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1일

가로등 불빛 아래

by 조조

맛있는 음식과 와인 알코올이 선물한 약간의 기분 좋은 취기. 기분 좋게 가게를 나왔다. 배가 너무 불러 우리는 걸어서 한강에 가기로 했다. 거리는 약간 있었지만, 날씨도 기분도 걷기엔 최적이었다.


k는 어김없는 크고 네모난 브라운색 서류가방을 메고 왔다. 오늘도 그 안에는 노트북이 들었을 것이고 무거워 보였다. 그는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었고, 그 오른쪽으로는 내가 나란히 걸었다. 우리 사이에 가방이 껴 있었다. 그러자 k는 반대편으로 이동해 걷거나 가방의 위치를 옮겨댔다. 결코 가방 따위가 우리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그의 가방을 따돌리며 나란히 걸었다. 미묘하게 손끝이 스쳤지만 결코 손을 잡지는 않았다. 지난번 계곡에서의 과감함은 어디로 간 걸까? 백허그에 손도 잡았던 진도는 1주일 만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부끄러웠고 콩닥거렸다.


"오른쪽에 가방을 메었으니까, 여기로 옮겨야지.. ㅎㅎ"


나는 혼잣말을 하듯, 요리조리 위치를 옮겨대는 k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히죽댔다. 그를 귀여운 눈빛으로 빤히 올려다보다 나는 덥석, k의 큰 손을 잡았다. 그는 흠칫 놀라더니 금세 입이 귀에 걸린다. 그리고는 내 손을 보다 꽉 잡았다. 그가 방금 심쿵했다는 게 얼굴에서 그려졌다.


우리는 손에 땀이 나도록 잡고 정처 없이 걸었다. 두근거리는 침묵뿐이었다. 조용히, 발길 닿는 대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지만 이상하게 광대는 저려왔다. 마스크 사이로 두 청춘의 광대가 삐쭉 나왔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참 나원.


감각에만 의존하며 걷다 보니 살짝 길을 잃었다. 노량진 인근의 골목길로 들어서게 됐다. 너무 많이 걸은 탓에 드디어 손 말고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 앉기로 했다. 골목 사이에 덩그러니 있는 레트로 느낌의 동네슈퍼 앞 마루. 마치 90년대 슈퍼와 같은 모습이다. 어르신들이 부채질하면서 쉴 것 같은, 장판지가 깔려 있는 널따란 마루였다. 우리는 그 위에 걸터앉았다. 시간은 9시 40분. 슈퍼 문은 닫혀있었고 그 마루를 은은한 주황빛 가로등이 비추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산 보리차만 꼴깍꼴깍 마셔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각을 잡는다.


"보통 소개팅 같은 거 하면.. 3번 정도 만나면 뭐,, 만나고... 그런다고들 하는데...."


- "응?"


"그 우리가.. 4번 정도 만났잖아.. 어.. 혹시 막 기대하거나 그랬거나...."


- "아~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어?"


k는 격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 아니, 나는 그 말이 아니라... 그.. 그러니까.. 우리가...!@$!@@#"


당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그가 혼란스러운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의 머릿속이 지금 새하얗다는 것. 엄청나게 엉켜있다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정리가 안되어서 고장 난 로봇 같달까. 뚝딱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뭔 말인지도 모를 말들을 절면서 하고 있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 나는, 그의 말을 끊고 치고 들어갔다.


- "우리 사귈래? :)"


갑자기 토끼눈처럼 동그레진 그의 눈. 기다렸다는 듯,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 끄덕끄덕 빠르게 흔들어 댄다. 마치 어린아이가 갖고 싶은 선물 앞에서 원했던 게 그거였다며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어 대듯.


- "그럼 우리 오늘부터 1일인 건가? 내가 고백한 거다 ~"

빵 터진 나는 그를 놀려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원래 내일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꽃다발도 사뒀는데... 아... 이게 아닌데.."


- "아~ 그래? 그럼 하루만 더 기다릴 걸 그랬네 ㅋㅋ"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의 어깨에 살포시 내 머리를 기댔다. 그의 경직된 어깨 근육이 느껴졌다. 고요한 골목, 촌스러운 풍경과 옅은 조명 아래 발그레 승천한 두 남녀의 광대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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