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총

소설

by 힉엣눙크

술에 취했지만 찢어진 눈꺼풀 사이 반쯤 드러난 눈동자는 날이 서서 번뜩였다. 쉰 살을 넘긴 후배의 귀밑머리는 희끗했고 눈가에는 깊고도 굵은 주름이 잡혔다. 키는 자그마했지만 살집이 제법 붙어 암팡졌다. 두툼한 손으로 빈 잔을 쥔 채 그가 말했다.


행님, 내는요 소리 없는 총을 만들끼요. 꼬부라진 혀로 그가 말했을 때 내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가 잔에 소주를 부으며 대꾸했다. 내를 이렇게 만들고 비웃고 떠드는 놈들 중에 얻어걸리는 놈 딱 한놈을 내 저승길에 앞세울끼라요. 혼자 죽기는 억울하니까. 씨펄. 잔을 털어 넣자 목 울대가 꿈틀거렸다. 오 년 전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의 모습이었다.


후배는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가 정리해고되자 퇴직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았다. 수완도 없어서 찾아오는 손님이 점점 줄더니 곧 사업을 접어야 했다. 연이은 사업도 얼마 가지 못했다. 빚을 갚아야 했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으므로 급하게 공사장에서 날품을 팔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술을 마셨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마시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아내는 어느 날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 ‘지겨워. 당신만 힘든 게 아니야. 나도 참고 또 참았어. 더는 못 버티겠어. 아이들은 내가 키울게. 불쌍한 당신 제발 정신 차려.’ 후배가 술 한 잔 사달라고 내게 전화를 걸어왔던 건 그 무렵이었다.


후배가 군에 입대했을 때였다. 훈련소 사격장에 들어섰다. 조교들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고 분위기는 살벌했다. “조정간 단발, 준비된 사수로부터 개시” 그때였다. “탕” 바로 옆에 있던 훈련병이 조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쏴버렸다. 마음의 준비 없이 터져버린 총소리에 놀란 그는 귀가 들리지 않았다. 멍해진 자신의 귀를 잡고 귀를 두드리고 귀를 만지다가 일어섰다. ‘귀, 귀가 안 들려요. 귀가. 안...’ 그 순간 군홧발이 세차게 날아와서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바닥에 나가떨어진 그의 몸 위로 발길질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조교가 소리쳤다. 누가 일어서랬어. 절대로 일어나지 말라 그랬지. 하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채 그저 군화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그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겨울 방학 때였다. 어느 날 삼촌이 사냥총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저수지에 찾아든 철새를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삼촌을 따라간 후배는 총소리에 놀라서 귀를 막았다. ‘피이~잉’ 고막 속에서 울리는 소리. 새의 울음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총알이 향한 곳으로 걷던 삼촌은 논 둑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쇠기러기를 들어 올렸다. 아직 살아있었다. 고통으로 푸득 거리는 녀석의 목을 잡고 비틀었다. ‘뜨득’ 소리와 함께 새는 축 늘어졌다. 어린 그에게 새를 건네주며 삼촌은 저수지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윽고 갈대밭에 자세를 낮춰 앉으며 삼촌이 손짓으로 후배를 불렀다. 니가 한 번 쏴 봐. 후배는 쥐고 있던 쇠기러기를 바닥에 놓고 총을 잡았다. 저기 두루미 보이지? 아주 커. 녀석을 잡아야 해. 덩치가 크니까 잡기도 쉬울 거야. 가늠쇠와 가늠자를 녀석의 날개에 일치시키고 쏴. 알겠지? 날개를 맞춰. 빗맞아도 날아가지 못하니까 잡을 수 있어. 자. 쏴 봐. 총을 잡은 후배의 손이 심하게 떨고 있었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자 이제 막 사춘기를 지나며 생긴 조그만 울대가 꿈틀 했다. 왜 이렇게 떨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다가 멈추고 방아쇠를 살며시 당기면 돼. 삼촌의 말이 떨어지고 잠시 후. “탕” 어린 후배가 당긴 방아쇠에 사냥총이 울었고 그의 몸이 충격에 흔들렸다. 재두루미 한쌍은 놀라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빗나가버린 것이었다. 못 맞췄는지, 안 맞췄는지는 알 수 없었다.


