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그리고 산토리니
2014년은 나에게 참 많은 변곡점이 있던 해였다. 가장 큰 건 난생 처음 돈 쓰는 사람이 아니라 돈 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겠지. 나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회사라는 데에서 매달 25일마다 내 통장에 월급이란 걸 보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막힌 액수였지만 하여간에 나는 가슴이 콩닥였다.
그 돈을 가지고 무얼 꿈꿨냐 하면 역시 여행이랄까. 학생 때는 엄두도 못내던 음식점도 훌륭한 소비의 대상이었지만 역시, 여행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여행 갖고는 어림도 없었다. 일정은 길어야 했고-다행히 휴가의 사용은 자유로운 회사였으므로-그러므로 장소도 특별해야 했다. 선택받은 여행지는 터키였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교차하는 곳.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부터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지중해까지 문화와 자연을 모두 아울러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여행지.
갈라타 탑Galata Kulesi에서 내려다보는 골든 혼Golden Horn과 유럽 지구의 구시가지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도 멀리 보인다.
문제는 이 일정을 누가 함께 해줄 수 있느냐였다. 10여일이 넘는 휴가(와 그에 상응하는 금액)를 쓸 수 있는 친구를 찾기 어려웠다. 용감무쌍한 나는 여차하면 혼자라도 떠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늘 나의 행동력에 노심초사하는 엄마가 그런 나를 내버려둘리 없었다. 결국 나는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문제는 날짜였다. 나는 연중 아무때나 휴가를 쓸 수 있었으므로 터키 여행의 최적기라는 봄에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엄마는 사정상 한여름만 가능했다. 투덜대도 소용없었지만 엄마는 비행기삯은 본인이 내주겠다며 나를 달랬다.
나는 많은 계획을 세웠다. 이 때는 아직 여행력(?)이 무르익지 않았을 때라 참 무리한 욕심을 많이도 부렸다 싶다. 나는 이스탄불에서의 문화 탐방도 특별한 자연 경관도 포기할 수 없었고, 여기에 지중해를 본격적으로 누려보고 싶은 마음에 그리스 산토리니까지 일정에 추가했다. 한국을 왕복하는 비행 일정말고도 터키와 그리스를 오가는 국제선, 이스탄불에서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같은) 공항 사이의 이동, 카파도키아와 파묵칼레 사이의 10시간에 이르는 야간 버스 이동이 필요했다.
#이스탄불
늦은 오후 비행기로 도착한 이스탄불은 저녁을 먹고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낯선 도시에서 엄마와 단둘이 밤길을 걷자니 바짝 긴장이 되었다. 오벨리스크가 휘황찬란하게 기립해있는 광장을 위험해 보이는 사람들을 피해 신중하게 가로지르며 숙소로 무사히 돌아왔다. 엄마는 날더러 생각보다 안전하게 다닐 줄 아는 것 같아서 걱정을 덜었다고 했다.
Blue House Terrace Restaurant, Istanbul
블루 모스크를 조망할 수 있는 Blue House Hotel & Restaurant의 식당에서의 첫 저녁 식사.
신맛이 나는 수프는 그다지 입에 맞질 않아 낯선 도시의 이질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Meşale Restaurant & Cafe, Instanbul
이슬람 신비주의 교단의 종교 의식 중 하나인 수피댄스Sufi Whirling를 관람할 수 있다.
