리로 땄다. 과하지는 않지만 약간 발랄한 20대 초중반의 느낌으로 꾸며보았다. 그는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뜻밖의 선물에 놀란 눈치다.
햇빛이 뜨거워 일단 투썸플레이스로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다. 그러나 비싼 커피값 대비 가게는 시원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더위를 식힐 겸 그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혼자 사는 남자 집에 방문하는 건 처음이다. 긴장됐다.
좁은 원룸이었다. 컴퓨터 모니터만 3대. 작업하고 있던 흔적이 역력했다.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구석구석 눈알을 굴리며 살폈다. 생각보다 매우 깔끔하게 해 놓고 사는 것 같았다. 아님, 급하게 정리해 둔 걸까?
그는 현관 앞에서 줄 게 있다며 주섬거렸다. 그리고는 예쁜 꽃다발과 수제 초콜릿을 두 손으로 건넸다. 그래도 정식 고백은 본인이 해야 한다며, 오늘부터 '진짜 1일'을 선포한다.
단언컨대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수줍게 꽃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내 기준, 이성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 중 하나였다.
나는 활짝 웃으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그는 악수가 아니라 안아줘야 한다면서, 나를 살포시 끌어당겨 안았다. 두근.
남자의 원룸에는 꽃향기와 달달한 초콜릿향 설렘이 가득 찼다. 우리는 말없이 바라보며 씩 웃었다.
좁은 공간. 앉을 곳도 마땅치 않은 낯선 원룸은 순식간에 봉평 메밀밭으로 바뀌었다. 메밀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의 눈은 반짝거렸고 심장은 덜컹거렸다. 둘 만의 세상.
너무 오글거렸는지 마시다 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얼음 녹는 소리로 헛기침을 한다.
"엣 헴. 거기 두 사람~ 적당히 좀 하시지?"
-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