행님아. 나도 한 번 해보면 안 되나? 당시 어린 꼬마였던 후배가 새총을 쏘고 있던 내게 다가와 말했다. 와이자 모양의 나뭇가지에 노란 고무줄을 묶어서 만든 것이었다. 조그만 돌을 끼우고 힘껏 뒤로 당겨서 놓으면 제법 세차게 날아갔다. 깡통에 맞추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명중하는 순간 울리는 소리는 기분을 호쾌하게 만들었다. 여섯 살 코흘리개 녀석이 옆에서 칭얼댔다. 내가 새총을 건네자 꼬마는 늘어져있던 코를 들이마시며 헤벌쭉 웃었다. 건네받은 새총으로 나를 따라 해 보았으나 힘이 없어 제대로 당기지를 못했고 돌멩이는 바닥에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녀석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고무줄의 완고한 탄력성과 힘에 부치는 근력을 이해할 수 없어서, 뜻대로 되지 않음에 화가 나서, 어린 후배는 울었다. 내 가슴에다 흥건히 코를 묻히며 서럽게 울었다.


그가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하다가 제정신을 차린 듯 눈을 반짝이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행님한테만 살짝 말해주께. 거의 다 돼 간다. 소리 없는 총. 그러면서 가야시대부터 전승되던 비기를 백월산 토굴에 기거하던 노인에게서 배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떠나고 정신이 번쩍 들더란다. 약초를 공부하며 등산을 다녔다고 했다. 어느 날 백월산에 산행을 가서 송이버섯을 찾던 중 길을 잃었다. 계곡을 헤매다가 토굴을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백발의 긴 머리, 흰 눈썹, 길고 흰 턱수염을 기르고 좌선을 하고 있던 노인을 만난 것이다. 후배는 신선 같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토로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물었다. 돌아가라 만류하고 쫓아내는 노인을 매일 찾아갔다. 장작을 패고 텃밭을 일궜다. 어느 날 그 노인은 후배를 부르더니 말했다. 이루기는 할 텐데 쯧쯧 기르던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상이야. 니가 정 원한다면 일러주지. 물리적인 것도 아니고 정신적인 것도 아닌 것, 소리도, 모양도 증거도 없이 생명을 무생물에 이르게 하는 방법을. 그때를 이야기하던 후배는 쥐고 있던 술잔을 부들부들 떨었다. 행님아 우리 어릴 때 새총 있제? 그거 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면서 만드는 방법을 말했다. 벼락 맞은 비자나무를 100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두는거라. 신비한 약초를 우린 물에 10년을 더 넣어둬야 해. 백발의 노인은 대대로 전승해 내려오는 그 재료를 은밀하게 보관하고 있더란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참말로. 내가 두 눈으로 봤다. 백골처럼 허연 그 나무. 그걸 우선 적당한 크기로 잘라내. 그리고 100일 동안 매일 목욕재계한 후 주문을 외면서 조금씩 깎아내는 거야.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데 정신을 한시라도 다른 곳에 팔면 도루묵이 돼. 후배는 미간을 찌푸리며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했다 말했다. 다 돼 가는데 고마 딴생각이 나가지고 버리고 또 다듬다가 버리고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백발도인은 중얼거렸다고 했다. 멀었다. 하심이 아직 덜 됐어. 그가 다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거의 비법을 알아가고 있어. 다 돼 간다 행님아 흐흐. 내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럼 그 나무로 어떻게 한다는 거야? 후배는 내 왼쪽 귓불을 쥐고 세게 당겼다. 신음이 터질 듯 귀가 아팠지만 손아귀 힘이 너무 세서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 나무를 쥐고 ‘가막살코리도’에 집중하면 된다. 내가 ‘가막살코리도’가 무언지를 물었다. 그는 방언을 읊듯 다시 한번 그 단어를 되뇌었는데 마치 뱀이 지나는 듯 징그럽고 싸늘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곤 희번덕 눈알을 굴리며 말을 이었다. 광선처럼, 음파처럼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것이 소리 없이 날아가지. 그걸 맞은 사람은 여하한 타살의 흔적도 없이 피를 토하며 죽는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이제 폐인을 넘어 광인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내가 술을 덜 취하게 하려고 물을 따라서 건네자 후배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창녕에는 송현동 고분군이 있어. 그거 알아? 1500년 전 그곳은 비사벌 왕국이었지. 거기서 비화가야 왕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재미있는 건 무덤의 주인공인 왕 이외에 네 명의 유골이 더 있었다는 거야.


