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술은 구름 맛

젊은 남녀의 수줍은 스킨십

by 조조

시장을 둘러보는 데이트를 했다. 주말이라 사람은 북적했다. 골목골목을 다닐 때마다 그는 요리조리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를 찻길 안 쪽으로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는데, 모순적이게도 과거 연애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소한 것에 감동을 받는, 어쩌면 금사빠 스타일이다. 과거에 만난 남자와의 연애를 결심하게 된 계기도 아주 작은 진심 때문이었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L과 나란히 걷는 중이었다. 당시의 그도 둘리처럼 요리조리 움직이며 나를 안쪽으로 걷게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싫어하는 담배 향이 물씬 났다. 누군가 걸어가면서 담배를 폈기 때문이다. 그는 들고 있던 전단지로 열심히 부채질을 해댔다. 풉. 그런다고 담배 냄새가 날아가나?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아주 하찮은 제스처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인지가 드러나는 아주 사랑스러운 행위였다. 이 여자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적극적인 어필 아닌가. 결국 나는 그 손짓과 발짓에 마음을 열었다.


K의 '요리조리'에서 그때의 순수함이 떠올랐다. 사실 내가 바깥쪽으로 걷는다고 해서 차에 치이거나 하는 일은 확률적으로 낮다. 하지만 '혹시라도' 모를 만약을 대비해서 다쳐도 자기가 다치겠다는 남자들의 배려는 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판 모르던 남이 이제는 나를 보호해주겠다고 자진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 이 얼마나 고마운가.


따지고 보면 많은 연인관계에서 남자들이 식당이나 카페에서 여자친구를 편안한 쿠션자리에 앉히는 것, 진동벨이 울리면 커피를 가지러 움직이는 일, 안전하게 집에 바래다주는 일 등등 불편과 비효율을 자처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조금 더 희생할 수 있다는 마음. 남녀 불문 '사랑'이 선물하는 아름다움 같다.


단상을 접고, 우리는 양꼬치 집으로 갔다. 양꼬치 앤 칭다오! 하지만 그는 나를 바래다줘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양꼬치를 앞에 두고 맥주를 거부할 수 있는가. 나만 마시기엔 너무 미안했고, 솔직히 거부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살짝 꼬셨다. 딱 반 잔만 마시라고. 그리고 술 깰 때까지 시간 지나고 가면 되지 않냐고.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K기에 그는 정말 딱 반잔만 마셨다. 반잔 마시고도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 카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자취방으로 갔다. 두근.


어쩌면 이 순간은 작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립보다 더 긴장되는 순간일지 모른다. 몸속에는 알코올이 흐르고 그 상태로 젊은 두 남녀가 혼자 사는 자취방에 들어갔으니!


그렇고 그런 음흉한 전개를 상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도 나름의 철칙이 있다. 오늘부터 1일 인데 첫날부터 그럴 수는 없다. 진도가 빠르면 재미가 없다.


우리는 술만 깨고 가자며, 앉아서 넷플릭스로 D.P를 시청했다. 자극적인 소재인데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침 꼴깍거리는 소리뿐. 그는 내 어깨에 스르르 기대서 모니터를 본다. 내 어깨 아래 그의 정수리가 있다. 아주 전통적인, 과거 미디어에서 그려지던 남녀의 풍경과는 정반대의 모습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티비를 봤다.


점차 노곤해진 우리는 누워서 보기 시작했다. 서로의 얼굴이 굉장히 밀착해 있었지만 키스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그의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가. 점점 얼굴이 가까워져 갔다. 내가 남자였다면 당장이라도 뽀뽀를 갈겼을 것 같은 상황인데 그는 굉장히 절제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 너무 잔인한가?


D.P는 잊어버린 지 오래. 우리는 마주 보면서 움찔움찔 거리는 안면근육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다 지친 내가 살짝 눈을 감았다.


그때, 갑자기 엄청 푹신푹신하고 말랑한 구름 같은 게 잠시 입술에 닿았다가 사라졌다. 내가 눈을 감아서 용기를 얻은 걸까? 아니면 뽀뽀해도 된다는 신호로 본 것일까? 아님 맥주 반잔의 효과였을까?


처음 느껴보는 촉감이었다. 남자를 많이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촉촉하고 도톰하고 푹신한 입술은 처음이었다. 엄청나게 크고 부드럽고, 따뜻한 구름은 같은 것이 내 입술을 이불처럼 덮는 기분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우리는 금세 다시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젊은 남녀의 스킨십에 후진 따위는 없다. 속도조절만 있을 뿐. 우리는 자연스럽게 뽀뽀를 이어갔다. <건축학개론> 납득이가 열의를 다해 표현하는 키스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혀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주 귀여운 뽀뽀, 하지만 좀 긴 뽀뽀였다.


구름 같은 입술 외에 어떠한 터치도 없었다. 양치를 하지도 않았는데, 양고기 냄새 따위는 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와 그는 성인군자와 같은 마음으로 건전한(?) '구름 뽀뽀'를 이어갔다. 입술을 맞닿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치 절정에 이른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 - 너무 오랜만의 스킨십이어서 그런가. 어째 내가 더 밝히는 기분이다.


-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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