이스탄불은 머나먼 동아시아로부터 온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맞이한 첫번째 아침, 고단함에 긴 잠을 청하던 나를 강제로 깨우던 새벽 기도 소리부터 참신하기 그지 없었다. 근처 모스크에서부터 광광 울려대는 기도문 소리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일러주었다.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는 과연 방문할 가치가 충분했다. 파란 돔, 흰 첨탑,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정교한 아라베스크. 특히 아야 소피아의 부침의 역사-정교회와 이슬람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는 오히려 그 장소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야 소피아Ayasofya Camii, Istanbul
정교회 성화와 이슬람 서예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그 이국적인 매력에 대한 탐구는 너무도 나답게 음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아니, 동서양을 아우른다는 터키의 매력을 비단 눈으로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즐겨야하지 않겠는가. 덕분에 엄마의 수난이 이어졌다. 우리는 찬바람이 부는 북적이는 바닷가에서 비린내 나는 고등어 케밥을 먹고, 커피 가루가 씹히는 터키식 커피를 마시고, 누린내 나는 양고기로 만든 각종 케밥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고수나 양고기, 그밖에 사람마다 호불호가 분명한 식재료를 전혀 가리지 않는 나에게 이 모든 건 그저 신나는 경험이었지만, 소고기보다도 된장찌개와 두부조림을 최고의 음식으로 치는 엄마에게는 분명 그러지 않았을 거다.
고등어 케밥Balik Ekmek
그러나 이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비려도 너무 비리다.
길거리에서 팔던 군옥수수와 군밤
지중해의 이슬람 국가 길거리 좌판에서 뜬금없이 한국스러운 토속적인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다. 엄마는 흥분했지만(내가 자비 없는 현지 음식 체험을 강행해서 더욱 그랬던 걸까) 땡볕에 따끈하게 구운 음식이 땡기지는 않았다. 마지막 날 기어코 군밤을 사먹긴 했지만.
#산토리니
그래도 먹는 것에만 나의 모험심이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여행 4일차, 우리는 그리스 산토리니로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서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 그리고 다시 산토리니 피라 국제공항. 공항은 산토리니의 국제적 유명세에 비해 거의 간이시설에 가까웠다. 숙소에 미리 픽업을 예약해두었지만 내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들고 있어야 할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국제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드는 엄마를 두고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애를 태우며 여러 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한 끝에, 나는 호텔 직원이 우리를 빼먹고 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산토리니에 도착한 지 세시간만에 엄마와 나는 겨우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검은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숙소가 위치한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에 도착했고, 우리의 짐을 들고 호텔 직원은 마을 골목길을 잰걸음으로 앞장 서서 내달렸다. 비탈진 언덕을 따라 형성된 마을은 길이 상당히 복잡해, 우리는 도무지 우리 힘으로 이 길을 다시 되돌아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와중에 나는 산토리니 전체를 둘러보기 위해 과감하게 렌트카를 하루 빌렸고 당연히 운전은 엄마의 몫이었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한쪽에 두고 낯선 외국에서 읽지도 못하는 교통 표지판을 보며 운전을 했어야 했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내가 죄인이다. 엄마는 핸들로 바싹 몸을 세운 채 고역을 치르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엄마 평소에 베스트 드라이버이지 않냐며 왜 긴장하냐고 엄마를 응원...타박했다.
푸르른 지중해와 새하얀 벽이 대조를 이루는 산토리니의 이아Oia 마을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한낱의 햇빛에서 비탈길을 따라 골목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자면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유명 신혼 여행지답게 한번은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을 마주쳤는데, 화려한 노란 드레스 자락을 날리는 신부 옆에는 동네 주민이 몰고 간 염소의 똥무더기가 한가득이라 그 이상과 현실에 혼자 실컷 웃었다.
#카파도키아
산토리니에서 다시 터키 이스탄불로 회귀했다. 이스탄불의 두 공항 사이를 이동해 이번에는 국내선을 타고 카파도키아로 이동했다. 카파토키아의 명물 동굴 호텔에 머문 다음 날 우리는 바로 열기구 투어를 나섰다.
