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샹젤리제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

by 와이

요새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버킷리스트에 무엇이 올라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 때에는 유럽 일주 여행은 그 목록에 꼭 있었던 것 같다. 입시에서 해방되어 드디어 어른들이 약속했던('대학생이 되면 예뻐질 거야' 같은 것들 말이다) 시간이 도래하고 나면 세상에 재미없는 게 어디 있겠냐만은, 유럽 여행은 그 중에서도 특별했다. 멀고 먼 낯선 땅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었다. 그야말로 젊음이었다. 이 로망을 내가 놓칠리 없었다.


여행의 동행자는 친구 Y였다. 재수 학원에서 만난 우리는 무엇보다 취미가 맞았다. Y와 나 둘다 여행을 좋아했고, 먹는 데 진심인 편이었다.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도 둘 다 수능 선택과목으로 세계사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지리나 사회문화와 같은 주류 과목에 비해 오직 극소수만이 선택하는 이 과목을 우리는 함께 공부했다. 캄보디아에서 앙코르 왕조가 일어나 크메르 왕국을 세워 태국을 포함하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고, 인도에서는 불교와 힌두교를 거쳐 이슬람교의 무굴 제국이 타지 마할이 세웠으며, 중세 프랑스에서는 전설의 기사 롤랑이 여러 문학 작품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었다.

물론 약간의 불안은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예민했고 Y는 무심했다. 나는 모든 감정에 촘촘하게 신경을 기울이는 성격이었고 Y는 대체로 그 모든 것을 넘겨버리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Y 이상의 적격인 후보가 없었다. 나는 그 불안을 짐짓 못본체했다. 우리 둘과 친했던 M은 너네 둘만 한달씩이나 같이 붙어있다니 괜찮을까 걱정되었다고 했다.


한달여의 여행의 장소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낙점되었다. 프랑스를 10일, 스페인을 20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Y는 프랑스어를 조금 할 줄 알았고 무엇보다 미술관에서 그림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파리에 가고 싶어했고 그래서 프랑스가 선택되었다. 나는 흔히들 가는 서유럽이 아닌 보다 특별한 여행지를 고르고 싶었고, 유럽의 문화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문화도 즐길 수 있다는 스페인에 끌려서 그곳을 선택했다.


내가 이 여행에 얼마나 진심이었냐면 여행 출발 전 6개월간 스페인어 학원을 다니며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강남역 7번 출구-신분당선이 생겼으니 이제는 11번이 되었는데도, 내 기억속에서는 늘 7번이다-뒷편 던킨도너츠가 있는 건물에 위치한 스페인어학원. 남미에서 오래 거주하다 온 발랄한 성격의 선생님은 pero와 perro의 차이를 설명해줬지만 목긁는 발음이 되지 않는 나는 줄글로밖에 둘을 구분할 수 없었다(pero는 '그러나'의 접속사, perro는 '개'이다).

내 열정은 차고 넘쳐 학교에서는 스페인과 프랑스 관련 교양 수업을 몇 과목 수강했다. "스페인 문화의 이해", "프랑스 예술과 사회", "스페인 속의 아랍문화"...열정과 성적이 비례하진 않았지만, 글과 사진(그리고 과제와 시험)으로 곧 직접 마주칠 풍경을 꿈꿨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서유럽 14일' 단체 패키지 여행을 휘뚜루마뚜루 다녀온 이후 처음 내 손으로 준비한 해외 여행이었다. 파리 센느강의 바토무슈 유람선, 루브르의 모나리자, 오르세의 인상화 화가 작품들. 우리는 공부하듯 성실하게 파리의 전형적인 관광 코스를 해결했다. 가난한 학생이니 숙소는 한인민박의 도미토리를 예약했었는데, 캐리어를 펼칠 공간도 없는 12인실에는 2층 침대가 여섯 개 빼곡했고, 우리보다 더 성실한 여행객이었던 다른 손님들은 새벽 다섯시부터 일어나 머리를 감고 나설 준비를 하는 바람에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그래도 아침으로 주던 한식이 정말 맛있어서 마냥 만족했던 기억이다.


문제는 여행 3일차에 최초로 발생했다. 예나 지금이나 파리는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유명 관광지이니만큼 어딜가도 붐볐고 어딜가도 자잘한 경범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도난이나 분실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들고다니던 가방은 너무 작아 내 디지털카메라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는데, 나는 고민을 하다가 카메라의 끈을 이용해 그것을 가방에 매달고 다녔다. 작은 가방이니 그렇게 한 다음 옆구리에 꼭 끼고 다니면 될 것 같았다. Y는 그러다 카메라 잃어버린다고 타박을 했지만 가방 안에 들어가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그러고선 노천 카페가 즐비한 샹젤리제 거리를 구경하다 더위에 지쳐 어느 가게에 들어가 사과파이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는데 아뿔싸! 카메라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냥 내가 잃어버린 건지 아니면 정말 소매치기를 당한 건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어느쪽이든, 카메라의 메모리에는 지난 3일간 설레며 찍은 모든 여행 사진이 들어 있었다는 게 중요했고 당연히 백업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충격에 빠져서 울먹였다. 그때였다.

"아 징징대지마. 그러길래 내가 뭐랬어. 조심하랬잖아."

