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은 존댓말을 합니다

존중으로 무르익는 사랑

by 조조

'애인 사이'가 된 우리는 카톡을 주고받을 때 서로 존댓말을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만남에서 우리는 말을 놓기로 했고, (으레 많은 썸남썸녀들이 그렇듯) K와 나 또한 말을 놓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 덕에 연인 사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다.


하지만 확실히 텍스트와 음성은 느낌이 다르다. "잘 가~!"라고 인사했더라도 텍스트로 "잘 가"는 왜인지 어색했다. 오디오북을 듣는 것과 활자를 따라가는 책 읽기의 느낌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결국 K와 나는 사귀기로한 날과 그다음 날을 제외하고, 다시 존댓말로 돌아갔다. 아주 자연스럽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이다. 물론 카톡 세계에서만 해당되는 얘기다. 그렇게 우리는 현실에선 "사랑해" 온라인에선 "사랑해요"가 됐다.


종종 TV를 보다 보면 결혼 후에도 존댓말 하는 부부가 등장한다. 왜 존댓말을 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들은 하나같이 '상대방을 존중하기 때문에 존댓말을 쓴다'라고 답하곤 했다.


존중.


지난 연애를 돌이켜보면 단연코, 존댓말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남자는 없었다. 뭐 어쩌다, 한 두 번은 했겠지만 K와의 관계처럼 아예 존댓말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된 연애는 나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장점이 확실했다. 우선, 존댓말을 쓰니 말과 표현이 아무래도 둥글둥글하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표현으로 기분이 상할 일이 없고 당연히 싸울 일도 없다. 여기에 오는 말이 고우니, 가는 말도 곱다. 과장 좀 보태면 흡사, 서로 어떻게 더 말을 예쁘게 할까 대결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존중이라는 게 별 거 인가 싶다. 그저 '말을 예쁘게 하는 것.' 그것이 존중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른다. 그 말 한마디에 많은 관계가 시작되기도 하고, 파국을 맞이하기도 하니 말이다.


텍스트는 엔터를 누르기까지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지만, 일단 엔터를 눌러버리면 그땐 빠꾸가 없다. 기록으로 박제돼 버린다. 물론 카카오톡이 '메시지 삭제'의 기능으로 재기의 기회를 만들어줬지만, 그것도 단 5분뿐이다. 5분이 지나면 내가 남긴 메시지는 상대방의 파란 창에 영원히 남는다.


문제는 실수를 했을 때다. 우리가 때로 정신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다 보면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날리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억양과 목소리 톤 등은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쉽다.


그런데 존댓말을 하면 달라진다. 뭐 실수 10번 할 것을 2번으로 줄이는 효과랄까. 보다 정제되고 정돈된 표현들로 본인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고, 감정을 컨트롤할 수도 있었다.


모쪼록 존댓말로 카톡 하는 덕에 K와 나는 여태 크게 다툰 적 한 번이 없다. 유일한 한 번은 여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내가 이유 없이 몽니를 부리던 그날이었다.


사소한 일이었는데 예민하게 굴었다. 그래서 전화를 피하고 문자로 나의 예민함을 표현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예민함을 존댓말로 표현하니 아무리 뾰족하려 해도 어딘가 뭉뚝한 지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문자를 치면 칠수록 삼각형은 원이 되어 갔다.


여기에 이를 받아들이는 상대방도 현명했다. K는 내가 보내는 몽니 시동 소리에 "나 이런 이야기는 문자로 주고받고 싶지 않아요. 감정 좀 정리되면 전화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라고 했다.


읔. 몽니를 부려볼까 했는데 상대방이 현명하게 차단시켜 버렸다. 분명 차단당했는데 빡치지가 않다. 나 또한, 감정을 추스르면서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단 10분 만에 갈등 같지도 않은 갈등을 풀었다.


나도 나이를 먹은 탓일까. 확실히 성숙한 연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성숙해진 걸까? 아니면 상대방이 성숙한 사람인 걸까? 아님 둘 다일까?


지난 불 같던 연애를 떠올려 보면 확실히 지금은 차분한 연애를 하고 있다. 그간 싸우고 다투는 게 아주 일반적이며, 지극히 당연한 '보통의 연애'라고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K를 만나면서 그 생각이 깨졌다. 장작 부딪치는 따끔한 소리 없이도, 따뜻하게 불씨를 옮기듯 사랑할 수도 있었다. 서로를 존중해주는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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