Traveller's Cave Hotel, Göreme
카파도키아의 명물 동굴 호텔. 그 특유의 습하고 어두침침한 객실의 분위기를 엄마는 끔찍히도 싫어했다.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부터 열기구가 있는 황야로 나서 반쯤은 졸면서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한여름이었지만 새벽 공기가 미칠듯이 차가웠다. 엄마는 피곤과 졸음에 젖어 내 머리를 땋아주었다. 그래도 이 일정은 제법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떠오르는 아침햇살 속에서 알록달록한 열기구들이 두둥실 떠오르는 풍경은 제법 흐뭇한 추억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Balloon Tour, Göreme
#파묵칼레
카파도키아에서 파묵칼레까지 가는 방법으로 나는 야간 버스를 선택했다. 어차피 외진 여행지에서 외진 여행지로의 이동이라 별다른 수단이 없기도 했고, 숙박비를 하룻밤 아낄 수 있겠다는 젊은 패기였달까. 그게 엄마랑 여행할 때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비몽사몽간에 이른 새벽 그 날 묵기로 한 숙소에 도착했고,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손짓발짓으로 조식을 얻어 먹었다.
객실에 체크인하고 나서 잠시 뒤 욕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욕조에서 미끄러져서 발바닥을 조금 다쳤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던 때 힘이 없어 넘어져 다치는 것에 약간 트라우마가 생겼던지라, 가슴이 철렁했다. 더군다나 잠시 뒤 파묵칼레의 석회암을 맨발로 걸어다녀야 하는데. 또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두번째 손짓발짓으로 호텔 직원에게 엄마의 부상을 알리고 호텔 차를 얻어타서 파묵칼레로 이동했다. 엄마는 다행히도 씩씩하게 파묵칼레를 걸어주었다.
파묵칼레Pamukkale, Denizli
기억은 한없이 너그럽네
글을 쓰기 위해 여행 사진을 하나씩 다시 꺼내보니, 어쩐지 사진 속 엄마와 나 둘 다 표정이 썩 밝지 않다. 덥고 지쳐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길에서 끊임없이 말수작을 걸어오는 남자들 때문에 긴장하느라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둘 다 무시로 마음이 울적해져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도 그런 버릇을 버리지 못했지만, 야심차게 떠났던 이 여행은 그때의 내가 늘 그랬듯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몰두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여행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놓쳤다. 그러다보니 참 엄마한테 못할 짓을 했다 싶다. 다른 사람들보다 늘 가족과 가깝다고 생각했고, 엄마도 어디가서 '자매같은 모녀 사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즐겼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행 내내 서로 마음이 울적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엄마가 내 뜻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게 짜증스러웠고, 그렇다고 무리해서 맞춰주려고 하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가 내가 열심히 준비한 여행을 함께 즐겼으면 좋겠는데, 체력이 되었든 취향이 되었든 그러지 못하는 게 화가 났다. 아. 나는 사실 엄마가 아니라 매번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와의 여행에서 이런 일정이라니.
엄마를 생각하면 드는 마음은 늘 똑같다. 너무 화가 나고 밉고 그리고 또 미안하다. 조금만 더 참을 걸 조금만 더 잘해줄 걸 싶다가도 늘 화가 난다. 미워도 이렇게 미울 수가 없다. 힘들어하면 힘들어하는 대로, 잘해주면 잘해주는 대로.
지금이라면 달랐을까? 그 때 내가 좀 더 성숙했으면 좋았을 걸. 하다못해 계획이라도 좀 더 현실적으로 세우고 마음이라도 더 편히 먹을 걸. 이런 상상을 해보다가도 결국에는 나는 또 화를 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애쓴 만큼 엄마가 즐겁기를 기대하고, 엄마는 나를 위해 노력하지만 내 마음에 차지 않고. 엄마는 속상해하고 나는 그 모습이 보기 싫고.
물론 서로 더 노력하고 이해하고 알아갈 것이다. 3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인데도, 아직도 잘 모르는 게 많은 사인 걸 어쩌겠는가. 나는 나이고 엄마는 엄마인데.
영원한 마음으로 서로 할퀴고 또 넘기면서, 언젠가 더이상 그럴 기회가 더이상 오지 않는 순간까지 늘, 이렇게.