Y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순간 눈물이 쑥 들어가고 피가 차가워졌다. 더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보험 처리를 위해 경찰서로 가서 분실 신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이것 때문에 너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으니, 너는 원래 계획했던 대로 오늘 보내고 나중에 저녁 때 숙소에서 만나자고 하고서는 그녀와 헤어졌다. 경찰서의 위치를 확인한 뒤 몇걸음 터덜터덜 걷다가 나는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절엔 로밍이란 것도 없었고 낡은 핸드폰을 임시로 현지 개통해서 사용하는 거였으니,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진짜 국제 전화를 건 셈이었다. 건조한 목소리로, 나는 방금 일어난 사건을 차분하게 설명하다가 별안간 눈물이 펑 터졌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샹젤리제의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순진하고 즐거운 관광객들은 놀라서 나를 쳐다봤지만, 서러움이 폭발한 나는 부끄러움 따위는 잊은 채 오열을 멈출 수 없었다. 햇살은 나의 고통과 상관없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모든 세상이 야속했다.

엄마는 적잖이 놀란 듯 했다. 나를 다정하게 달래면서, 돈을 줄테니 내일이라도 비행기표를 끊고 돌아오라고 했다. 정신없이 눈물 콧물을 빼며 울던 나는 그게 무슨 소리야, 하며 비로소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떻게 잘 해봐야지, 이제 겨우 여행 초반인데.


다행히 샹젤리제 경찰서의 경찰은 친절했다. 해외 여행에서 현지 경찰서를 방문하는 놀라운 경험에 겁먹은 나를 그는 짧은 영어로나마 열심히 위로해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에 나는 조금 더 마음이 풀어졌다. 다음날 카메라도 새로 샀다. 넉넉지 않은 예산에 예상밖의 지출이었지만 여행 초반인지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비웠다.


그 뒤로도 Y와의 소소한 갈등은 이어졌다.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까, Y의 무심함에 나는 조금씩 계속 상처받았다. 내가 나누고 싶은 섬세한 감정은 종종 악의 없이 차단되었고, 나는 무안했다. 거기에 서로의 바이오리듬이 알고보니 꽤나 달랐던 것도 물리적인 불편함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Y는 나에 비해 쉽게 지치는 편이었고 그 때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쉬면서 재충전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조금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그것을 모두 이국적인 경험으로만 가득 채우고 싶었지만 몸이 힘들다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건 누구와 여행을 한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차이이니 그러려니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나는 네 사정을 이렇게 배려하고 있는데 너는? 싶은 억하심정도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속앓이만 하는 것도 힘들어 이 불편함을 솔직하게 털어놓고도 싶었다. 그러나 한달을 둘이서만 다니는데 그 대화가 잘 안풀릴 때 어색해질 게 무서워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여행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맥주의 힘을 빌어 더듬더듬 그간 속상했던 일을 말해보았지만, 흐릿한 기억으로는 그다지 대화가 잘 풀렸던 것 같진 않다. 격하게 말싸움을 벌이지도 않았지만 속시원하게 감정을 털어내지도 못했다.




여행 직후 한동안 어쩐지 자연스럽게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다소 지쳤던 것 같다.

그때의 나와 Y에 대해서 눈금이 다른 두 개의 자를 곧잘 생각했었다. 1mm 단위로 눈금이 그려진 자와 5mm 단위로 눈금이 그려진 자. 1mm, 2mm를 말하고 싶어도, 5mm, 10mm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뭔지 알 수 없다. 내가 호소하는 감정이 뭔지 Y는 애초부터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촘촘함의 단위가 다르니까. 그래서 자꾸 1mm로 세상을 보는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많이 갈등했고 위축되어 있었다.


'Y는 생각보다 생각이 많다'


놀라운 건, 긴 시간동안 내가 오해했던 것과 달리 Y가 그렇게 무심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녀를 단순히 무심한 사람으로 취급했던 내 짧은 이해가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다.

이 때의 여행 이후 십여년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나는 그녀의 다양한 얼굴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보다 솔직한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의 단위는 5mm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1mm가 2mm의 세계가 있었는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1mm을 바라보지 않았던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촘촘한 감정을 자꾸만 끄집어내는 내가 불편할 수 있었겠구나. 그래서 퉁명스레 말을 던져버리고는 말았구나.


2년 전 나는 Y와 두번째 장기 여행을 떠났다. 이 때의 여행 이후 거의 10년 만이었다. 그것도 온갖 몸고생이 예약된 몽골 사막 오지로 떠나는 여행. M은 또다시 걱정을 했지만, 그 여행은 일종의 설욕전이기도 했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런 의미도 있었다.

여행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여전히 Y는 이따끔씩 뜻없는 공격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내게 그모습조차 귀엽게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게르를 나서며 자꾸만 문틀에 머리를 박고선 욕지거리를 뱉는 것도,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에 진흙탕이 되어버린 언덕에서 미끄러질까 허둥대는 모습도, 높은 절벽 지대가 무서워 떨면서 가이드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것도, 그 의외의 허술함도 얼마나 귀여운지.


결국 세상에 무심한 사람이 어딨지 싶다. 그건 이를테면 소라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촘촘하지 않아야만 마음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1mm의 나는 한때 자괴감마저 느꼈었지만, 내가 유별난 건 아니었다. 우리 모두 각자 취약한 부분이 있고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

십여년 전 우리도 그저 어리고 서툴러서, 누군가를 이해하면서 성숙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데에 영 재주가 없던 것뿐이었다.

이제는 곧잘 자신의 속살을 두서없이 내보이며 따뜻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Y를 보며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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