순장(殉葬). 죽은 권력자를 위해 따라 죽거나 죽임을 당한 자를 함께 매장했던 고대 장례 풍습. 북방 기마민족의 습속. 중국에서는 전쟁포로, 노예, 노비 등을 살해하여 매장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그 유적에서는 물리적 타살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전문가들은 무덤에 순장된 사람들이 독약이나 교살에 의해 사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군. 몸에 아무런 타살의 흔적도, 반항이나 발버둥의 자취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점점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후배가 아니었다.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내 눈빛을 읽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백월산 노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고 찾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야. 여하튼 그들의 죽음은 어떻게 가능했을 것 같아요? 후배가 내게 물었다. 글쎄 전통 관습이었으니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강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는지도 모르지. 그러자 그가 말했다. 발견된 네 명 중에 한 명은 왼쪽 귀에 금귀걸이를 한 십칠세 소녀였어. 지금이라면 고등학생. 아직 자라고 있고 더 커야 할 나이 말이야. 창녕박물관에 갔더니 그 소녀를 실물 크기로 재현한 인형이 있더군. 보는 순간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그 앞에 엎드려 꺽꺽 울고 있으니까 박물관 직원들이 달려와서 나를 일으켜 세워줍디다. 그 사람들 손길을 뿌리치고 나왔어요. 이야기가 갑자기 심각해졌다. 후배가 광기 어린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는 소리 없는 총에 의해 살해되었던 거요!’ 나는 그의 주장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미치게 만들었나. 어떻게 그는 이 지경에 이르렀나. 측은함이 밀려왔다.


내 표정이 일그러지자 후배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나만 더 얘기해 드리지. 미국에서는 실제로 초능력 부대라는 것이 존재했었어. 그거 알고 있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1970년대 미국의 씨아이에이와 국방부 주도하에 염력, 투시, 주파수 공격, 벽 통과 등으로 당시 적대국이었던 소련의 요인들을 암살하기 위해서 초능력자들을 비밀리에 모으고 훈련시켰지. 20여 년 동안이나 말이요.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말하자 후배는 자못 심각해지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알려진 명백한 사실이오. 내가 그래도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고 치고 어떻게 되었는데? 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쉽게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서 그 프로젝트는 종료되었어요. 하지만 뭔가가 있었던 게 틀림이 없어. 그렇지 않았다면 일 이년도 아니고 어떻게 이십 년 동안이나 진행되었겠소. 미국은 부정하고 있지만 지금도 모하비 사막 어느 지하에서 비밀리에 그 프로젝트를 아직 진행하고 있어요. 그는 진정으로 믿는 듯했다. 시간을 보니 밤 열두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는 풀린 눈으로 중언부언했다. 미국 씨아이에이가 폐지했다고 하는 초능력부대 그거 아직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어. 아무도 몰라. 첩보망을 총동원해서 초능력자들을 찾고 있지. 내가 성공하면 씨아이에이가 귀신같이 찾아올 거야. 횡설수설을 더는 들어줄 여력도 체력도 없어서 나는 술 취한 후배를 일으켜 세웠다. 흐물거리는 그를 부축하고 달래서 택시에 밀어 넣고 떠나보냈다. 나는 멀어져 가는 후배의 흔들리는 뒤통수를 보면서 뭔가 서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후 연락이 없었고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 그가 전화를 했다면 꺼버렸을지도 모른다. 간혹 그의 헛소리가 떠오르긴 했다. ‘행님, 다 돼 간다. 소리 없는 총. 내 죽기 전에 내를 이리 만든 놈, 딱 한 놈만 앞세우고 저승 갈끼다. 그래야 안 억울치’


며칠 전 식사를 하면서 티브이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다. 앵커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공습해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했다고 전했다. 그 과정에서 약 80여 명의 경호원들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증언자들의 이야기가 뭔가 이상했다. 그들은 총이나 재래식 무기에 의해 사살된 것이 아니었다. 경호원들은 귀를 부여잡고 코에서 피를 흘리거나 각혈을 쏟으며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소리 없는 그 무엇을 든 소수의 미군에 의해 속수무책 당하기만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나는 소름이 끼쳐서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후배가 했던 말들을 이리저리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기울였다.


고향의 아재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그놈 소식을 아십니까?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아재가 대답했다. 그 자슥 말도 꺼내지 마라. 무슨 미친 소리를 해대면서 도를 닦는다고 산에 댕기더니만 재작년인가? 한 이 년 됐을끼다. 미국 씨아이에이가 지를 찾는다 카면서 짐을 싸서 떠났다 카더라. 완전히 돌아삔 기라. 내가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미국 씨아이에이요? 아재가 다시 말했다. 그래. 그 미친놈이. 글 캤다 카네. 아재의 전화를 끊고서 나는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이루었을까. 소리 없는 그 총. 후배는 지독하게 운이 없다며 세상을 탓하고 운명을 욕하고 사람들을 저주했다. 그는 가야시대부터 내려오던 비기를 이용해서 순장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무덤에 누군가를 대동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려는 것. 증오하는 원수, 배신한 연인에게 끝없는 형벌을 내리려는 계획.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가 데려가려는 단 한 명은 바로 총구가 떨려 재두루미를 훨훨 날아가게 만들었던 솜털 보송하던 고등학생 자신이란 것을. 1500년 전 창녕 송현동 고분에 순장되었던 그 소녀처럼 청순하고 순결했던 그 영혼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바람은 불고 머리칼은 흩날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